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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양성자 치료센터”…서울성모, 아시아 첫 구축으로 암치료 지형 재편

정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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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입자치료 기술이 암 치료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이 아시아 최초로 도입하는 차세대 양성자 치료 시스템을 앞세워 대규모 양성자센터 구축에 나서며, 국내 암 치료 인프라와 정밀의료 경쟁 구도에 적지 않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특히 치료 정밀도와 속도를 동시에 높이는 적응형 양성자 치료, 다이나믹 아크 등 신기술을 앞세워 기존 1세대 장비와는 다른 새로운 표준을 제시할지 주목된다.

 

서울성모병원은 24일 병원 대회의실에서 벨기에 IBA와 양성자 치료 시스템 프로테우스플러스 도입을 위한 본계약을 체결했다고 25일 밝혔다. IBA는 양성자 입자 치료 솔루션 분야 글로벌 선두 기업으로, 전 세계 양성자 치료기 시장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번 계약으로 서울성모병원은 현재 아시아 지역에 설치된 장비 가운데 가장 최신 세대 시스템을 도입해 국내 최대 규모 양성자센터를 구축할 계획이다.

국립암센터가 2007년, 삼성서울병원이 2015년 양성자 치료를 시작한 것에 비해, 서울성모병원이 도입하는 장비는 10년 이상 기술 격차가 반영된 차세대 시스템으로 평가된다. 병원 측은 기존 국내 1세대 양성자 치료기 대비 정밀도, 적응성, 치료 효율 측면에서 한 단계 진화한 플랫폼으로, 암 병변에 대한 선량 조절과 정상조직 보호 능력이 크게 향상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핵심은 적응형 양성자 치료 기술이다. 적응형 양성자 치료는 환자의 치료 기간 동안 종양 크기나 위치, 주변 장기 상태가 변해도 추가 대기 없이 변화를 실시간 반영해 바로 치료 계획을 수정하고 조사에 들어갈 수 있는 방식이다. 기존에는 CT나 MRI 재촬영, 재계획 수립 등으로 일정 지연이 불가피했지만, 프로테우스플러스에서 구현되는 적응형 시스템은 이 과정을 통합·자동화해 치료 지연을 최소화한다. 서울성모병원에서 이 기능이 세계 최초로 구현될 것으로 알려져 관련 임상·운영 모델이 글로벌 레퍼런스로 활용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서울성모병원이 아시아 최초로 도입하는 다이나믹 아크 기술도 주목된다. 다이나믹 아크는 0.1도 단위로 정밀하게 각도를 제어할 수 있는 360도 회전 갠트리를 이용해 최적 각도에서 양성자 빔을 연속 조사하는 방식이다. 기존 정지 각도 기반 조사와 달리 빔이 호(arc)를 그리며 연속적으로 조사돼, 종양은 충분한 선량을 받으면서도 주변 정상조직에는 최대한 적은 선량만 노출되도록 설계할 수 있다. 병원 측은 이 기술로 치료 시간 단축과 부작용 감소를 동시에 꾀할 수 있어 고난도 고형암 환자에게 실질적인 치료 이득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양성자센터는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울성모병원 단지 내에 조성된다. 1단계 사업은 2029년 말까지 양성자 치료기 도입·설치와 가동을 목표로 진행되며, 투자 규모는 2500억 원 이상이다. 지하 7개층, 지상 1개층 총 8개층에 연면적 3만7850제곱미터, 약 1만1450평 규모로 설계된다. 방사선 차폐 구조, 가속기와 갠트리실 배치, 치료계획실과 영상진단실 연동 등 입자치료 특성을 고려한 인프라 설계가 병행될 전망이다.

 

병원은 1단계에서 안정적인 운영 기반을 확보한 뒤, 내부 계획에 따라 2단계 건립에 나선다는 구상이다. 2단계까지 완료되면 고형암 진료의 무게 중심을 새 양성자센터로 집중해, 기존 혈액병원과 더불어 암병원 기능을 통합한 서울성모 암병원을 완성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는 수술, 항암제, 면역항암제, 표적치료, 방사선치료에 양성자 치료를 추가해 원스톱 통합 암치료 클러스터를 구축하는 방향과 맞물려 있다.

 

이번 프로젝트는 규모 면에서도 국내 최대 양성자센터 구축을 목표로 한다. 서울성모병원은 3개의 치료 갠트리 구성을 통해 향후 급증이 예상되는 환자 수요에 선제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각 갠트리에서 입실, 치료 준비, 치료 진행이 동시에 이뤄지는 운영 체계를 마련해 장비 가동률을 극대화하고, 환자당 치료 대기 시간을 줄일 계획이다. 이런 다중 갠트리 운영모델은 충분한 배후 수요와 안정적인 환자 유입에 대한 확신 없이는 구현하기 어려운 만큼, 병원 측은 전국 단위 환자 흡수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접근성도 경쟁력 요소로 꼽힌다. 서울성모병원은 서울 고속버스터미널 인근에 위치해 수도권은 물론 지방 환자도 대중교통을 통해 비교적 수월하게 내원할 수 있다. 병원은 개원 시점부터 전국 입자치료 수요를 수용하기 위한 진료·예약 체계, 숙박·이동 지원 방안 등을 내부적으로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서울시가 발표한 터미널 부지 대규모 개발 계획을 바탕으로 병원 단지 전체 마스터플랜을 새로 짜, 양성자센터와 주변 인프라를 연계하는 방안도 구상하고 있다.

 

입자치료는 고에너지 양성자가 인체 내 특정 깊이에서 에너지를 집중 방출하는 브래그 피크 현상을 활용해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파괴하는 방식이다. X선 기반 기존 방사선치료보다 주변 정상조직 피폭을 줄일 수 있어 소아암, 두경부암, 척추종양, 재발성 종양 등에서 치료 이점이 크다고 평가된다. 다만 고가 장비와 두꺼운 차폐 구조물, 대규모 부지 등 초기 투자가 막대해 전 세계적으로도 도입 기관 수가 제한적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선도 기관이 구축한 임상 프로토콜과 운영 경험이 국제 표준으로 확산되는 경향이 강하다.

 

서울성모병원의 행보는 글로벌 양성자치료 시장에서도 의미 있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현재 미국과 유럽의 주요 암센터들이 IBA 장비를 포함한 다양한 입자치료 시스템을 운영 중이며, 일본과 중국도 입자치료 인프라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서울성모병원이 아시아 최초로 다이나믹 아크를 적용하고, 세계 최초로 적응형 양성자 치료 기능을 구현할 경우, 한국이 차세대 입자치료 임상 연구와 프로토콜 개발에서 영향력을 넓힐 여지도 있다.

 

이지열 서울성모병원 병원장은 차세대 양성자 기기 도입과 센터 건립을 병원 단지를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로 규정했다. 그는 혈액병원이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확보한 만큼, 암병원 역시 양성자센터를 기반으로 세계 최고 수준 치료를 제공하는 새로운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산업계와 의료계는 서울성모병원이 구축할 양성자센터가 실제로 환자 접근성을 높이고 치료 성과를 입증해, 국내 암치료 패러다임 전환의 촉매제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지켜보고 있다.

정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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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성모병원#iba#프로테우스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