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빈, ‘더 트롯쇼’ 트렌드 중심”…트로트계 21년 신화→대세 행보에 궁금증 폭발
트로트에 담긴 21년의 시간, 김용빈은 다시 무대 위로 힘차게 올라섰다. 누구보다 어린 나이에 빛나던 천재에서 ‘미스터트롯3’ 우승을 거머쥔 중견 아티스트, 그리고 ‘더 트롯쇼’ 대세 아이콘에 이르기까지 그의 여정은 한 편의 성장서사처럼 다가왔다. 깊어지는 음악성과 무게를 더하는 브랜드파워가 맞물리며, 세대와 시대를 잇는 특별한 존재로 자리잡았다.
2025년 8월, 김용빈은 SBS Life ‘더 트롯쇼’ 신곡 무대에서 박지현, 영탁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1위 경쟁을 펼쳤다. ‘어제도 너였고 오늘도 너여서’는 영탁이 직접 작곡을 맡아 화제를 모았으며, 박지현의 1위 행진과 영탁의 자작곡 도전 속에서도 김용빈의 첫 1위 도전이 시선을 모았다. 음악적 시너지와 쟁쟁한 출연진의 매력이 혼재한 무대에서 김용빈은 과거 트로트 신동 이미지를 깨고 젊은 팬층까지 끌어안는 아티스트로 우뚝 섰다. ‘더 트롯쇼’의 공정한 평가 시스템이 만들어낸 이 빅매치의 중심에서도 김용빈은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무엇보다 주목할 지점은 김용빈 브랜드 가치의 가파른 상승이다. 한국기업평판연구소의 2025년 8월 빅데이터 분석에서 김용빈은 임영웅에 이어 트로트 가수 브랜드평판 2위에 등극했다. 브랜드 평판지수 2,660,596점으로 전월 대비 5% 넘게 상승한 결과는 팬덤, 소통, 미디어 영향력을 모두 아우른 성과였다. 과거 ‘신동’ 타이틀에 머무르지 않고, 트로트 세대교체의 견인차이자 꾸준함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데서 의미가 더해진다. 박서진, 임영웅 등 쟁쟁한 스타들 사이에서도 김용빈만의 색깔은 단연 돋보였다.
음악 무대를 넘어선 확장 행보도 눈길을 끈다. 데뷔 21년 만에 김용빈은 관찰 예능 ‘내 멋대로-과몰입클럽’에 출연하며 무대 밖 일상과 새로운 매력을 선보인다. ‘무대 위 카리스마’와는 또 다른 몰입 모습을 예고한 만큼, 트로트 팬들의 기대가 고조되고 있다. 또한, ‘미스터트롯3’ TOP7과 함께한 미국 LA 공연이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글로벌 무대에서도 트로트의 저변을 넓혔다. 김용빈은 진심을 담아 해외 팬들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하며, 세대를 넘어 국경을 뛰어넘는 아티스트임을 입증했다.
아름다운 외모와 깨끗한 이미지로 광고계의 관심도 집중된다. “피부가 뽀얗다”, “특별한 내 가수”라는 팬덤의 자부심 어린 응원 속에서 다양한 브랜드 모델로도 활약 중이다. 실력은 물론, 대중적 호감까지 두루 갖춘 엔터테이너로서 김용빈의 입지는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
김용빈의 성장에는 견고한 서사가 있다. 대구 수성구에서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을 딛고 할머니, 고모와 함께 성장했던 그는 미용실에서 트로트 음악을 접하며 수백 곡을 외웠고, 열 살 때부터 음악적 내공을 쌓아왔다. 2004년 데뷔 이래 ‘선아야’, ‘알아주세요’ 등 수많은 곡으로 사랑받았으며,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을 거쳐 ‘미스터트롯3’ 우승으로 중견 트로트 스타로 우뚝 섰다. 김용빈이 무대에서 보여주는 감정의 깊이, 허스키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는 세월이 만든 결과다.
데뷔 21년 차에도 김용빈은 결코 현재에 안주하지 않았다. 신곡 ‘어제도 너였고 오늘도 너여서’로 다시 한 번 대중의 시선을 끌었고, 브랜드파워, 방송, 예능, 공연 등 다방면에서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세대와 분야를 넘어 팬들과 소통하며 트로트계에 새로운 숨결을 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용빈의 행보에는 ‘꾸준함’이란 키워드가 빛난다. 화려한 시작, 진정성과 노력, 버팀목이 된 팬들, 그리고 무대를 향한 열정까지 그의 여정에는 흔들림 없는 열의가 깃들어 있다. 팬들과의 꾸준한 소통, 자기관리, 성실한 무대 태도는 후배 가수들에게도 귀감이 되고 있다.
앞으로 김용빈은 ‘더 트롯쇼’의 최종 1위 경쟁과, 첫 관찰 예능 ‘내 멋대로-과몰입클럽’ 등 새로운 무대와 도전으로 팬들을 만날 예정이다. 이번 예능은 9월 3일 첫 선을 보이며, ‘더 트롯쇼’ 순위 역시 동시 집계돼 그의 대세 행보에 또 한 번 시선이 집중될 전망이다.
트로트의 ‘오늘’을 빛내온 김용빈이 또 어떤 감동과 새로운 모습을 선사할지, 장르와 세대를 넘어선 그의 존재감이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 진한 온기를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