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BS 폐지로 연구자 행정 부담 던다…출연연, 국가임무 연구 전환 예고
정부가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연구개발 성과를 떨어뜨린 원인으로 지적돼 온 연구과제중심제도 PBS를 공식적으로 없애고, 국가 전략기술과 난제 해결에 집중하는 국가임무형 연구체제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인건비를 따내기 위한 과제 수주 경쟁과 과도한 행정업무로 연구 몰입이 어려웠던 구조를 손보겠다는 구상이다. 업계와 연구계에서는 출연연이 안정적인 기반 위에서 장기·대형 연구에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지 주목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8일 제2회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를 열고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임무 수행체계와 평가·보상체계, 연구환경 혁신 방향을 담은 과학기술분야 출연연 정책방향을 발표했다. 출연연을 국가 연구개발 생태계의 중심축이자 기술 혁신을 선도하는 거점으로 재정비하겠다는 것이다.

핵심은 PBS의 전면 폐지다. PBS는 연구자가 스스로 과제를 수주해 확보한 예산에서 인건비를 충당하는 방식으로, 단기 성과 위주의 과제 쪼개기, 과제 관리 행정업무 증가, 불안정한 고용 구조를 유발해 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정부는 앞으로 기관출연금으로 연구자의 인건비를 전액 지원해 출연연 내부 인력의 기본 안정성을 높이고, 과제 수주를 위한 경쟁에서 벗어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정부는 PBS 폐지와 맞물려 국가임무형 연구 수행 체계도 새로 짠다. 전략기술 확보와 미래 난제 해결, 기업 및 지역 역량 제고 등 중장기 국가 아젠다를 중심으로 출연연이 주도적으로 연구를 기획하는 전략연구사업을 신설한다. 기존처럼 개별 부처 과제 공모에 대응하는 방식이 아니라, 정부와 기업 수요를 바탕으로 출연연이 큰 그림을 그리는 구조에 가깝다. 이를 위한 별도 추진체계도 구축해 분야별 거점 역할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평가와 보상 체계도 성과 중심으로 바뀐다. 지금까지 기관평가는 계획 대비 목표 달성도 등 정량지표 비중이 높았지만, 앞으로는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대표성과를 중심으로 평가 체계를 전환한다. 평가 항목과 절차를 줄여 행정 부담을 낮추는 한편, 평가 결과를 반영한 전체 구성원 대상 성과급과 우수 연구진 대상 상여금을 신설해 성과지향적 보상을 강화한다. 이는 연구자 개인의 평가와 기관 전체의 전략 목표를 연동시키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인력 경쟁력 강화를 위한 처우 개선도 병행한다. 정부는 우수 인재 유치와 확보를 위해 보수 수준을 보완하고 특별채용을 확대하는 방안을 지속 추진할 계획이다. 특히 인건비가 기관출연금으로 보장되는 구조에서는 성과에 따른 추가 인센티브가 인력 유인 수단이 될 수 있어, 출연연 간 인재 확보 경쟁 양상도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연구환경 측면에서는 연구행정의 전문화를 통해 연구자의 비연구 업무를 최소화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과제 기획과 집행, 정산, 각종 평가 대응 등으로 세분화돼 있던 행정 업무를 전담 조직과 인력 중심으로 재편해, 연구자가 실험 설계와 데이터 분석 등 핵심 연구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제도적 기반 정비도 예고됐다. 정부는 2004년 제정된 과학기술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의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을 전부 개정해, 최근 기술과 정책 환경에 맞는 출연연 지원·육성 틀을 다시 짤 계획이다. 인공지능, 바이오, 반도체 등 전략 분야의 변화를 반영한 역할 재정의와 함께, 연구 자율성과 책임성을 어떻게 균형 있게 담을지 개정 논의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구혁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은 과학기술분야 출연연을 과학기술계 혁신과 변화를 이끌 핵심 주체로 규정하면서 PBS 폐지와 임무 재정립의 의미를 강조했다. 그는 출연연이 국가임무 수행 거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산업계와 연구계에서는 새 정책 방향이 실제 조직 문화와 연구 현장에 어떻게 안착할지, 그리고 대형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