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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암 정밀치료 시대 여나…서울대병원, 생활습관까지 짚었다

정하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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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암이 대표적 난치암에서 정밀 관리가 필요한 만성질환형 암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 만성 간질환을 안고 있는 환자에서 주로 발생하는 만큼, 최신 항암 기술과 더불어 생활습관 관리까지 통합한 전략이 강조된다. 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유수종 교수는 간암의 치료 옵션 확장에도 불구하고 조기 발견과 예방이 성패를 가르는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업계와 의료계에서는 간암 관리 패러다임 변화가 정밀의료와 디지털 헬스케어 확산의 시험대가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간암은 간세포에서 발생하는 악성 종양으로, 국내 5년 상대 생존율은 39.4퍼센트에 그친다. 전체 암 환자 5년 상대 생존율 72.9퍼센트와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치다. 특히 간암 환자 10명 중 9명은 진단 당시 이미 B형·C형 간염, 간경변, 비알코올성 지방간 등 만성 간질환을 가지고 있어 치료 난도가 높다. 복수, 정맥류 출혈, 간성 혼수 같은 합병증이 동반되면 항암 치료 강도를 조절해야 해 치료 설계가 복잡해진다.

간은 손상 초기에도 자각 증상이 거의 없어 침묵의 장기로 불린다. 간암 역시 별다른 이상이 없어 건강검진 초음파나 혈액검사에서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가 많고, 이때 이미 병기가 상당히 진행된 사례도 적지 않다. 황달, 오른쪽 윗배 통증, 식욕부진, 체중 감소 등 증상이 나타나더라도 소화불량이나 담석 등과 혼동되기 쉽다. 전문가들이 고위험군의 정기 검진을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배경이다.

 

치료 전략은 완치를 목표로 하는 근치적 치료와, 암 진행을 억제해 생존 기간을 늘리고 추가 치료 기회를 확보하는 비근치적 치료로 나뉜다. 근치적 치료에는 종양이 위치한 간을 잘라내는 간 절제술, 말기 간경변과 간암이 동반된 환자에게 적용하는 간 이식술, 그리고 고주파 열치료 같은 국소 치료가 포함된다. 종양 크기가 작고 간 기능이 비교적 보존된 상태에서 조기에 발견되면 근치적 치료로 환자 10명 중 9명은 장기 생존을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진단 당시 종양 크기나 개수가 많거나, 간경변으로 간 기능이 이미 크게 떨어진 경우에는 비근치적 치료가 선택된다. 대표적으로 경동맥화학색전술, 방사선 치료, 전신 항암요법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 치료는 암세포의 성장 속도를 늦추고 남아 있는 간 기능을 지키는 것을 우선 목표로 삼으며, 종양 부담을 줄여 후속 수술이나 국소 치료 가능성을 넓히는 역할도 한다.

 

경동맥화학색전술은 간암 치료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중재적 시술로, 간으로 혈류를 공급하는 경동맥을 통해 암에 연결된 혈관을 찾아 항암제를 주입한 뒤 색전 물질로 혈관을 막아 종양을 굶기는 방식이다. 작은 종양에서는 수술에 필적하는 성적이 보고된다. 최근에는 항암 성분을 머금은 미세한 구슬을 주입해 일정 기간 약물이 서서히 방출되도록 설계한 약물방출 미세구 색전술과, 방사선을 방출하는 구슬을 이용해 종양에 고선량을 집중하는 방사선 색전술 등 진화된 기술이 도입되면서 정상 간 조직 손상을 줄이고 표적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방사선 치료는 종양이 간문맥 같은 주요 혈관을 침범했거나, 뼈와 폐, 림프절 등 원격 전이가 있어 수술이나 색전술만으로는 조절이 어려운 환자에게 주로 적용된다. 3차원 입체조형 방사선, 정위 방사선 수술 등 기술이 발전하면서 종양에만 선량을 집중시키는 정밀도가 높아졌지만, 종양 크기가 간 전체 부피의 3분의 1 미만일 때 가장 효과적이고, 정상 간세포 방사선 장애를 최소화하기 위한 정교한 계획 수립이 필요하다.

