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지 관점 없인 산업안전도 없다”…정부, 디지털 일경험·중대재해 대수술 예고
성평등가족부가 청년일경험 지원사업과 중대재해 감축정책 등 핵심 고용·안전 정책 전반에 성인지 관점을 반영하라고 관계부처에 권고했다. 청년 디지털 일경험, IT·과학기술인력 양성, 서비스업 산업재해 관리, 외국인 근로자·유학생 보호, 디지털 기반 범죄예방 인프라까지 포괄하는 조정안으로, 데이터 기반 성평등 정책 전환의 분기점이 될지 주목된다. 특히 산업재해와 생식독성 물질 노출, 정보격차와 디지털 성폭력 대응 등 IT·바이오 융합 환경에서 취약계층 안전을 세밀하게 반영하라는 요구가 커지는 흐름과 맞물린다. 업계와 정책분야에서는 이번 조치가 향후 산업안전, 인력양성, 디지털 헬스·보건 정책 설계에도 구조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성평등부는 23일 전년도 특정성별영향평가 결과를 토대로 도출한 정책 개선 권고안을 관계부처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특정성별영향평가는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는 주요 정책과 사업이 성별에 따라 다른 영향을 주는지 성평등 관점에서 분석하고, 필요할 경우 제도 개선을 요청하는 절차다. 과학기술, 고용, 보건, 치안, 외국인 정책 등 다양한 영역에서 실제 이용자·근로자의 성별 구조와 위험 노출 차이를 반영하도록 설계돼 있다.

이번에 성인지 관점 강화를 권고받은 정책은 총 7개다. 청년일경험 지원사업, 분만취약지 지원사업, 범죄예방 및 대응역량 강화, 중대재해 감축정책, 외국인 사회통합정책, 과학기술인재 육성과 소상공인 지원에 관한 중장기 기본계획, 정보격차 완화와 학교 성희롱·성폭력 신고의무제도, 자영업자 안전 등 생활밀착형 정책이 포함됐다. IT·과학기술 인력 양성과 디지털 인프라, 산업안전, 공중보건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구도라는 점에서, 성평등 요인을 산업 구조 수준에서 재설계하라는 메시지로 읽힌다.
청년일경험 지원사업의 경우 디지털·IT 직무를 포함한 실무 중심 일경험 기회를 제공해 경력직 선호가 강한 채용 시장에 대응하는 프로그램이다. 사업 만족도는 전반적으로 높은 편이지만, 참여자 구성과 수혜 효과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성인지 통계가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성별뿐 아니라 지역, 학력, 전공, 장애 여부 등과 결합된 데이터가 쌓여야 사업 유형을 세분화하고, 여성·지방대 출신·비전공자 등 취약집단을 겨냥한 디지털 직무 특화 모델을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평등부는 고용노동부에 다양한 청년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프로그램 발굴과 더불어 경력개발 로드맵을 포함한 통합 지원 체계 구축을 제안했다. 훈련과 취업지원 서비스 연계, 금융·IT 등 청년 수요가 높은 산업 분야에 양질의 일경험을 집중 공급하는 전략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청년 디지털 인턴십, 공공·민간 클라우드 운영, 데이터 분석 실습 등 고부가가치 직무 중심으로 설계할수록 경력 단절이나 저임금 단순 업무로의 편중을 막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중대재해 감축정책은 산업안전보건 체계를 전면 재편하는 핵심 과제로, 그동안 제조업과 건설업 중심으로 설계돼 왔다. 성평등부는 서비스업, 조리·청소·돌봄과 같은 여성 다수 고용 직종에도 성인지 관점을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비스업은 근골격계 질환, 감염 위험, 감정노동, 야간 노동 등 복합적 유해 요인이 높지만 통계와 예방정책에서 상대적으로 사각지대로 남았다는 분석이다.
특히 생식독성 물질을 취급하거나 노출되는 근로자와 그 자녀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 기준이 중요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반도체·전자부품 제조, 실험실 연구, 제약·바이오 생산 현장처럼 화학물질 사용 비중이 높은 산업에서 여성 인력 비중이 점차 확대되는 흐름도 영향을 미쳤다. 생식독성물질은 생식 기능이나 태아 발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물질로, 노출 수준에 따라 장기적 건강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 성별·연령대별 맞춤형 관리가 요구된다.
고용노동부는 여성 다수 고용 업종과 조리작업 등에서의 산업재해 예방 연구를 이어가고, 사업장에서 생식독성물질을 쉽게 파악해 환기설비 설치, 보호구 지급, 교육 강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개정된 기술지원규정을 배포할 계획이다. 화학물질 관리시스템과 작업환경측정, 스마트 센서 기반 모니터링 등 IT 기술을 접목하면 노출 경로를 정밀하게 추적하고 위험을 줄일 수 있어, 향후 디지털 안전관리 솔루션 수요 확대도 예상된다.
