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장은 특정 정파 위한 자리 아냐" 내란특검, 조태용 전 국정원장 구속기소
12·3 비상계엄을 둘러싼 내란·외환 의혹을 두고 내란 관련 특별검사팀과 국가정보원 수장이 정면 충돌했다. 문민 통제와 정보기관 정치 중립성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부각되면서, 향후 재판 과정이 정국의 새로운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조은석 특별검사가 이끄는 내란 등 특별검사팀은 28일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을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고 밝혔다. 특검팀은 조 전 원장에게 국가정보원법상 정치 관여 금지 위반, 직무유기, 위증, 증거인멸, 허위공문서 작성 및 동행사, 국회 증언 감정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박지영 특별검사보는 이날 브리핑에서 국정원장의 책무부터 짚었다. 그는 "국정원장은 특정 정파나 대통령 개인의 정치적 입지를 위한 자리가 아니고, 국민을 우선에 두고 국가 안위를 지켜야 하는 자리"라며 "조 전 원장은 정치인 체포를 지원하라는 윤 전 대통령의 지시를 보고받는 등 국가 안전 보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폭도 행위가 발생하고 있는데도 국정원장으로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박 특별검사보는 조 전 원장이 사태 노출 이후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그는 "그런 상황이 드러나자 부하를 거짓말쟁이로 치부하고, 이를 은폐해 특정 정파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활용했다"며 "정치적 중립성은 국정원의 핵심 가치이며 국가 안전 보장은 어떤 경우에도 보호돼야 할 최우선의 목표"라고 지적했다.
특검팀에 따르면 조 전 원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이전부터 비상계엄 선포 계획을 인지하고도 국회에 보고하지 않아 직무를 유기한 혐의를 받는다. 또한 계엄 선포 후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으로부터 이른바 계엄군의 정치인 동향을 보고받고도 마찬가지로 국회에 알리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조 전 원장이 계엄 선포 및 집행과 관련된 정보가 국가 안전 보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임을 알면서도 국정원장의 국회 보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박 특별검사보는 "국정원장의 국회 보고 의무에 대해 직무유기 혐의를 적용해 기소한 첫 사례"라고 언급하며 이번 기소의 의미를 부각했다.
정치 관여 혐의와 관련해 특검팀은 조 전 원장이 계엄 당시 홍 전 차장의 동선이 담긴 국가정보원 폐쇄회로TV 영상을 국민의힘 측에만 제공하고, 자신의 동선이 담긴 영상은 더불어민주당 측에 제공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국정원법이 명시한 정치 관여 금지 조항을 정면으로 위반했다는 주장이다.
또 특검팀은 조 전 원장이 지난 2월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 유용원 의원, 윤상현 의원과 통화한 다음 날 국정원 내부에서 계엄 당일 홍 전 차장의 동선이 촬영된 CCTV 영상을 반출하기 위한 다운로드 작업이 이뤄진 정황을 포착했다고 전했다. 이어 성일종 의원이 조 전 원장과 통화한 뒤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김석우 당시 법무부 차관을 상대로 "국정원장 공관 앞 CCTV를 빨리 압수수색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질의한 점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특검팀은 조 전 원장의 행위가 직접적인 내란 가담과는 거리가 있다고 선을 그었다. 박 특별검사보는 "조 전 원장은 계엄 당시 홍 전 차장의 보고를 받고 내일 아침에 결정하자며 미루는 등 내란에 직접 참여하는 것에는 거부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나 "체포 지시 등을 본인이 듣지 않은 것처럼 진술해 탄핵심판 과정에서 사회 혼란을 야기했다"고 비판하며, 계엄 해제 이후 수습 과정과 탄핵심판 절차에 개입한 정황에 수사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특검팀은 조 전 원장이 국회와 헌법재판소에서 허위 증언을 하고, 국회 내란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등에 허위 답변서를 제출한 혐의도 함께 적용했다. 조 전 원장은 그동안 계엄 선포 이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포고령 등 계엄 관련 문건을 보지 못했고, 다른 국무위원들이 문건을 받는 장면도 보지 못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후 확인된 대통령 집무실 CCTV 영상에는 국무위원들이 포고령 등으로 추정되는 문건을 전달받아 열람하는 모습이 담겼고, 조 전 원장이 집무실을 나가며 종이를 접어 양복 주머니에 넣는 장면도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은 이 영상이 조 전 원장의 기존 진술과 배치된다고 보고 위증과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의 근거로 제시했다.
조 전 원장은 윤 전 대통령과 홍 전 차장의 비화폰 정보 삭제에 관여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특검 수사에 따르면 홍 전 차장이 윤 전 대통령과의 통화 내역을 공개한 이후 조 전 원장과 박종준 전 대통령경호처장 간 통화가 있었고, 그 뒤 비화폰 기록이 삭제된 정황이 확인됐다. 특검팀은 이러한 정황을 토대로 증거인멸 혐의를 추가했다.
특검팀은 이 같은 혐의를 종합해 이달 7일 조 전 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법원에 청구했고, 법원은 지난 12일 영장을 발부했다. 조 전 원장이 제기한 구속적부심 역시 법원에서 기각됐다. 조 전 원장은 현재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준비하고 있으며, 혐의 전반을 둘러싼 치열한 법정 공방이 예상된다.
박 특별검사보는 "본인이 인지한 정보를 사실대로 국민과 국회에 보고했다면 진상 규명과 사태 수습이 더 빨리 이뤄졌을 것"이라고 언급하며 조 전 원장의 책임을 거듭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는 국정원장의 국회 보고 의무와 정보기관의 정치적 중립성이 재차 도마에 오른 만큼, 향후 재판 결과에 따라 국정원 제도 전반에 대한 논의가 확산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국회는 내란 혐의 진상규명과 관련한 추가 국정조사와 입법 보완 논의를 예고한 상태여서, 향후 회기에서 국정원 통제 장치 강화 및 정보기관 개혁 방안을 놓고 본격적인 논의에 나설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