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 車관세 15퍼센트 시대”…현대차·기아, 수익성 회복 모색→수출전략 분수령
대미 자동차 관세 인하가 11월 1일 자로 소급 적용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국내 완성차 업계의 수출 전략이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한미 관세협상 후속 조치로 발의된 특별법이 관세 인하의 법적 요건을 마련했고, 미국 연방관보 게재만을 남겨두면서 그간 기업을 짓눌러 온 불확실성 부담은 뚜렷이 옅어지는 분위기다. 관세율이 25퍼센트에서 15퍼센트로 낮춰질 경우 현대차·기아를 중심으로 대미 수출 재편과 이익 구조 회복이 속도를 낼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26일 한미 관세협상에서 합의된 내용을 제도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한미 전략적 투자 관리를 위한 특별법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법안은 전략적 투자의 추진 체계와 절차, 한미전략투자기금 설치, 한미전략투자공사 한시적 설립 등을 규율하고 있으며, 이 구성이 갖춰짐에 따라 자동차와 부품에 대한 관세 인하는 11월 1일을 기준으로 소급 적용될 수 있는 법적 토대를 확보했다는 평가가 제기됐다. 향후 미국 연방관보에 협상 결과가 게재되는 시점부터 한국산 승용차에 부과되는 관세율은 25퍼센트에서 15퍼센트로 낮아지며, 소급 기준일 역시 동일하게 적용될 예정이다.

정부도 관세 인하의 의미를 거듭 강조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특별법안 발의 직후 설명 자료를 통해 자동차와 부품 관세 인하가 11월 1일 자로 소급 적용되는 요건을 충족했다며 우리 기업의 대미 수출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완화됐다고 평가했다. 지난 14일 양국 정부가 한미 전략적 투자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한 데 이어 연내에 후속 입법 절차가 무리 없이 이어지면서 국내 자동차 업계는 그간의 관망 기조에서 벗어나 중장기 사업 계획을 다시 설계할 수 있는 환경을 맞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의 안도감도 분명히 관측된다. 한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관세 협상이 원만히 마무리되고, 대미투자특별법 발의로 관세 인하의 소급 적용 가능성이 커지면서 한시름 덜었다고 전했다. 다만 그는 관세 부담이 여전히 무시할 수준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며 관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동화 기술 고도화, 부품 현지 조달 다변화, 생산 효율성 제고 등 내실을 다지는 전략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관세 리스크 완화와 별개로 기업의 비용 구조 개선 경쟁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업계 전반에 공유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현대차그룹의 경영진도 변화된 환경을 신중하게 낙관하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19일 소급 적용 기준이 11월 1일로 정리된 점을 두고 한 달이라도 빨리 적용되는 편이 바람직하다며, 관세협상 타결로 내년 미국 시장 여건이 이전보다 나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언급했다. 미국은 전동화와 스포츠유틸리티차량 수요가 동시 확장되는 핵심 전략 시장인 만큼 관세 인하에 따른 가격 경쟁력 회복은 판매 물량 유지와 브랜드 파워 강화에 직결되는 요소로 받아들여진다.
수치로 환산되는 관세 부담도 적지 않다. 한국은 지난해 미국 시장에 143만 2천713대의 자동차를 수출했고, 올해는 3분기까지 누적 100만 4천354대를 선적한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이 25퍼센트 고율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한 4월 이후로만 따져보면 매달 약 10만대 규모의 차량이 25퍼센트 관세에 직면해 왔다. 관세는 곧바로 원가 상승과 이익률 하락으로 연결되며, 환율 변동과 물류비 부담까지 겹친 탓에 수익성 방어가 일상적인 경영 과제로 굳어졌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완성차 2강인 현대차와 기아는 실제 실적에서도 관세의 충격을 정면으로 드러냈다. 현대차의 올해 3분기 관세 비용은 1조 8천212억원, 기아는 1조 2천340억원에 달했다. 같은 기간 현대차의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9.2퍼센트 감소했고, 기아의 영업이익 감소 폭은 49.2퍼센트에 이르렀다. 주요 차종의 판매량이 유지되거나 소폭 늘어났음에도 이익이 급감한 배경에 대미 관세라는 구조적 비용 요인이 자리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대목으로 평가된다.
시장 평가 기관도 관세율 변화가 가져올 재무적 효과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현대차그룹이 25퍼센트 관세율을 전제로 부담하는 연간 관세 비용을 약 8조 4천억원으로 추산한 바 있으며, 관세율이 15퍼센트로 낮아질 경우 연간 부담액은 약 5조 3천억원 수준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관세율 10퍼센트포인트 인하만으로도 3조원에 가까운 비용 절감 여지가 생기는 셈으로, 이는 신차 개발 투자, 전동화 인프라 확충, 연구개발 확대에 재투자될 수 있는 자금 여력으로 직결될 수 있다.
기업 내부에서도 내년을 기점으로 체질 개선 효과가 가시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공유되고 있다. 김승준 기아 재경본부장은 지난달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3분기가 관세 영향 측면에서 저점에 해당한다고 언급하며 4분기 관세 영향이 3분기와 큰 차이는 없을 것으로 보지만, 내년에는 관세 인하 효과가 온전히 반영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관세율이 낮아지면 미국 소비자 가격 안정과 딜러 인센티브 구조 조정이 가능해져 브랜드 가치와 손익 구조를 함께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커진다는 설명이다.
다만 관세율이 인하됐다고 해서 부담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전략적 접근이 요구된다.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15퍼센트 관세가 새롭게 부과되는 구조가 자리 잡으면서, 관세 이전 대비로 보면 미국 시장에서의 가격 경쟁력 약화 우려는 여전히 남는다. 해외 현지 생산 확대 여부, 미국 내 공장과 한국 공장 간 물량 배분 재조정, 부품 공급망의 현지화 수준 제고 등 복합적인 숙제가 맞물려 있다. 국내 생산 물량이 장기적으로 조정될 경우 관련 협력업체와 지역 경제에 미치는 파장도 면밀하게 살펴야 할 과제로 지적된다.
전문가들은 관세 인하를 수출 경쟁력 방어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판으로 평가하면서도 구조 개선이 뒤따르지 않을 경우 효용이 제한적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환율 변동성, 미국 내 전기차 보조금 정책 변화, 중국 브랜드의 가격 공세가 동시에 진행되는 환경에서 한국 완성차 업체들은 관세 부담을 기술 경쟁력과 브랜드 프리미엄으로 상쇄해야 하는 이중의 과제를 떠안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미 자동차 관세 인하가 연방관보 게재를 통해 확정될 경우, 현대차와 기아를 비롯한 국내 자동차 업계는 관세 완화 효과를 기반으로 전동화 전략, 제품 포트폴리오 조정, 생산기지 운영 재편을 종합적으로 점검하는 중장기 전략 수립에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