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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약금도 사라졌다”…KT 해킹 후폭풍에 통신판 재편 주목

신유리 기자
입력

해킹 사고가 잇따르면서 새해 이동통신 시장이 다시 한번 출렁일 가능성이 커졌다. KT가 정보통신망 침해 사고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전 고객을 대상으로 위약금 면제에 나서면서, 번호이동을 전제로 한 가입자 쟁탈전이 재가열될 수 있어서다. 지난해 유심 정보 유출 사고 당시 같은 방식의 위약금 면제 정책으로 가입자 70만명 이상을 순손실한 SK텔레콤의 전례가 있어 업계의 긴장감이 높다. 다만 연쇄 해킹 사고로 인한 이용자 피로감과 가입자 구조 차이 등 변수도 적지 않아 실제 이탈 규모와 시장 재편 속도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관측도 공존한다.

 

KT에 따르면 회사는 무단 소액결제 피해를 포함한 침해 사고 책임을 근거로 오는 13일까지 전 고객에 대한 위약금을 면제하기로 했다. 대상은 휴대전화 이동통신 가입자를 포함한 전 고객으로, 해당 기간 중 약정 해지나 번호이동 시 위약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이미 지난 9월 1일 이후 해지한 고객도 오는 14일부터 31일까지 환급을 신청하면 납부했던 위약금을 돌려받는다. 경찰이 사고를 처음 인지한 시점을 기준으로 보상 범위를 설정했다는 설명이다.

이 조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민관합동조사단이 지난달 30일 발표한 KT 침해 사고 조사 결과와 맞물려 있다. 조사단은 KT 이용약관상 위약금 면제 조항을 이번 사고에 적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과기정통부가 조사 내용을 토대로 5개 외부 기관에 법률 자문을 의뢰한 결과, 4곳은 이번 침해 사고가 KT의 관리상 과실에 해당해 전 고객에 대한 위약금 면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1곳만 정보 유출이 확인된 고객으로 대상을 한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이보다 앞서 유사한 해킹 사고를 겪었던 SK텔레콤은 유심 정보 유출 사태 이후 같은 방식의 위약금 면제 정책을 시행한 바 있다. SK텔레콤에 따르면 유심 해킹 사고가 공개된 지난해 4월 19일부터 위약금 면제 기간이 끝난 7월 14일까지 약 3개월 동안 회사를 떠난 가입자는 105만명에 달했다. 같은 기간 유입된 신규 가입자는 33만명에 그치면서, 순감 기준으로 72만명가량의 가입자를 잃었다. 이 여파로 SK텔레콤의 이동통신 시장점유율은 40퍼센트 아래로 떨어졌다.

 

SK텔레콤 사례는 단통법 개편 이후에도 잠잠하던 보조금 경쟁을 다시 자극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번호이동 보조금과 공시지원금이 급등하면서 고가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이 전개됐다. 이번에도 KT의 전면 위약금 면제를 기점으로 비슷한 양상이 재현될 수 있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이미 위약금 면제 시행 전날부터 이동통신 3사는 주요 단말기에 대한 공시지원금을 약 10만원 상향 조정했다는 후문이다.

 

통상 크리스마스 이후부터 2월 말 갤럭시 신제품 공개 전까지는 이동통신 시장 비수기로 분류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러한 계절적 특성을 언급하면서도 KT 변수를 감안할 때 예외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고 본다며, 새해 첫 주말부터 번호이동 시장이 가열될 가능성을 점치는 분위기를 전했다. 약정 위약금 부담이 사라진 가입자들이 심리적 장벽 없이 통신사 이동을 검토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기 때문이다.

