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나무 사이를 걷는다”…오산 가을여행, 산책과 미식이 만나는 하루
여행을 고르는 기준이 달라졌다. 멀리 떠나는 대신, 하루 안에 자연과 맛있는 식사를 모두 누릴 수 있는 도시를 찾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예전엔 특별한 휴가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주말의 소소한 리셋이 됐다. 경기도 남부의 오산을 찾는 이유도 거기에 가깝다.
가을의 끝자락, 오산을 찾은 이들이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은 수청동에 자리한 물향기수목원이다. 물과 나무, 그리고 사람이 어우러지도록 조성된 이 수목원은 이름처럼 촉촉한 공기가 먼저 반긴다. 붉게 물든 단풍과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산책길을 따라 줄지어 서 있고, 겨울 문턱이 가까워지면 잎을 털어낸 나무들이 차분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잘 정돈된 산책로를 천천히 걷다 보면 계절마다 표정이 달라지는 다양한 식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방문객들은 “무심코 걷다 보니 숨이 내려앉았다”, “멀리 가지 않아도 충분히 여행 같다”고 느끼곤 한다.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통계청과 여러 지자체 자료에서 주말 근교 여행이 꾸준히 늘어나는 흐름이 포착되면서, 대도시에서 한 시간 남짓 거리에 있는 소도시가 새로운 여행지로 주목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흐름을 ‘생활권 여행’이라 부른다. 일상을 완전히 벗어나기보다, 생활 동선 안에서 잠깐 방향을 틀어 마음을 쉬게 하는 방식이다. 자연스럽게 접근성이 좋은 공원과 수목원, 그리고 지역 맛집이 함께 주목받고 있다.
실제로 기자가 오산의 하루 코스를 따라가 보니, 자연과 미식 사이의 균형이 이 도시 여행의 매력을 설명해 주는 키워드였다. 숲속 산책으로 몸의 긴장을 풀었다면, 이제는 식당과 카페에서 입과 마음을 채울 차례다. 오산 곳곳에는 지역 주민과 여행자가 함께 찾는 식당과 카페가 여럿 자리하고 있다.
먼저 눈길을 끄는 곳은 중식당 장강이다. 해물이 듬뿍 들어간 짬뽕이 대표 메뉴로 꼽힌다. 깊고 진한 국물에 불향이 은은하게 감돌아, 숲길을 걸은 뒤 허기를 달래기에 제격이다. 여기에 중국식 간장 소스를 기본으로 한 탕수육이 곁들여지면 한 끼 식사가 한층 풍성해진다. 흔히 떠올리는 케첩 베이스의 새콤한 맛 대신, 짭조름하면서도 감칠맛이 살아 있는 소스가 조용히 존재감을 드러낸다. 식전으로 내어주는 자스민차는 중식 한 상에 작은 여유를 더해 준다. 넓은 좌석을 갖춘 1, 2층 구조여서 가족 단위 방문객이나 단체 모임도 편안히 머물 수 있는 점도 여행자에게는 안심이 된다.
짬뽕 한 그릇으로는 아쉬운 매운맛을 찾는 이들에게는 ‘힘찬오산짬뽕’이 또 다른 선택지가 된다. 이곳의 강점은 강렬한 불맛이다. 직접 로스팅한 고춧가루를 강한 화력으로 빠르게 볶아내 매운 향이 먼저 코끝을 스친다. 그 뒤를 따라 고소함과 깊은 국물 맛이 입안을 채운다. 매운맛만 강조하기보다 신선한 재료와 넉넉한 양으로 만족감을 높이려는 태도가 음식 곳곳에 스며 있다. 방문객들은 “한 그릇 비우고 나면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라고 표현한다. 자극적인 매운맛보다 깔끔한 뒷맛을 중시하는 요즘 취향이 반영된 선택이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자연스럽게 카페를 찾게 된다. 오산의 ‘데니스카페’는 고소한 베이글과 향긋한 커피로 여행자들의 발길을 붙잡는 공간이다. 크지 않은 여백과 온화한 조명을 중심으로 구성된 인테리어는 북적이는 도심 카페와는 다른 온도를 전한다. 창가에 앉아 베이글을 한 입 베어 물고 커피를 천천히 마시다 보면, 길게 떠나는 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을 것 같던 여유가 의외로 쉽게 찾아온다. SNS에도 이곳 베이글과 음료를 배경으로 한 인증 사진이 꾸준히 올라오면서, “오산 오면 한 번쯤 들르게 되는 카페”라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점심과 카페 사이, 혹은 저녁 무렵 편안한 한 끼를 원하는 이들에게는 ‘아리아’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의 주인공은 수제 돈가스다. 주문과 함께 튀겨 나오는 두툼한 돈가스 위에 직접 만든 소스가 넉넉히 얹혀 나온다. 양도 푸짐하고 매장도 비교적 넓어, 아이 동반 가족이나 친구 모임이 여유롭게 식사하기 좋다. 식사 후에는 메뉴를 주문한 사람에게 아메리카노 한 잔이 제공되는 서비스 덕분에, 식당과 카페를 한 번에 해결하는 코스로 활용하는 이들도 많다. “밥 먹고 차까지 마시고 나면 하루가 잘 마무리되는 기분”이라는 후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지역 커뮤니티와 여행 관련 게시판에는 “수목원 산책하고 짬뽕 먹고 카페에서 쉬고 오면 하루 코스로 딱 좋다”, “멀리 속초나 부산까지 가지 않아도 충분히 리셋되는 느낌”이라는 이야기가 적지 않다. 연인과 함께, 친구와 함께, 또는 혼자 조용히 다녀온 후기들이 쌓이면서 오산은 점점 ‘가볍게 떠나는 계절 여행지’로 자리 잡아 가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흐름을 두고 “이제 여행의 본질은 멀리 가는 데 있지 않고, 얼마나 나에게 맞는 속도로 쉬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특히 계절이 바뀌는 길목, 가을과 겨울이 맞닿는 시기에는 과한 일정보다 산책과 식사, 커피 한 잔이 주는 감정적인 만족도가 더 커진다고 분석한다. 자연과 맛집이 가까이 붙어 있는 도시들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산의 물향기수목원과 그 주변 식당, 카페를 잇는 하루 코스는 거창하지 않다. 그럼에도 걷고, 먹고, 쉬는 기본적인 리듬이 자연스럽게 복원되는 경험을 선사한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계절이 한 번 더 바뀌기 전, 나만의 속도로 숨을 고르기 좋은 여행지로 오산을 떠올려 볼 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