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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특별감독 충분히 필요"…김영훈 노동장관, 산재·은폐 의혹 정면 겨냥

조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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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재해 은폐 의혹과 과로사 논란을 둘러싸고 국회와 정부, 대형 플랫폼 기업이 정면으로 맞붙었다. 잇따른 사망 사고와 논란 속에서 고용노동부가 쿠팡을 상대로 특별근로감독과 전수조사에 나설 수 있다고 밝히면서 노동정책을 둘러싼 정치권 공방도 거세지고 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12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쿠팡 침해사고 및 개인정보 유출, 불공정 거래, 노동환경 실태 파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청문회에서 제주에서 숨진 택배노동자 고 오승용 씨와 관련해 "산업재해에 해당함이 상당해 보인다"며 "빠른 시일 내 처리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쿠팡 협력업체 소속 택배기사였던 오 씨는 11월 10일 오전 2시 10분께 제주시 오라2동 한 도로에서 1t 트럭을 운전하다 전신주를 들이받아 중상을 입었고, 같은 날 오후 3시 10분께 사망했다. 유족은 청문회 방청석에서 "장례식장에 쿠팡 직원이 1명도 오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연락조차 없다"며 "사과하는 게 힘드냐"고 호소했다.

 

헤롤드 로저스 쿠팡 임시대표는 청문회 증인석에서 "정말로 죄송하다.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산재 인정과 보상 문제에 대해선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만 답해 즉답을 피했다. 오 씨 유족은 "동생은 10월에도 8일 연속 근무 정황이 있다"며 과중한 노동과 산재 인정을 거듭 요청했다.

 

김 장관은 "대단히 잘못됐고 물량을 채우지 못할 때 고용이 불안해지는 구조적 문제를 악용한 게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지적하며 "산재 처리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 근로복지공단에서 처리될 수 있게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오 씨 사망을 둘러싼 과로·과중노동 여부에 대해 노동당국이 직접 지원과 점검에 나서겠다고 공언한 셈이다.

 

쿠팡이 업무상 질병 산재 소송을 대거 제기한 점도 도마에 올랐다. 김 장관은 "업무상 질병 사건은 회사의 산재 요율 산정에 아무런 지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쿠팡이 소를 제기해 얻을 이익이 없다"며 "무리한 소송이고, 산재보험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산재 제도를 둘러싼 대기업의 소송 남발 가능성에 노동부 수장이 공개 경고를 보낸 셈이다.

 

중대재해 조사 방해 여부를 둘러싼 공방도 이어졌다. 앞서 한 언론은 2020년 10월 심근경색으로 숨진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 고 장덕준 씨 사건과 관련해 김범석 쿠팡Inc 의장이 시그널 메신저를 통해 임원에게 축소·은폐를 지시했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이에 대해 노종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청문회에서 "이게 사실로 확인되면 해당 경영인과 법인은 어떤 책임을 지느냐"고 따져 물었다.

 

김 장관은 "중대재해 원인 조사를 방해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답했다. 이어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노동부 장관은 중대재해 발생 원인을 조사할 수 있다"며 "만약 저게 사실이면 제가 조사할 수 있는 현장을 훼손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체계 아래에서 경영진의 형사·행정 책임이 무거워질 수 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쿠팡의 산재 은폐 가능성에 대한 특별근로감독 필요성도 집중 논의됐다.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쿠팡풀필먼트서비스의 3년간 재해 현황 데이터를 보면 재해 710건 중 구급차로 이송된 건 359건에 불과하다"며 "나머지 351건은 회사 차량 등을 이용했고, 산재 처리가 안 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김 장관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소지가 다분해 보인다"고 답했다. 안 의원이 "노동부 차원의 특별근로감독이 필요하다"고 요구하자 김 장관은 "충분히 필요하고, 전수조사를 해보겠다"고 밝혔다. 쿠팡 물류센터와 배송 거점 등을 대상으로 한 전면 조사 가능성을 공식 언급한 대목이다.

 

과거 산재 신청 과정에서의 압박 의혹도 제기됐다. 쿠팡 칠곡물류센터 소속 노동자 고 장덕준 씨의 모친 박미숙 씨가 청문회에서 "합의가 나을 정도로 산재 승인이 쉽지 않다"고 토로하자, 김 장관은 "청문회가 끝나면 피해자 혹은 유족들이 왜 산재 신청을 하지 않게 됐는지 면밀히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이 "(산재 은폐와 관련해) 노동부에 고발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엄중 신속 수사하셔야 한다"고 강조하자 김 장관은 "근로복지공단과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모든 자료를 취합해 조사하겠다"고 했다.

 

쿠팡의 조직 구조와 노조 회피 전략 의혹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김 장관은 "쿠팡은 직고용된 택배노동자, 자회사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 소속 택배노동자, 대리점하고 위탁계약한 특수고용노동자 등 세 종류의 기이한 고용 형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똑같은 업무를 하는 노동자가 왜 세 종류의 고용 형태를 갖는지 국민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노조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 기인하는 것 같으며, 노동자를 혐오하는 것 아닌가 깊은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쿠팡의 인사관리제도도 위법 소지가 있는 것으로 노동부는 보고 있다. 안호영 의원은 "쿠팡이 인사관리제도를 이용해 저성과자를 퇴출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는 의심이 강하게 든다"고 비판했다. 쿠팡은 직원 개인 성과에 따라 탑티어, 하이밸류 플러스, 하이밸류, 리스트 이펙티브 등 4단계 등급을 부여하는 인사제도를 운용 중이다.

 

이 가운데 하위 10%에 해당하는 리스트 이펙티브 등급 직원은 성과개선계획 프로그램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한다. 일부 직원들은 해당 프로그램 과정에서 과도한 과제가 부과되고, 이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사실상 퇴사 압박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해 왔다. 이에 대해 권창준 고용노동부 차관은 "인사관리제도는 합리적 기준이 있어야 하고, 정당한 직무 전환 기회 등이 보장돼야 한다"며 "그런 측면에서 쿠팡 인사관리제도가 법에 위배되는 측면이 있다고 보인다"고 말했다.

 

권 차관은 아울러 "실태 확인을 통해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시정조치 등을 권고하겠다"고 밝혔다. 노동부가 쿠팡의 인사·노무 시스템 전반을 점검한 뒤 행정지도와 제도 개선 요구에 나설 수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이날 국회 청문회에서 여야는 산재 은폐 의혹과 노동환경 문제를 두고 치열한 공방을 이어갔다. 정부는 쿠팡을 포함한 대형 플랫폼 물류업체에 대한 전수조사와 특별근로감독을 검토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만큼, 향후 쿠팡의 책임 소재와 제도 개선 요구를 둘러싸고 정치권과 노동계의 논쟁이 한층 가열될 전망이다.

조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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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쿠팡#근로복지공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