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투자·기술수출 소수 쏠림”…글로벌 바이오 양극화 심화
글로벌 제약바이오 벤처 투자와 기술 라이선스 거래가 일부 기업과 대형 딜 위주로 쏠리는 양극화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국내 코스닥 바이오 시장은 코로나19 이전 고점을 회복하며 미국과 중국의 주요 바이오 지수를 앞서는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실제 자금 흐름은 프리 IPO 등 특정 단계와 소수 유망 기업에 집중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빅파마의 기술도입 규모 역시 커지는 반면 건수는 감소해, 파이프라인 초기 단계보다는 임상 진전이 확인된 자산에만 선택적으로 베팅하는 보수적 기조가 강화되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고금리와 규제, 약가 압박이 겹친 환경이 향후 몇 년간 제약바이오 산업 재편을 가속할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한종수 전 신한투자증권 부장은 25일 글로벌 헬스케어시장조사기관 아이큐비아가 서울에서 개최한 인사이트 포럼 2025에서 글로벌 제약바이오 자본시장과 기술 거래 동향을 이렇게 진단했다. 한 부장은 코스닥 바이오 지수가 2024년 이후 코로나19 이전 전고점을 돌파하면서 미국 XBI, IBB 등 대표 바이오 지수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강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팬데믹 이후 조정 국면이 길어졌던 국내 바이오 섹터가 지수 수준에서는 회복 국면에 진입했다는 해석이다.

벤처 투자 측면에서도 2022년과 2023년에 나타났던 급격한 위축 국면은 벗어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 부장은 글로벌 벤처 투자가 지난해 코로나19 이전 최대 수준에 근접하는 회복세를 보였으며, 풍부한 유동성을 배경으로 중장기적으로 예년 수준의 투자 활동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제약바이오 산업 특성상 신약개발 리드타임이 10년 이상 소요되는 만큼, 구조적 성장 기대를 바탕으로 자금 공급이 완전히 마르지는 않았다는 설명이다.
다만 투자 회복의 수혜가 모든 기업에 고르게 확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한 부장은 다수 바이오 벤처가 여전히 투자 위축을 호소하고 있지만, 에임드바이오처럼 상장 전 단계에서 500억원이 넘는 자금을 조달하는 프리 IPO 사례도 존재한다고 소개했다. 이는 기술 경쟁력과 사업성 검증이 일정 수준 이상 이뤄진 기업으로 수요가 쏠리면서, 초기 단계나 사업 모델이 불명확한 기업들의 체감 자금난은 오히려 심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는 시장 전체 자금량은 많지만 실제 딜은 소수 기업 위주로 이뤄지고 있다며, 바이오 벤처들은 투자가 끊긴 것이 아니라 선택과 집중이 강화되고 있는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기술 거래 시장에서도 대형화와 집중화가 병행되는 구조 변화가 관측된다. 한 부장은 빅파마의 라이선싱 건수 자체는 줄어들고 있지만 개별 거래 규모는 2020년 이후 일정 수준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팬데믹 시기 백신과 치료제를 둘러싼 기술 경쟁 이후 글로벌 기술 거래 총액은 연간 1000억 달러 수준에서 1500억 달러 수준으로 한 단계 올라섰고, 평균 거래 금액과 계약 체결 시점에 지급되는 선수금도 2022년 이후 뚜렷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정 타깃과 기술 플랫폼에 대한 확신이 생겼을 때 대규모 계약을 맺는 경향이 강화된 것이다.
반면 연구개발 초기 단계의 플랫폼이나 후보물질을 대상으로 한 거래 비중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부장은 과거에는 전임상 초기 자산들을 묶어 패키지 형태로 빅파마에 기술이전하는 방식이 흔했지만, 2021년 이후에는 이러한 딜 구조가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글로벌 제약사가 임상 2상 이상과 같이 임상 위험이 일정 부분 해소된 파이프라인을 중심으로 도입 전략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초기 단계 바이오텍의 엑시트 경로가 제한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기술 검증 부담이 바이오 벤처에 더 크게 전가되면서, 자체 임상 수행 능력과 데이터 생산 역량이 생존의 핵심 변수로 부상하는 흐름으로 볼 수 있다.
M&A 시장도 단기적으로는 위축된 양상이다. 한 부장은 글로벌 제약바이오 M&A 건수와 총 거래 규모가 최근 몇 년간 감소세를 기록하고 있다며, 각국의 독점 규제 강화, 약가 절감 정책, 거시 경제 변동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해석했다. 특히 메가딜로 불리는 대형 M&A는 현저히 줄어드는 대신, 특정 적응증이나 기술에 특화된 소규모 바이오텍을 인수해 포트폴리오를 보완하는 전략이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미국과 유럽에서 반독점 심사가 강화된 가운데, 빅파마가 구조적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R&D 라인업을 확장하는 절충적 선택으로 보인다.
약가에 대한 지속적인 압박과 기술 패권 경쟁에 따른 정치적 개입도 글로벌 거래 위축을 자극하는 변수로 거론됐다. 한 부장은 각국 정부가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해 약가를 강하게 통제하고 있고, 주요국 간 기술주권 경쟁이 심화되면서 바이오 기술 이전과 인수합병을 둘러싼 정책 리스크가 커졌다고 진단했다. 이 같은 불확실성이 단기적으로는 라이선싱과 인수 딜 타이밍을 늦추거나 조건을 보수적으로 재조정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시장 저평가 국면에서의 자금 조달 대안으로는 로열티 파이낸싱이 부상하고 있다. 로열티 파이낸싱은 의약품 특허권이나 상표권 등에서 발생할 미래 매출 기반의 로열티 흐름을 담보로 자금을 확보하는 구조로, 기술가치와 매출 전망을 금융상품화하는 방식이다. 한 부장은 특히 허가 전후 시점에 특화된 금융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며, 주식 시장 밸류에이션이 크게 눌렸던 2023년에 로열티 파이낸싱 건수와 규모가 급격한 증가세를 보였다고 소개했다. 평균 거래 규모는 일정 수준에서 유지되면서도 적용 사례가 확대되고 있어, 전통적인 증자나 공모 상장만으로는 충당하기 어려운 개발비를 보완하는 수단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벤처 투자와 기술 거래, 인수합병이 동시에 양극화되는 환경에서 자본 전략과 기술 전략을 함께 설계하는 역량이 핵심 경쟁력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초기 기술을 보유한 바이오 벤처는 단기 라이선스아웃보다는 임상 단계 진전을 통해 거래력을 높여야 하고, 빅파마와 중견 제약사는 선택과 집중에 맞는 딜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제약바이오 산업계는 투자 회복과 딜 대형화 흐름이 실제 시장 성과로 이어질지, 그리고 규제와 약가, 기술주권 정책 변화가 어느 방향으로 작용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