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피지컬 AI” 농식품부·과기정통부 동행…스마트농업 전환 속도전
인공지능 기술이 농식품 산업의 구조를 바꾸는 전환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농장과 식품공장, 유통 전 과정에 AI를 접목하는 AX 전략을 공식 의제로 올리면서, 농업·농촌의 디지털 전환이 정책 차원에서 본격화되는 흐름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논의가 고령화와 인력난, 기후위기에 직면한 국내 농업 경쟁력을 좌우할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정통부 장관과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12월 22일 충남 천안시 연암대학교 스마트팜 연구 현장을 찾아 농식품 기술·산업 AX 촉진을 위한 정책 간담회를 공동 주재했다. 두 부처 수장이 농식품 AX를 전면에 내세워 합동 간담회를 연 것은 농업 분야 AI 융합을 범정부 차원 과제로 끌어올리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AX는 AI를 다른 산업과 기술, 분야에 융합해 새로운 비즈니스와 생산 구조를 만드는 전략을 뜻한다. 농식품 분야에서는 생산, 가공, 유통, 소비를 잇는 전 주기에 AI·데이터 기반 시스템을 심는 개념으로, 기존 스마트팜을 넘어선 통합 디지털 농업 체계를 지향한다.
간담회에는 스마트팜, 축산, 바이오, 반려동물, 유통, 가격예측 등 농식품 AX를 선도하는 기업과 AI 알고리즘, 클라우드 기반 기술 기업들이 참여했다. 현장에서는 자율주행 농작업 장비, AI 기반 생육·환경 제어 기술, 축산 데이터 분석 및 자동화 솔루션, 반려동물 행동·건강 모니터링, 식품 제조공정 AI 품질관리 등 이미 상용화가 시작된 기술부터 실증 단계에 있는 솔루션까지 다양한 사례가 공유됐다.
이번 논의의 기술적 초점은 이른바 농업 피지컬 AI에 맞춰졌다. 농업 피지컬 AI는 AI가 데이터 분석과 판단을 수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로봇과 자율주행 장비, 자동화 설비와 결합해 실제 물리 작업을 수행하는 융합 기술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농경지에서 자율주행 트랙터가 토양 데이터를 기반으로 최적 경운 깊이를 조절하거나, 축사에서 로봇이 개체별 생체 정보를 바탕으로 사료 급여량을 자동 조정하는 방식이다.
업계는 이러한 농업 피지컬 AI가 고령화와 만성적인 일손 부족에 시달리는 농촌 현장의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사람 손이 닿기 어려운 노동집약 공정을 기계가 대신 수행하고, AI가 기상과 생육 데이터를 종합해 시비와 수확 시점을 조정할 경우 생산성 향상과 인건비 절감 효과가 동시에 기대된다는 설명이다.
다만 현장에서는 데이터 활용과 표준화라는 근본 과제가 반복해서 제기됐다. 각 농장과 설비에서 발생하는 생육, 환경, 생산, 유통 데이터가 제각각의 형식과 기준으로 쌓이면서, AI 학습과 서비스 확장에 필요한 대규모 데이터셋 구축이 어려운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합동 간담회에서도 실증용 데이터 접근 권한 확대와 공통 표준 마련, 공공·민간 데이터 플랫폼 연계 필요성이 공통된 요구로 부상했다.
실제 농장과 식품 공정에서의 실증 기반 부족도 핵심 애로로 꼽혔다. AI 모델을 고도화하고 피지컬 AI 설비를 안정화하려면 다양한 작물, 지역, 기후 조건에서의 장기 실증 데이터가 필수인데, 중소 농가와 중견 식품기업이 이를 자체적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초기 도입비용 부담과 규제 불확실성도 투자 위축 요인으로 언급됐다. 일부 자율주행 농기계의 안전 규정, 축산 데이터의 개인정보 연계 문제, 반려동물 헬스케어 서비스의 의료·비의료 경계 등은 사업자들이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 영역으로 지목된다.
이에 대응해 농식품부와 과기정통부는 부처 간 협력 프레임을 공식화하기로 했다. 두 부처는 국내 농업 환경에 맞는 농업 피지컬 AI 기술 개발과 실증을 목표로 합동 연구개발 사업 추진에 나선다. 농기계와 로봇, 센서 등 하드웨어와 작물 생리, 축산 공정, 식품 제조 노하우를 결합하는 다부처형 R&D 구조를 통해 기초 알고리즘부터 현장 장비까지 패키지로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농산업 AX 관련 기술과 산업 동향을 상시로 공유하는 정례 정보 교환 체계를 구축하고, 현장의 수요와 규제 애로를 직접 수렴하는 소통 채널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규제와 보조·융자 제도를 함께 설계하는 방식으로, 신기술 도입에 대한 농가와 중소기업의 초기 부담을 낮추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부처 협업 기반의 농업·농촌 AX 지원 사업도 별도로 기획한다. 스마트팜 고도화, 축산·유통 디지털 전환, 반려동물 헬스케어 산업 육성 등 세부 과제를 축으로 삼아, AI 인프라와 클라우드 서비스 지원, 데이터 수집 장비 보급, 표준 모델 확산 등을 패키지로 제공하는 구조가 유력하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AI를 농업의 구조적 위기를 넘길 수 있는 핵심 수단으로 규정했다. 송 장관은 기후위기와 인력 부족이 겹친 농업에서 AI 기술 성과는 국민 식탁과 일상에 바로 영향을 미친다며, 두 부처가 협력해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AI 농업 확산에 속도를 내겠다고 강조했다.
배경훈 부총리도 농식품 분야 AX 전환을 농업과 농촌의 현안 해결을 넘어 산업 경쟁력 확보 과제로 규정했다. 배 부총리는 AI와 제조업 역량을 두루 갖춘 한국이 농업 피지컬 AI 분야에서 충분히 선도적 역할을 노려볼 수 있다며, 관련 기술과 산업을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양 부처가 적극 협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이번 합동 행보가 농식품 AX를 단기 시범사업 수준을 넘어 중장기 국가 전략으로 끌어올리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실제 현장의 규제 개선 속도와 데이터 개방 수준, 실증 인프라 확충 정도에 따라 기술 확산 속도가 갈릴 수 있다는 점에서, 산업계는 향후 세부 정책 설계 방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