 

전신 항암요법은 종양이 간 안팎으로 넓게 퍼졌거나, 간 혈관 침범과 원격 전이로 국소 치료만으로 조절이 어렵다고 판단될 때 선택된다. 기존에는 주로 표적항암제를 단독으로 사용하는 전략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면역항암제와 항혈관신생제, 표적치료를 조합하는 병합요법이 표준 치료로 자리 잡는 추세다.

 

표적항암제는 암세포 증식과 혈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특정 신호전달 경로를 골라 차단해 종양의 성장을 억제한다. 반면 면역항암제는 환자 면역세포에 걸려 있는 일종의 브레이크를 해제해, 면역세포가 스스로 암세포를 인지하고 공격하도록 돕는 기전이다. 최근 글로벌 제약사들은 두 계열 약제를 함께 투여해 응답률과 생존 기간을 높이는 임상 데이터를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암세포가 에너지를 만드는 대사 경로만 선택적으로 끊는 차세대 대사 표적 치료제도 개발이 활발해, 간암 치료 옵션을 더욱 세분화할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본다.

 

그럼에도 간암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여전히 조기 발견이다. B형·C형 간염, 간경변, 중증 비알코올성 지방간 등 고위험군은 아무 증상이 없더라도 6개월마다 간 초음파와 혈청 알파태아단백 검사를 병행하는 정기 검진이 권고된다. 초음파는 작은 결절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고, 알파태아단백은 혈액에서 간세포성 암 발생을 의심할 수 있는 지표라 상호 보완적이다. 국내외 가이드라인 역시 6개월 주기를 기준으로 삼는 추세다.

 

예방 차원에서는 과음을 피하고 만성 간염 관리를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B형 간염은 백신 접종으로 평생에 가까운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아직 예방 백신이 없는 C형 간염은 감염 경로 차단이 최선책이다. 비위생적인 기구를 사용하는 타투, 반영구 화장, 피어싱 시술에 특히 주의해야 하고, 면도기와 손톱깎이 등 혈액이 묻을 수 있는 개인 위생용품을 공동 사용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감염된 환자는 항바이러스제를 통해 바이러스량을 줄이면 간경변과 간암 위험을 크게 낮출 수 있다.

 

생활습관 관리도 치료 효과와 재발률에 직접적 영향을 준다. 금연은 기본이고, 음주를 할 경우에도 과음을 피하고 충분한 수분 섭취 후 2일에서 3일 정도 금주 기간을 둬 간이 회복할 시간을 주는 방식이 권장된다. 과체중과 복부 비만은 비알코올성 지방간염을 거쳐 간암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 요인으로 지목된다. 탄수화물과 포화지방 비중을 줄이고, 생선과 계란, 두부, 살코기 등 양질의 단백질과 채소 중심 식단으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기에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병행해 근육량을 유지하면 인슐린 저항성과 염증 반응을 줄여 간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축적되고 있다.

 

유수종 교수는 간암 완치 판정 이후에도 재발 관리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는 간암은 치료 후 5년 안에 절반 이상에서 재발이 관찰될 정도로 재발률이 높다고 지적했다. 암세포를 제거하더라도 B형·C형 간염이나 진행된 간섬유화 같은 기저 간질환이 그대로 남아 있으면 새로운 암이 같은 간에서 다시 생길 수 있다는 설명이다. 유 교수는 만성 간질환 치료제와 수술, 색전술, 표적·면역항암제 등 간암 치료 전략 발전으로 성적은 꾸준히 개선되고 있지만, 약물만으로는 한계가 남아 있어 생활습관 교정과 간 건강 유지가 장기 생존의 관건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의료계와 산업계에서는 간암 관리 고도화가 앞으로 정밀의료, 디지털 헬스케어, 만성질환 모니터링 플랫폼의 핵심 시험장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정기 검진 주기 관리, 영상과 혈액검사 결과의 장기 추적, 생활습관 데이터 연계가 필요해 데이터 기반 관리 모델이 적용되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고위험군 발굴과 비용 부담, 장기 추적 과정에서의 개인정보 보호 문제도 함께 풀어야 할 과제로 지목된다. 산업계는 이번 간암 치료 전략 고도화 흐름이 실제 의료 현장과 보험 체계 안에 안착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정하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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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종#서울대병원#간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