보건복지부가 추진 중인 분만취약지 지원사업도 성인지 관점에서 보완 과제로 제시됐다.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의 산모와 신생아를 보호하기 위해 공공보건의료 교육과 의료 접근성, 응급 이송 체계 강화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산부인과 의사 부족과 분만실 폐쇄로 인한 지역 편차가 커진 상황에서, 분만 취약 지역의 데이터 기반 위험 평가와 원격 모니터링, 응급 이송과 연계된 디지털 헬스 시스템 도입이 과제로 부각된다.
복지부는 분만취약지 사업에 참여하는 시·군·구를 대상으로 분만 이송 체계를 강화하고, 수유와 예방접종 지원을 포함한 산모·신생아 건강관리 지원사업을 보다 적극적으로 시행할 계획이다. 이는 고위험 임신부 관리, 출산 전후 정신건강 관리, 신생아 집중치료 등과 연계된 정밀 보건 서비스 확대로도 이어질 수 있다.
외국인 사회통합정책에서는 농·어업 분야 외국인 근로자의 주거 환경과 유학생의 체류 안정성이 핵심 과제로 꼽혔다. 정부 조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농·어업 분야 외국인 근로자의 60퍼센트 이상이 가설건축물 등 열악한 주거시설에 거주하고 있어 고온·한랭, 위생 문제, 화재 위험 등에 노출돼 있다. 이런 공간은 사생활 보호와 방범 수준도 낮아 성희롱·성폭력 피해로 이어지는 사례가 반복돼 왔다.
성평등부는 고용노동부와 법무부에 외국인 근로자 기숙사와 휴게시설에 대한 주기적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유학생의 모성보호 장치를 보완할 것을 권고했다. 특히 유학생은 현행 고등교육법상 임신·출산·양육 등을 사유로 휴학할 경우 체류자격을 변경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 학업 지속과 건강권 보호 측면에서 불이익이 발생해 왔다.
노동부는 E-9 비자 사업장에 대한 정기 지도·점검을 이어가고 외국인 근로자의 주거환경 개선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다. 법무부는 임신·출산으로 휴학한 유학생의 체류 안정성을 고려해 체류자격 유지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외국인 근로자·유학생 보호 조치는 국내 노동시장과 고등교육의 글로벌 경쟁력 유지, 지역 사회 통합 측면에서도 중요 변수가 될 수 있다.
경찰청에는 여성 안전 귀가를 목표로 조성해 온 안심귀갓길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 가이드라인 마련이 요청됐다. 폐쇄회로 TV 설치 기준, 조도·가시성, 비상벨과 관제센터 연계, 대상지 선정 알고리즘 등 디지털·물리 보안 요소를 체계적으로 반영해야 한다는 취지다. 방범 인프라가 실제 범죄 발생 밀도와 이동 패턴을 반영하도록 개선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는 청년 연구자 육성 정책을 수립할 때 남녀 취업률과 진학률, 분야별 배치 등 성별 참여 현황을 정밀하게 파악하라는 권고가 내려졌다. 연구개발 현장과 대학원, 스타트업·벤처 생태계에서 여성 비율이 낮거나 경력단절률이 높은 구조를 정확히 이해해야 맞춤형 제도 설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국가 연구개발 인력 수급과 혁신 역량 확보 전략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이다.
중소기업벤처부가 수립하는 과학기술인재 육성과 소상공인 지원 중장기 계획에도 성인지 요소를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이 더해졌다. 디지털 전환, 온라인 커머스, 바이오·헬스케어 스타트업 분야에서 여성 창업자와 소상공인의 비중이 빠르게 늘고 있는 만큼, 금융·교육·멘토링 지원에서 성별 격차를 줄일 수 있는 세부 프로그램이 요구된다는 판단이다.
성평등가족부는 이번 평가와 권고가 국민 생활과 밀접한 안전·보건·고용 등 정책 전반에 성인지 관점을 체계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출발점이라는 입장이다. 원민경 성평등부 장관은 특정성별영향평가를 통해 제도 개선이 필요한 과제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 의미를 두면서, 향후 관계부처와 협력해 정책 집행 과정에 성평등 관점을 지속적으로 반영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 수렴해 실질적인 개선으로 이어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산업계와 정책 분야에서는 디지털 전환과 바이오·헬스케어 확산 속에서 성인지 관점이 얼마나 정교하게 제도화되는지가 새로운 성장과 안전의 조건이 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