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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파티클로 원가 낮춘다"…옵티팜 K구제역 백신 CDMO 전략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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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방역 전략에 첨단 나노파티클 백신이 더해지면서 동물용 백신 시장의 판도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생명공학기업 옵티팜이 중앙백신연구소와 손잡고 K구제역 백신의 위탁개발생산에 돌입하면서다. 국내에서 확산 중인 유전자형을 맞춘 맞춤형 백신을 원가 경쟁력 있는 방식으로 생산해 국내 방역 체계 고도화는 물론, 동남아 시장까지 겨냥하려는 구상이다. 업계에서는 양사의 협력이 동물용 백신 CDMO 모델 확산의 분기점이 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옵티팜은 22일 동물용 백신 전문기업 중앙백신연구소와 K구제역 백신 공급을 위한 CDMO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계약 구조에 따라 옵티팜은 백신 기술과 마케팅, 판매를 담당하고 중앙백신연구소는 위탁개발과 생산을 맡는다. 양사는 우선 국내 시장에 공급 기반을 다진 뒤, 판매 추이와 농가 수요를 확인해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로 공급권을 넓힌다는 전략이다.  

K구제역 백신은 이미 개발 단계에서 의미 있는 진척을 보였다. 옵티팜이 설계한 마스터 시드가 확보된 상태에서 중앙백신연구소가 이를 활용한 임상시험용 시험 백신 생산을 마친 상황이다. 현재 농림축산검역본부에 제출된 임상시험계획서에 대해 보완 요청이 내려와, 양사가 추가 자료를 공동으로 준비하며 임상 승인 절차를 밟고 있다.  

 

핵심 기술은 나노파티클 기반 항원 전달 플랫폼이다. 구제역 바이러스의 항원성을 유지하면서도 바이러스를 직접 다루지 않고 나노입자 형태로 구조화해 면역 반응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설계했다. 회사 측 설명에 따르면 국내에서 유행 중인 구제역 바이러스 유전자형 정보를 반영해 항원을 최적화해, 기존 수입 백신 대비 동등하거나 더 높은 방어력을 확인한 상태다. 구체적인 방어율 수치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동물실험 단계에서 도축 후 항체가 분석과 도전시험 등을 통해 방어능을 검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 기술은 기존 구제역 백신이 요구하는 고비용 인프라의 한계를 줄였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전통적인 비활화 구제역 백신 생산에는 살아 있는 바이러스를 대량 배양하는 과정이 포함돼, BSL 3급 이상의 고도 생물안전 시설이 필수로 요구된다. 반면 옵티팜의 나노파티클 기반 K구제역 백신은 바이러스 대량 배양이 아닌 합성 및 조립 중심 공정을 사용해 일반 동물용 백신 생산시설에서도 제조가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이로 인해 해외 수입 백신 대비 생산 단가를 낮출 수 있다는 설명이다.  

 

동물용 백신 허가 절차 측면에서도 개발 리스크를 완화하려는 전략이 보인다. 회사 관계자는 동물용 백신 허가 체계가 인체용 백신과 달리 단일 임상으로 허가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비임상 단계에서 이미 돼지와 소 등 목적 동물을 대상으로 안전성과 면역원성 평가를 진행해 데이터 축적을 마쳤기 때문에, 실제 임상시험에서 나타날 결과의 변동성이 상대적으로 낮게 관리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임상시험 일정도 가시화되고 있다.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요구한 보완 자료가 반영돼 내년 1분기 내 임상이 승인될 경우, 가이드라인에 따라 야외 농장에서 실제 사육 중인 돼지와 소를 대상으로 현장 임상이 진행될 계획이다. 시험 농장을 중심으로 접종 후 항체 형성, 발병률 변화, 안전성 지표 등을 측정해 실사용 환경에 근접한 데이터를 확보하게 된다.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경우 허가와 상용화까지의 시간표도 앞당겨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번 CDMO 계약은 생산 효율성뿐 아니라 공급망 안정화 관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국내 구제역 백신 수요의 상당 부분은 그동안 해외 제품에 의존해 왔다. 특정 해외 제조사나 국가에 편중된 공급 구조는 원료 수급 차질이나 수출 규제, 현지 정책 변화에 따라 방역 전략 전반이 흔들릴 위험을 내포했다. 옵티팜이 국내 유전자형에 맞는 백신 마스터 시드를 확보하고, 중앙백신연구소가 이를 국내 공장에서 대량 생산하는 구조는 수입 의존도를 줄이면서도 비상 상황에서의 공급 탄력성을 높이는 카드로 해석된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동물용 백신에도 첨단 플랫폼 기술 도입 경쟁이 본격화된 상황이다. 유럽과 북미에서는 바이러스 유사입자와 mRNA 기술을 접목한 가축용 백신 연구가 잇달아 발표되고 있으며, 다국적 동물용 제약사는 특정 국가 유행주에 맞춘 지역 특화 백신 개발에 투자 규모를 늘리는 추세다. 이런 환경에서 국내 기업이 나노파티클 기술을 바탕으로 구제역 백신 플랫폼을 내재화하면, 향후 해외 규제기관 요구 수준에 맞춘 데이터 확보를 통해 글로벌 진출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책 측면에서 농림축산검역본부는 국내 방역 정책과 연계된 백신 전략을 운영하고 있어, 유전자형 매칭과 생산 안정성을 갖춘 국산 백신 개발에 우호적 환경이 형성돼 있다. 다만 동물용 백신이라 하더라도 실험동물 복지, 현장 농가 부담, 장기 접종에 따른 선택압 등 윤리적·생태학적 변수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향후 허가와 보급 단계에서 정부가 접종 정책, 보상 제도, 수출국과의 상호 인증 체계까지 동시에 조율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는다.  

 

김현일 옵티팜 대표는 이번 CDMO 계약을 2027년 출시를 목표로 한 장기 공급 전략의 일부라고 강조했다. 그는 K구제역 백신을 안정적으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체제를 미리 구축해, 출시 초기부터 국내 방역 정책 변화와 수요 확대에 유연하게 대응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나아가 중앙백신연구소와의 협력을 기반으로 국내 시장을 넘어 동남아 지역에서 블록버스터급 동물용 백신으로 성장시키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산업계에서는 국산 플랫폼 기술과 CDMO 역량을 결합한 이번 모델이 상용화에 성공할 경우, 다른 가축 전염병 백신에도 확산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구제역을 넘어 ASF, 고병원성 AI 등 반복되는 가축 질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술과 생산, 규제와 시장을 아우르는 새로운 백신 생태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기술과 방역 정책, 글로벌 공급망 전략이 맞물린 동물용 백신 시장에서 이번 협력이 실제 시장 안착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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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티팜#중앙백신연구소#k구제역백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