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행동치료 새 근거…그릿 성향이 주간졸음 줄였다
낮 시간대의 과도한 졸림을 줄이기 위해서는 무작정 버티는 끈기보다, 장기 목표에 대한 꾸준한 흥미를 유지하는 성향이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대표적인 수면장애 증상인 주간졸음이 학업과 직장 생활, 사회적 기능을 전방위로 떨어뜨리는 가운데, 성격 특성에 기반한 비약물 치료 전략에 근거를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수면제 중심의 전통적 치료가 가진 한계가 드러나면서 인지행동치료 등 심리·행동 중재의 역할이 커지는 상황에서, 이번 결과는 디지털 헬스·수면의학 분야의 임상 알고리즘 설계에도 참고 자료가 될 수 있다.
의료계에 따르면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윤창호 교수와 세종충남대병원 신경과 김재림 교수 연구팀은 장기적 목표를 향한 끈기와 열정을 뜻하는 성격 특성 그릿과 주간졸음 간의 연관성을 분석해, 그릿의 세부 요소 중 ‘관심의 지속성’이 낮 시간 졸림 감소와 뚜렷하게 연결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릿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심리학자 앤젤라 더크워스가 제안한 개념으로, 좌절 상황에서도 장기간 목표를 향해 노력을 이어가는 경향을 의미한다. 기존에는 지능, 환경 요인보다 개인의 성취를 잘 설명하는 요인으로 주목돼 왔으나, 수면의학에서 그 영향이 체계적으로 분석된 사례는 드물었다.

연구팀은 전국 2356명 성인을 대상으로 대표적 주간졸음 평가 도구인 엡워스 졸음증 척도를 활용해 낮 시간 졸림 정도를 측정했다. 동시에 그릿을 두 가지 하위 척도, 즉 ‘관심의 지속성’과 ‘노력의 꾸준함’으로 나눠 점수를 산출하고, 각 요인이 주간졸음과 어떤 상관관계를 갖는지 통계적으로 비교했다. 엡워스 척도는 운전 중, TV 시청, 대화 중 등 8개 상황에서 졸음 가능성을 점수화해 일상 기능에 지장을 주는 수준의 졸림을 가려내는 표준 도구다.
분석 결과, 장기 목표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고 오래 유지하는 경향이 강한 그룹에서는 주간졸음을 경험하는 비율이 일관되게 낮게 나타났다. 반면 목표를 향해 꾸준히 노력하는 성향 자체는 주간졸음과 통계적으로 유의한 연관이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팀은 이를 두고 단순한 인내나 의지력 증대만으로는 수면장애 개선에 직접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목표에 대한 정서적 흥미를 장기간 유지하는 심리적 특성이 수면 패턴과 더 밀접하게 연결될 수 있다고 해석했다.
특히 이번 결과는 수면장애 치료 패러다임 변화와 맞물려 주목된다. 최근 불면증과 주간졸음 치료에서는 약물 의존도를 줄이고, 환자의 인지 구조와 생활 습관, 수면위생을 교정하는 인지행동치료가 1차 선택지로 부상하는 추세다. 이런 흐름 속에서 그릿의 세부 요소 중 어떤 성향이 주간졸음과 실제로 관련되는지 규명한 것은, 개인별 성격 프로파일에 맞춘 맞춤형 수면 코칭, 디지털 치료제 알고리즘 설계에 기초 데이터를 제공하는 셈이다.
연구팀은 과거에도 그릿이 강한 사람일수록 불면증을 덜 겪는 경향이 있다는 결과를 제시한 바 있다. 이번에는 동일한 성격 특성이 수면시간 부족과 관련된 또 다른 스펙트럼인 주간졸음과도 연동된다는 점을 일반인 대규모 표본을 통해 보여줬다. 특히 세계 최초로 그릿과 주간졸림의 관련성을 대규모 인구 집단에서 규명한 연구라는 점에서, 향후 국·내외 수면의학 가이드라인에 참고 근거로 인용될 가능성도 있다.
윤창호 교수는 주간졸음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졸음으로 인해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학업 성적과 직장 업무 성과, 대인관계를 모두 악화시키는 대표 수면장애 증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무조건적인 끈기나 참는 태도보다는, 장기 목표에 대한 열정과 흥미를 잃지 않도록 설계된 심리적 개입과 인지행동치료가 주간졸음을 줄이는 데 더 건설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교육 현장에서는 성적 부진의 원인으로 의지 부족보다 수면장애와 심리 특성을 함께 평가해야 한다는 메시지로도 해석된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수면과 호흡에 게재됐다. 수면의학과 정신건강의학,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을 아우르는 융합 연구의 일환으로 평가되며, 향후에는 청소년, 교대근무자, 장거리 운전자 등 고위험 집단을 대상으로 한 후속 연구와 디지털 기반 인지행동치료 프로그램 개발로 확장될 여지도 있다. 산업계와 의료계는 성격 특성과 수면장애의 연계가 임상 현장과 제품 개발에 실제로 활용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