 

KT 내부에서도 이번 위약금 면제 조치가 단기적인 가입자 이탈로 직결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회사는 SK텔레콤이 유심 해킹 사태 때 내놨던 수준과 비슷한 4천5백억원대 고객 보상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한편, 이탈 후 복귀하는 고객에 대해서는 멤버십 등급과 장기고객 혜택을 사실상 원상 복원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고객이 다른 통신사를 경험한 뒤 다시 돌아오더라도 손해 보지 않는 구조를 제시해, 중장기적으로 가입자 기반을 방어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다만 KT의 실제 가입자 이탈 규모가 SK텔레콤 수준에 근접할지는 미지수다. KT는 이번 침해 사고와 관련된 구체적인 유심 교체 건수를 공개하지 않았지만, 시장 안팎에서는 SK텔레콤의 유심 대란 당시만큼 교체 수요가 쏠리지는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SK텔레콤 유심 사고 당시에는 범위와 방식에 대한 불안이 극대화되며 약정 중도 해지가 대거 발생했지만, 이후 롯데카드와 쿠팡, KT, LG유플러스 등 여러 기관에서 침해 사고가 잇따르면서 이용자들의 체념 섞인 인식이 확산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어느 통신사를 선택해도 해킹 위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인식이 이동을 주저하게 만든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KT의 위약금 면제 조치는 통신 3사 지형에 적지 않은 파장을 줄 수 있다. 특히 이동통신 3위 사업자인 LG유플러스에게는 반사이익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LG유플러스는 SK텔레콤 유심 정보 유출 사태 당시 KT처럼 공격적인 공세를 펼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가입자가 의미 있게 늘어나는 효과를 경험했다. 실제로 LG유플러스는 지난해 2분기에 22만3천명, 3분기에 4만4천명의 가입자를 순증시키며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이번에도 KT에서 이탈하는 가입자의 일정 비율이 LG유플러스로 흘러갈 가능성이 제기된다. 특히 가격 민감도가 높은 고객이나 알뜰폰 대신 메이저 통신사를 선호하는 고객층 일부가 LG유플러스를 선택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마케팅 측면에서는 SK텔레콤과 KT가 정면 승부를 벌이고, LG유플러스가 상대적으로 낮은 강도로 프로모션을 유지하면서 조용한 수혜를 노리는 구도가 재현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다만 LG유플러스 역시 보안 논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앞서 보안 전문 매체 프랙 보고서가 제기한 해킹 의혹과 관련해 LG유플러스는 뒤늦게 관계 당국에 신고했다. 지난달 29일 민관합동조사단이 KT와 함께 조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KT 사고의 파급력이 상대적으로 커 LG유플러스 사안은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다만 해킹 의혹이 제기된 일부 서버가 폐기된 사실이 확인되면서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향후 수사 결과에 따라 LG유플러스도 별도의 보안 강화 대책과 고객 보상 방안을 내놓아야 할 가능성이 있다.

 

마케팅 현장에서는 정부의 공포마케팅 자제 요청이라는 변수가 존재한다. 최근 감독 당국은 통신사들이 경쟁사의 보안 사고를 부각해 고객 불안을 자극하는 방식의 영업을 자제해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KT 위약금 면제 사실을 영업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언급하기는 조심스러운 분위기라며, 실제로 많은 고객이 정확한 보상 내용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일정 수준의 정보를 안내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이동통신사가 잇따른 해킹 사고에 따른 단기 보상 경쟁을 넘어, 근본적인 보안 수준 제고와 약관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보고 있다. 약정제도와 위약금 구조가 통신사와 고객 간 정보 비대칭을 심화시키고, 사고 발생 시 대규모 이탈과 과열 마케팅을 반복적으로 촉발하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서다. 한편으로는 통신 서비스가 국가 기간 인프라라는 점에서, 해킹 사고 책임과 보상 범위를 둘러싼 제도적 기준을 보다 명확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새해 이동통신 시장은 KT 위약금 면제와 잇따른 보안 사고의 여파가 맞물리며, 가입자 이동과 보조금 경쟁 사이에서 새로운 균형점을 찾는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산업계는 이번 보상 경쟁이 일회성 가입자 쟁탈전으로 끝날지, 보안과 약관 구조 개편으로 이어질지 촉각을 세우고 있다. 기술과 신뢰, 단기 마케팅과 장기 투자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통신 시장 재편의 방향을 가를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신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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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sk텔레콤#lg유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