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강남·마용성 아파트 증여 2,077건 전수 검증”…국세청, 고무줄 감정·부담부 증여에 세무 칼날

한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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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부동산 시장의 핵심인 강남4구와 마용성 일대 고가 아파트 증여 거래에 대해 국세청이 사상 처음으로 특정 지역을 겨냥한 전수 검증에 착수했다. 최근 집값 반등과 함께 저가 감정평가나 부담부 증여를 활용한 편법 증여가 확산되면서 조세 형평성 훼손과 부의 대물림 심화 우려가 커진 데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조사 결과에 따라 부동산 증여 관행과 시장 심리 전반에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연합뉴스와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국세청은 4일, 최근 자산가 사이에서 강남4구와 마용성 소재 고가 아파트 증여가 급증함에 따라 해당 지역 아파트 증여세 신고 내역을 정밀 분석하고 전수 검증하겠다고 밝혔다. 검증 대상은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이뤄진 증여 가운데 11월 기준으로 신고 기한이 만료된 2,077건이다. 국세청은 이 중 시가로 신고된 1,068건은 평가액 적정성을 다시 따져보고, 매매 사례가액 등 시가를 반영하지 않고 공시가격으로 낮춰 신고한 631건에 대해서는 직접 감정평가를 의뢰해 과세할 계획이다.

60억 아파트가 39억으로 '뚝'…국세청, 강남·마용성 증여 2천 건 현미경 검증 / 연합뉴스
60억 아파트가 39억으로 '뚝'…국세청, 강남·마용성 증여 2천 건 현미경 검증 / 연합뉴스

신고 기한 여건상 이번 1차 검증은 7월분 증여까지로 제한되지만,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서울 집합건물 증여 건수가 7,708건으로 3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하는 등 증여 열풍이 거세고 편법 수법도 다양해지고 있어, 향후 조사 범위가 추가로 넓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세청이 특정 지역을 콕 집어 전수 검증을 예고한 만큼, 강남·마용성 일대 자산가들 사이에선 향후 증여 계획을 재조정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날 가능성이 제기된다.

 

국세청이 파악한 편법 증여 유형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감정평가를 통한 저가 신고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고가 아파트를 부친으로부터 증여받은 A씨는 같은 면적의 인근 아파트가 시가 60억 원에 거래되는 것을 알고, 증여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감정평가법인에 시가보다 낮게 평가해 달라고 청탁했다. 감정평가 결과는 시세의 65% 수준인 39억 원에 그쳤고, A씨는 이를 기준으로 증여세를 신고했다가 국세청 조사 과정에서 적발됐다. 국세청은 이 같은 고무줄 감정 관행을 차단하기 위해, 직접 감정평가를 통해 시가를 재산정하고 부당하게 낮은 평가를 반복한 감정기관을 ‘시가 불인정 감정기관’으로 지정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다.

 

부담부 증여를 악용한 절세 시도도 검증 대상에 포함됐다. 부담부 증여는 전세보증금이나 대출 등 채무를 포함해 재산을 이전하는 방식으로, 채무액만큼 증여재산가액이 줄어드는 구조라 합법적인 절세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그러나 송파구 소재 20억 원대 아파트를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B씨 사례처럼, 서류상으로는 수억 원대 채무를 자녀가 떠안는 것으로 신고해 놓고 실제 상환은 부모가 대신하거나, 자녀의 고액 생활비를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증여세를 피해온 정황이 다수 포착됐다는 것이 국세청 설명이다.

 

기존 세입자인 외할아버지가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않고 퇴거하는 방식으로 자녀에게 현금을 우회 지원한다거나, 미성년 손주에게 아파트를 증여하면서 취득세와 증여세 납부 자금까지 조부모가 대는 이른바 세대 생략 증여도 집중 점검 대상이다. 국세청은 명의를 바꾼 뒤에도 실질적인 경제적 부담 주체가 부모나 조부모로 남아 있는 경우, 추가 증여로 보고 과세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전수 검증에서 국세청은 증여세 신고 내용뿐 아니라 자금 원천과 사용처까지 전방위적으로 추적한다. 증여를 받은 자녀가 고액의 전세보증금이나 대출 원리금을 실제로 자력 상환했는지, 취득세와 보유세 등 부대 비용을 포함한 실질 부담 능력이 있었는지, 부모 계좌에서 정기적인 입금이 이뤄지지 않았는지 등이 주요 점검 항목이다. 부동산을 처음 취득한 증여자의 재산 형성 과정에서 사업소득 탈루 혐의가 드러날 경우 관련 사업체까지 세무조사 범위를 넓히고, 반복적이고 악의적인 탈세 사례에 대해서는 형사 고발도 검토할 방침이다.

 

오상훈 국세청 자산과세국장은 “자금 조달 능력이 없는 미성년자 등에게 부모 찬스로 아파트를 넘겨주며 정당한 세금 없이 부를 축적하는 행위를 빈틈없이 찾아내 과세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국세청의 이번 조치가 단순한 세수 확충을 넘어, 부동산 과열기마다 되풀이돼 온 편법 증여 관행에 경종을 울리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해석한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이번 강도 높은 검증이 강남·마용성 지역의 ‘똘똘한 한 채’ 선호 흐름과 증여를 통한 가격 방어 심리에 제동을 걸 변수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시세보다 낮은 가격으로 신고하거나 부담부 증여를 활용해 절세를 시도할 경우 적발 위험이 크게 높아진 만큼, 자산가들이 증여 시점을 늦추거나 매매, 상속 등 대체 수단을 검토하는 움직임이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향후 국세청이 실제 추징 사례와 처벌 결과를 공개할 경우, 부동산 증여 거래의 투명성이 높아지고 편법적인 부의 대물림 시도가 위축되는 효과도 기대된다. 시장에서는 정부의 대출 규제와 이번 세무 검증 강화 흐름이 맞물리며, 고가 주택 중심으로 증여 의존도가 얼마나 조정될지 주목하고 있다. 당국은 부동산 시장 동향과 조세 회피 시도 양상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추가 검증과 제도 보완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한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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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강남4구#마용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