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숨은 내란 어둠 끝까지 밝혀야”…이재명, 국가권력 범죄 무기한 처벌 강조

박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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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폭력의 상처를 둘러싼 갈등과 정의를 둘러싼 요구가 다시 부딪쳤다. 이재명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1년을 맞아 국가권력에 의한 내란과 국가범죄의 무기한 처벌을 재차 강조하면서, 과거사 청산과 국민 통합을 둘러싼 정치권 공방이 거세질 전망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2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곳곳에 숨겨진 내란의 어둠을 온전히 밝혀내 진정으로 정의로운 국민 통합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날 “숨겨진 내란 행위를 방치하면 언젠가 반드시 재발한다”고 언급한 데 이어, 내란·비상계엄 사태 관련 책임 규명이 통합의 출발점이라고 못박은 셈이다.

이 대통령은 먼저 12·3 비상계엄 사태를 돌아보며 당시 상황을 부각했다. 그는 “지난 12월 3일 우리 국민이 피로써 쟁취해 왔던 민주주의와 헌법 질서가 중대한 위기를 맞이했다”며 “그렇지만 국민의 집단지성이 빚어낸 빛의 혁명이 내란의 밤, 어둠을 몰아내고 다시 환하게 빛나는 새벽을 열어젖혔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렇게 위대한 빛의 혁명으로 탄생한 국민주권 정부는 지난 6개월간 국민의 삶 회복, 국가 정상화에 전력투구했다”고 자평했다.

 

구체적 성과도 열거했다. 이 대통령은 “비록 다른 국가보다 출발은 늦었지만 관세협상을 슬기롭게 마무리 지었다”고 언급했다. 또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확정해 국가의 전략 역량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도 했다”며 국방력 강화를 강조했다. 경제 상황과 관련해서는 “민생경제 역시 빠른 속도로 안정세를 회복하고 나아가 성장을 준비 중”이라고 진단했다.

 

민주주의 평가를 둘러싼 국제적 시각도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무엇보다 이 과정에서 확인된 우리 민주주의의 강인한 회복력은 세계 민주주의의 새로운 희망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드러난 국민 저항과 제도 회복 능력이 국제사회에서 의미 있게 거론되고 있다는 취지다.

 

향후 국정 방향에 대해서는 ‘대도약’을 키워드로 제시했다. 그는 “국민이 꿈꾼 다시 만날 새로운 세계를 향한 발걸음에 박차를 가해야겠다”며 “국민의 삶을 개선하고 대한민국 대도약의 길을 위대한 대한국민과 함께 열어가겠다”고 밝혔다. 비상계엄 사태를 지나온 경험을 토대로 사회·경제 전반의 체질 개선에 나서겠다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동시에 비상계엄 저지 과정에 참여한 시민에 대한 국가 차원의 예우 방침도 내놨다. 그는 “정부는 비상계엄 저지와 헌정질서 수호에 함께 한 국민에게 표창 등 의미 있는 증서를 수여하고, 국민적 노고와 국민주권 정신을 대대로 기억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헌정질서 수호의 주체를 국민으로 명시하고, 상징적 보상을 제도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정치권의 최대 쟁점이 될 국가범죄 시효 문제도 재차 꺼냈다. 이 대통령은 국가폭력 범죄의 공소시효를 없애고,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에 소멸시효를 적용하지 않는 법안의 재입법 추진 상황을 직접 점검하며 “속도를 내야 할 것 같다”고 주문했다. 그는 해당 입법을 위한 진행 상황을 질문한 뒤, 조속한 추진을 거듭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된 법안은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 제정안이다. 해당 법안은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했으나, 당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해 폐기됐다. 이 대통령이 재입법을 지시하면서, 향후 국회에서 거부권 재논란과 함께 여야 간 공방이 재현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국가권력 범죄에 대한 처벌 원칙을 극단적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인식을 담고 있다. 그는 “고문해서 누구를 죽인다든지, 사건을 조작해서 멀쩡한 사람을 감옥에 보낸다든지, 또는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나라를 뒤집어놓는 등 국가권력으로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데 대해서는 나치 전범을 처리하듯 영원히 살아있는 한 형사 처벌하고 상속 재산의 범위 내에서 상속인들까지 끝까지 책임지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래야 근본적으로 대책이 되지 않겠느냐. 그래야 재발을 막는다”고 강조했다.

 

국가범죄를 나치 전범 처리에 비유한 이 발언은 향후 정치권에서 큰 논쟁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인권침해 행위자에 대한 무기한 형사처벌과 상속인까지 책임을 묻자는 구상은 책임 범위와 형벌체계, 재산권 보장 등 헌법 질서와 직접 연결되는 사안이어서 여야의 입장 차가 클 수밖에 없다. 과거 권위주의 시기 국가폭력 피해자 단체들은 환영 입장을 보일 가능성이 크지만, 보수 진영에서는 법치주의 원칙과 법률 불소급 원칙을 내세워 강력히 반발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비상계엄 사태 책임 규명과 국가범죄 시효 폐지 논의가 내년 총선과 대선 정국에서 주요 갈등 축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진보 진영은 과거사 청산과 인권 보호를 내세우고, 보수 진영은 정치 보복과 과거 파헤치기라고 맞불을 놓을 수 있다. 내란과 비상계엄 사태를 둘러싼 평가 차이가 곧바로 진영 대립으로 번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날 국무회의는 비상계엄 사태 이후 1년간의 과정과 향후 입법 과제를 점검하는 자리가 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내란의 잔재 청산과 국가범죄 시효 폐지를 정면으로 제기하면서, 국회는 관련 법안 논의를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비상계엄 저지 공로자 예우와 함께 국가범죄 재발 방지 대책을 구체화할 계획이고, 국회는 향후 회기에서 특례법 재입법을 둘러싼 본격 논의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박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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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대통령#비상계엄#국가범죄시효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