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中보다 비싼 산업용 전기요금” 석화업계 구조개편 토론회…여야·정부, 요금 인하 해법 모색

권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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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공급 과잉으로 인한 구조조정 압박과 고비용 부담이 겹치며 석유화학 산업이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특히 중국보다 높은 산업용 전기요금이 여야와 정부, 업계, 학계가 함께 풀어야 할 정치·산업 정책 현안으로 떠올랐다.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제3세미나실에서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실 주최, 한국화학산업협회 주관으로 열린 석화업계 구조개편, 어떻게 경쟁력을 높일 것인가 정책토론회에서 업계와 전문가들은 산업용 전기요금 인하를 포함한 경쟁력 제고 방안을 집중 논의했다.  

이날 발제를 맡은 최홍준 한국화학산업협회 대외협력본부장은 중국과의 원가 경쟁력 격차를 수치로 제시하며 전기요금 부담 완화를 거듭 요청했다. 최 본부장은 중국과 원가경쟁력이 10∼15%가량 벌어져 있다며 원재료와 인건비에 더해 전기요금 등 유틸리티 비용이 차이를 키우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려면 산업용 전기요금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협회에 따르면 산업용 전기요금은 꾸준히 올라 올해 2분기 기준 석유화학 산업 매출원가의 5.11%를 차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국가별 산업용 전기요금 수준을 보면 올해 기준 중국과 미국은 킬로와트시당 각각 127원, 116원에 그쳤지만 한국은 192원으로 크게 높았다. 업계에서는 같은 제품을 놓고 중국 업체와 경쟁하는 상황에서 출발선 자체가 기울어져 있다는 호소가 이어졌다.  

 

최 본부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구조적 불리함을 더욱 키웠다고 분석했다. 그는 그동안 국내 업체들이 주로 도입해오던 러시아산 납사와 원유 수입 길이 막히면서 이를 중국 업체 대부분이 가져가고 있다며 전쟁과 인건비는 기업이 손대기 어렵지만 전기요금은 정부 지원이 가능한 영역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정 산업에 한해 전기요금을 깎아달라고 요구하긴 어렵다면서도 산업 위기 지역으로 지정된 곳에 한정하는 방식의 선택적 인하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구체적으로는 한국전력을 거치지 않고 전력시장에서 직접 구매를 허용하는 전력 직접 구매제도 규제 완화, 사업장 전체 평균 피크량 기준의 요금 산정방식 개선, 최대수요 전력 적용 기간 완화 등을 대안으로 내놨다.  

 

문제는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전기요금 인하 방안이 제도화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기업들은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부담을 꾸준히 호소해왔지만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석유화학산업 지원을 위한 특별법에는 관련 조항이 빠졌다. 이에 따라 법 제정과는 별개로 행정부 내 후속 협의가 핵심 쟁점으로 남게 됐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토론회에서 특별법 내 전기요금 인하 방안은 부처 간 협의 등 여러 문제가 겹치면서 포함되지 않았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한국화학산업협회가 제안한 산업 위기 지역 한정 요금 경감 방안 등에 대해 기후에너지환경부와 지속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공공요금이라는 특성을 이유로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조건부 인하 가능성을 내비쳤다. 관계자는 공공요금인 만큼 특정 분야의 요금 할인은 기피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대기업의 경우 특정 업종 전기요금 할인은 통상 이슈로 번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전력 수요 분산을 조건으로 특정 시간대 요금 인하나 지역 우대 요금과 같은 방안을 더 잘될 수 있는 방향으로 검토하겠다고 언급해 향후 제도 논의의 여지를 남겼다.  

 

토론자들은 전기요금뿐 아니라 사업구조 재편과 고부가·친환경 전환을 통한 체질 개선 필요성도 짚었다. 최 본부장은 경쟁이 치열해지는 만큼 내년에도 국내 업체들의 적자 규모가 눈에 띄게 줄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 러시아산 원유와 납사 도입이 재개되고, 사업재편으로 생산성이 높아지며 전기요금까지 감면된다면 더 이상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중국 등과 경쟁하지 않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을 비롯해 추경호 의원, 김기현 의원, 박대출 의원, 박수영 의원 등 여당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석화업계 현안을 공유했다. 좌장은 박주헌 동덕여자대학교 교수가 맡았고 산업통상자원부와 기후에너지환경부 관계자, 이덕환 서강대학교 명예교수, 김용진 단국대학교 교수, 오옥균 HD현대케미칼 부대표, 이경문 에쓰오일 상무 등이 패널로 참여해 업계와 정부의 책임과 역할을 두고 열띤 논의를 벌였다.  

 

정부 측에선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축사에 나서 구조개편 방향을 제시했다. 김 장관은 이번 석유화학 구조 개편을 통해 생산설비 합리화를 넘어 산업구조를 고부가·친환경 중심으로 전환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정부는 업계와 함께 현장의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고 산업의 경쟁력을 실질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해법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이미 구조조정이 가속화되는 모양새다. 석화 업계는 올해 연말로 예정된 사업구조 재편안 시한을 앞두고 인수합병과 설비 통폐합 논의를 서두르고 있다.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은 최근 충남 대산 나프타분해시설 통폐합 재편안을 제출했고, 여천NCC도 3공장 감축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 지역에서는 대한유화, SK지오센트릭, 에쓰오일 등 3사가 외부 컨설팅 기관 자문을 통해 재편안 마련을 추진하고 있다. 대산과 여수에 이어 울산까지 주요 석화 단지 전반에서 구조조정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전기요금과 같은 비용 요인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구조조정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날 국회 토론회는 전기요금 인하를 둘러싼 산업계와 정부의 입장차를 드러내는 동시에, 지역 한정·시간대별 요금 조정 등 절충안을 둘러싼 협상 구도를 확인한 자리로 평가됐다. 정치권과 정부는 특별법 후속 입법과 제도 개선 과정에서 산업용 전기요금 문제를 재논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정치권은 석유화학 구조개편과 전기요금 부담 완화 방안을 놓고 추가 토론과 입법 보완 논의에 나설 전망이다. 정부도 산업통상자원부와 기후에너지환경부 협의를 통해 산업 위기 지역 지정, 전력 직접 구매제도 개선 등 구체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권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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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훈#한국화학산업협회#산업용전기요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