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바이오

K-Perf로 NPU 잰다…정부, 국산 AI반도체 상용화 가속

허예린 기자
입력

국산 AI반도체의 성능을 체계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통합 지표가 마련되면서 국내 NPU 산업의 상용화 경쟁이 한층 가속할 전망이다. 정부와 산업계가 함께 만든 K-Perf 성능지표는 데이터센터부터 온디바이스까지 실제 서비스 환경을 반영해 국산 AI반도체의 연산 성능과 효율을 정량화하는 도구로 설계됐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메이저 칩과의 비교가 용이해지고, 공공·민간 수요기관의 도입 의사결정이 빨라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0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2025 AI반도체 미래기술 컨퍼런스를 열고 산업계 합의를 통해 마련한 AI반도체 공동성능지표 K-Perf를 공식 공개했다. K-Perf는 신경망처리장치 등 AI 연산 특화 반도체의 성능을 공통 기준으로 측정하기 위한 지표 체계로, 연산 처리량과 지연시간뿐 아니라 전력 소모, 실제 서비스 시나리오별 응답 특성 등 복합 지표를 담는 것이 특징이다.

이날 행사에서는 K-Perf의 발굴과 확산, 고도화를 전담할 K-Perf 협의체 출범식도 함께 진행됐다. 협의체에는 주요 수요기업과 공급기업 12개사, 3개 유관기관이 참여해 국산 NPU를 적용할 서비스 요구사항을 제시하고, 이를 성능 측정 모델과 조건, 세부 지표에 반영하는 역할을 맡는다. 정부는 K-Perf를 국내 AI반도체 공통 벤치마크로 자리잡게 해 수요기업과 반도체 설계사, 시스템 통합사가 동일한 언어로 성능을 논의하는 기반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K-Perf 지표 체계의 핵심은 실제 사용 환경을 최대한 세밀하게 반영했다는 점이다. 데이터센터용 NPU, 엣지 장비, 모바일 단말 등 적용 분야별로 요구되는 추론 성능, 처리하는 AI 모델의 유형과 크기, 허용 가능한 지연시간과 전력 예산 등이 다르다는 점에 착안했다. 수요기업이 제시한 다양한 서비스 환경을 유형화해, 각 상황에 맞게 성능 측정 모델과 실험 조건을 구분하고 지표를 세분화했다. 이를 통해 같은 NPU라도 워크로드별 강점과 한계를 가시적으로 비교할 수 있고, 국산 칩의 튜닝 방향도 보다 명확해진다.

 

출범식에서 K-Perf 협의체는 성능지표의 정착과 고도화, 민간과 공공 분야 전반으로의 확산을 위한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선언문에서 수요기업과 공급기업들은 국산 NPU의 성능 고도화와 현장 레퍼런스 구축을 위해 K-Perf를 적극 활용하고, 측정 데이터 공유와 활용에 협력하기로 했다. 그동안 수요기업은 국산 NPU 도입 시 실제 서비스 성능을 가늠할 구체적 데이터가 부족해 글로벌 제품과 비교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K-Perf 도입으로 이런 정보 비대칭이 완화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K-Perf 도입은 국산 AI반도체 생태계 조성과 맞물려 추진돼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올해 AI반도체 연구개발에 1425억 원을 투자해 설계 기술 고도화와 소프트웨어 최적화를 지원했다. 여기에 1차, 2차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실증과 사업화 예산을 794억 원 증액해 총 1103억 원을 집행하면서, 국산 NPU의 실제 서비스 적용을 뒷받침했다. R&D와 실증, 사업화를 합치면 올해에만 2500억 원이 넘는 재정이 AI반도체 분야에 투입된 셈이다.

 

실증·사업화 사업을 통해서는 16개 기업의 조기 상용화를 지원했고, 국산 AI반도체 관련 제품 26종을 개발하거나 고도화하는 성과를 거뒀다. 기업들은 오찬 간담회에서 추경 사업을 통해 국산 NPU 상용화에 필요한 테스트베드와 고객사 연계, 소프트웨어 스택 안정화 등 실질적 지원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상용화 기간이 단축되고 초기 레퍼런스 확보와 글로벌 진출에도 도움이 됐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이러한 실증 사업과 K-Perf 지표가 결합되면, 국산 NPU의 실제 성능과 신뢰성을 입증하는 데이터가 축적돼 해외 진출시에도 유효한 기준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컨퍼런스 성과전시 부스에서는 2PF급 차세대 국산 NPU 개발 결과와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을 국산 NPU에 최적화한 사례 등이 공개됐다. 페타플롭은 초당 10의 15제곱 번 연산이 가능한 수준을 뜻하는데, 2PF급은 대형 생성형 AI 모델을 병렬 처리할 수 있는 성능 대역이다. 국산 NPU가 이 수준의 연산역량을 확보하고, 자국 개발 파운데이션 모델과 결합해 상용 서비스 수준의 최적화를 달성한 사례가 나오면서 기술 자립도 측면에서 의미 있는 진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날 개막식에서는 AI반도체 기술과 산업 고도화에 기여한 산업유공자에 대한 부총리 표창도 이뤄졌다. 대형 초거대언어모델 지원에 최적화된 국산 NPU 개발에 기여한 오진욱 리벨리온 최고기술책임자, 국산 AI반도체 글로벌 협력 확산에 기여한 김한준 퓨리오사AI 최고기술책임자, 서웅 딥엑스 이사 등 6명이 수상자로 선정됐다. AI반도체 경진대회 대상인 부총리상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자충수팀 대표 조승우 학생에게 돌아갔다.

 

행사 이후 이어진 발표 세션에서는 국내외 AI반도체 기술 트렌드와 산업 동향이 집중 논의됐다. 수요기업의 AI반도체 응용·활용 사례, 차세대 AI반도체 설계 고도화, 생태계 확산 전략 등 네 개 세션이 진행됐고, 초청 강연에는 엔비디아와 SK하이닉스가 참여해 AI반도체와 메모리 관점에서 AI시대 반도체 시장의 중장기 전망을 제시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미 데이터센터용 GPU, NPU는 물론 고대역폭 메모리와 패키징 기술을 둘러싼 경쟁이 본격화돼 있는 만큼, 국산 AI반도체가 차별화할 수 있는 저전력, 특화 워크로드 영역을 선점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정부는 K-Perf를 기반으로 향후 공공 조달과 민간 도입에도 성능지표를 연계하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공공 클라우드, 스마트 시티, 의료 AI, 교육 서비스 등에서 국산 NPU 채택이 늘어나면, 수요 기업 요구와 성능 데이터가 다시 K-Perf 개선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도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다만 글로벌 AI반도체 시장에서 검증 수단으로 자리잡은 국제 벤치마크와의 정합성을 어떻게 확보할지, 국내 기준이 사실상의 비관세 장벽으로 비치지 않도록 투명성을 확보하는 과제도 남아 있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행사에서 국가 AI대전환을 뒷받침할 핵심 인프라로 AI반도체를 지목하며 전 국민이 비용 부담 없이 AI 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도록 저전력 국산 AI반도체 고도화를 집중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동시에 국내 AI반도체 설계기업, 이른바 팹리스가 크게 도약할 수 있도록 정책과 재정 지원을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 산업계는 K-Perf를 계기로 국산 AI반도체가 실제 시장에서 어느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는지 가시화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허예린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k-perf#국산ai반도체#np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