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수술 4000례…일산차병원, 경기 서북부 허브 부상
로봇수술이 수도권 서북부 의료 지형을 바꾸고 있다. 차 의과학대학교 일산차병원이 로봇수술 4000례를 달성하며, 로봇 기반 정밀수술을 지역 거점 수준으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갑상선암과 부인암 등 미세한 조작이 필요한 암 수술에 로봇 플랫폼을 적극 적용하면서, 수술 후 회복 기간 단축과 미용적 만족도 개선 효과가 부각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일산차병원의 사례를 수도권 로봇수술 경쟁 구도의 분기점 중 하나로 보는 시각도 나온다.
일산차병원은 31일 병원 이벤트홀에서 로봇수술 4000례 달성 기념식을 열었다. 이번 성과는 지난해 12월 3000례를 넘긴 뒤 11개월 만에 추가로 1000례를 채운 것이다. 병원은 2020년 1월 첫 로봇수술을 시행한 이후 약 4년 10개월 만에 4000건을 집도하며 고속 성장 곡선을 그렸다. 병원 측에 따르면 전국 로봇수술 기관 가운데 로봇 장비 한 대당 평균 수술 건수 1위 수준을 기록해, 장비 운용 효율과 의료진 숙련도를 동시에 입증한 것으로 평가된다.

기념식에는 송재만 원장, 조영업 진료부원장, 김의혁 진료부장, 김법우 의료기획실장, 노주원 부인종양센터장, 강성수 외과장 등 주요 보직자와 의료진이 참석해 그간의 수술 성과를 공유하고 향후 로봇 수술 전략을 논의했다. 병원은 단순 수술 건수 확대를 넘어, 각 진료과별 고난도 수술 비중을 높이고 환자 만족도 지표를 정교하게 관리하는 방향으로 로드맵을 구체화하고 있다.
일산차병원의 로봇수술 포트폴리오는 갑상선암, 유방암, 부인암 등 여성암과 간담췌외과 영역까지 폭넓게 구성돼 있다. 특히 목 주변 신경과 혈관이 밀집해 고난도 술기가 요구되는 갑상선암, 골반 깊숙한 위치에서 정밀한 해부가 필요한 부인암 수술에서 로봇 플랫폼을 적극 활용해왔다. 병원 측은 합병증 발생률을 낮추고 수술 후 회복 시간을 줄이는 등 안정적 성과를 축적해 왔다고 설명한다.
기술적 차별화 요소로는 구강 접근 로봇 갑상선 수술과 단일공 로봇수술 장비 도입이 꼽힌다. 일산차병원은 경기 서북부 지역에서 유일하게 구강 접근 로봇 갑상선 수술을 정규 술기로 운영 중이다. 구강 접근 로봇 갑상선 수술은 입 안쪽 점막에 소형 절개창을 내 로봇 팔과 카메라를 삽입하는 방식으로, 피부를 직접 절개하지 않아 목 앞쪽에 흉터가 남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3차원 고배율 화면과 로봇 팔의 미세한 조작 기능을 결합해 종양을 정밀 제거하면서도 미용적 요구가 큰 젊은 환자층의 수요에 대응하는 수술법이다.
지난해 10월에는 최신 단일공 로봇수술 장비인 다빈치 SP 시스템을 지역 최초로 들여왔다. 기존 다공 다빈치 시스템이 여러 개의 절개창을 사용하는 것과 달리, 다빈치 SP는 배꼽 부위 한 곳만 절개해 여러 관절형 로봇 팔을 투입하는 구조다. 이 방식은 절개 부위 통증과 출혈 부담을 줄일 수 있고, 흉터 크기도 최소화된다. 좁은 체강 내부에서 로봇 팔을 유연하게 회전시키며 복잡한 해부 구조를 따라가는 데 유리해, 고난도 부인과 수술이나 전립선 등 비뇨기계 수술에도 확장 적용이 가능한 플랫폼으로 분류된다.
4000번째 수술 집도의인 갑상선암센터 김희준 교수는 로봇수술의 장점을 정밀성과 안전성에서 찾는다. 김 교수는 로봇 팔의 손떨림 보정 기능과 입체 영상 시스템을 바탕으로, 미세 혈관과 신경을 보존하면서 종양을 제거하는 데 유리하다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로봇수술은 출혈량 감소와 통증 완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입원 기간 단축과 일상 복귀 시점 앞당김으로 이어져 환자 만족도가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경쟁 구도 측면에서 보면, 국내 대형 병원들은 이미 다빈치 로봇 플랫폼을 중심으로 부인과, 비뇨기과, 위장관, 이비인후과 등 다수 영역에 로봇수술을 확산시키며 차세대 수술 표준 선점을 노리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다빈치에 더해 유럽계 신규 로봇 수술 플랫폼들이 등장하면서 다극화 양상이 진행 중이다. 이러한 가운데 일산차병원은 경기 서북부 거점이라는 지리적 이점과 특화 술기를 결합해, 지역 환자 유입과 수술 케이스 축적 측면에서 차별화를 강화하고 있는 셈이다.
로봇수술 확산은 디지털 헬스케어와 정밀의료 흐름과도 맞물린다. 수술 장면과 술기 데이터는 향후 인공지능 기반 술기 분석과 교육용 시뮬레이션에 활용될 여지가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로봇 팔 움직임 데이터를 수집해 수술 경로를 표준화하거나, 합병증 발생 가능성을 예측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국내의 경우 아직 수술 데이터 활용과 관련한 법제와 윤리 가이드라인이 완전히 정비되지 않아, 향후 규제 논의와 함께 실제 데이터 활용 범위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송재만 원장은 일산차병원의 강점으로 하드웨어와 인력, 협진 시스템의 결합을 꼽았다. 그는 우수한 장비 도입에 더해 각 진료과 전문의의 로봇 술기 경험, 마취과와 영상의학과 등 다학제 협진 체계가 정착되며 로봇수술의 안정성이 높아졌다고 평가한다. 병원은 향후 수술 건수 확대와 함께 케이스별 임상 지표를 정량 관리하는 체계를 강화해, 실제 생존율과 삶의 질 개선 등 중장기 성과를 분석한다는 방침이다.
일산차병원은 암통합진료센터를 중심으로 수술, 항암, 방사선 치료에 기능의학, 보완의학, 한방진료를 결합한 토털 케어 시스템도 운영 중이다. 유전체 검사와 영상 진단, 수술 후 재활과 생활 습관 관리까지 연계해 환자별 맞춤형 치료 전략을 구성하려는 시도다. 이는 미국과 유럽 주요 암센터가 유전체 기반 정밀의료와 로봇수술, 방사선 치료를 패키지로 묶어 통합 케어를 구현하는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전문가들은 일산차병원과 같은 지역 거점 병원의 로봇수술 역량 강화가 국내 의료의 공간적 격차를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수도권 대형 대학병원으로 환자 쏠림 현상이 지속되는 가운데, 지역 기반 병원이 고난도 수술 역량을 확보하면 환자 이동 비용과 대기 시간을 줄일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로봇 장비 도입에 따른 비용 구조와 보험 체계 정비, 데이터 활용에 관한 제도 논의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경기 서북부 로봇수술 허브를 선언한 일산차병원이 향후 인공지능 기반 수술 계획 수립, 데이터 연계 정밀의료 등으로 영역을 확장할 수 있을지에 업계 시선이 쏠린다. 산업계에서는 실제 임상 성과와 경제성, 제도적 기반이 맞물릴 때 로봇수술이 의료 표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기술과 의료, 규제와 윤리의 균형이 향후 성장의 전제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