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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 안전 데이터화 나선 과기정통부…AI 기반 관리로 사고 예방 속도

강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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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 안전 관리 체계가 디지털 기술을 전면에 내세운 방향으로 재편될 전망이다. 정부가 인력과 예산 중심의 기존 관리 틀을 손보는 동시에 AI 기반 사고 예측, 모바일 플랫폼을 활용한 상시 모니터링 체계를 검토하면서 연구 환경 전반의 데이터화를 본격 추진하고 있다. 연구실을 둘러싼 위험 요인을 센서와 플랫폼으로 수집·분석해 사전 차단하는 구조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으로, 연구개발 인력 보호가 첨단 기술 경쟁력의 핵심 인프라라는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4일부터 28일까지 2025 연구실 안전주간을 운영하고 24일 서울 고려대학교 인촌기념관에서 기념식을 열어 연구실 안전 강화 대책 방향을 공유했다. 연구실 안전법 제정 20주년을 맞아 마련된 이번 행사는 반복되는 실험실 사고에 대응해 안전한 연구 환경 조성의 필요성을 확산하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관리 모델을 모색하는 취지다. 행사는 과기정통부 주최, 국가연구안전관리본부 주관으로 진행되며 대학, 정부출연연구기관, 기업부설연구소의 연구실 안전 담당자들이 참석했다.

기념식 1부에서는 연구실 안전문화 확산에 기여한 유공자 포상과 최우수 안전 인증 연구실 시상이 이뤄졌다. 2부에서는 과기정통부가 준비 중인 연구실 안전 강화 대책 방향을 제시하고, 실제 사고를 겪은 경북대학교가 사고 이후 달라진 안전관리 사례를 발표했다. 3부 스마트 연구안전 세미나에서는 학계와 산업계 전문가들이 AI 기반 사고 예측, 모바일 경보 시스템, 데이터 분석 플랫폼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한 연구안전 혁신 방안을 논의해 디지털 전환의 구체적인 상을 제시했다.

 

과기정통부가 공개한 안전 강화 대책 방향은 보호구 미착용, 기초 교육 미흡 등으로 학생 연구원이 다치는 사고가 되풀이되고 있는 현실을 전제로 설계됐다. 정부는 연구안전 예산과 인력 확충, 안전교육 내실화와 문화 확산, 연구책임자 법적 책임 강화라는 세 갈래 전략을 토대로 각 기관과 현장의 의견을 수렴해 세부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스마트 안전 플랫폼과 AI 예측 기술 활용이 포함되면서, 향후 연구실 안전 관리가 디지털 인프라 구축과 직결될 가능성이 커졌다.

 

첫 번째 축은 연구안전 예산과 인력의 적정 규모 확보다. 정부는 국가연구과제에 의무 배정되는 안전관리비 비중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해 연구실 안전 투자를 사업 설계 단계에서부터 반영하는 방향을 논의하고 있다. 현재 연구활동종사자 1000명당 전담 안전환경관리자 1명을 두도록 한 기준은 실제 위험도와 업무 강도에 비해 낮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과기정통부는 이 기준을 보다 현실적인 수준으로 조정하고, 안전환경관리자의 채용과 보수 체계 개선을 병행하는 방안을 관계기관과 논의 중이다.

 

연구실 안전을 실무적으로 맡고 있는 국가연구안전관리본부 기능도 중장기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국가 차원의 통합 안전 데이터베이스 구축, 사고 사례 분석, 위험도 기반 컨설팅 기능을 강화해 각 기관의 한정된 인력과 예산을 보완하는 허브 역할을 맡기는 방향이다. 센서, CCTV, 실험 장비 로그 등에서 수집되는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면 위험 징후 파악과 정책 설계 모두에서 AI 분석 도입 여지가 커진다.

 

두 번째 전략은 안전교육 강화와 안전문화 확산이다. 정부는 기존 집합 교육 중심의 형식적 프로그램이 현장의 위험을 줄이는 데 한계를 드러냈다고 보고 연구책임자 주도의 맞춤형 랩미팅 안전교육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연구실 특성에 맞춘 사례 중심 토론, 실제 장비를 활용한 실습형 교육을 확대해 교육 내용을 현장 행동 변화로 연결하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고위험 연구실에 새로 참여하는 학생 연구원에게는 초기 교육 시간을 추가하고, 반대로 정기교육은 현장의 시간·인력 부담을 고려해 효율화를 추진하는 방향이 논의되고 있다. 실습·체험형 교육 시설 설치, 실습 비중을 높인 커리큘럼 개편과 함께 안전 우수 연구실에 대한 인센티브 강화, 유공자 포상 확대도 대책에 포함됐다. 더불어 모바일과 AI를 결합한 스마트 안전 플랫폼 활용을 통해 교육 이수 현황 관리, 위험 알림, 자가 점검 체크리스트 제공 등을 통합 지원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세 번째 축은 연구실 사고 예방을 위한 책임체계 정립이다. 정부는 미숙련 연구원들의 사고 위험을 줄이기 위해 기관장과 연구실 책임자의 법적 책임을 명확히 규정하고, 안전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제재를 부과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반복적인 위반에 대해서는 과태료 가중 부과와 기관명 공표 등 강한 조치를 통해 안전 관리를 비용이 아닌 필수 경영 과제로 인식하도록 유도하겠다는 방향이다.

 

중대사고가 동일한 원인으로 재발하는 기관에 대한 관리도 강화될 전망이다. 사고 분류 기준을 세분화해 경미한 사고와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 사고를 구분 관리하고, 3일 이상 입원이 필요한 피해가 발생한 경우 후속조치 보고를 의무화하는 내용이 검토되고 있다. 고위험 대형연구실에는 전담 안전관리자를 지정하도록 해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고, 현장에서 수집한 사고 데이터를 토대로 유형별 예방 대책을 정교화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다.

 

연구실 안전 강화 대책은 연내 추가 현장 의견을 반영해 연구실안전심의위원회 또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확정·발표될 예정이다. 제도화 이후에는 안전 인프라 투자가 연구비 구조, 인력 운영, 시설 설계 등 연구 전 과정에 영향을 미치면서 연구개발 패러다임의 일부로 편입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김성수 과기정통부 연구개발정책실장은 연구자의 생명과 안전 보호를 국가의 핵심 책무이자 경쟁력 기반으로 규정하며 정부와 연구 현장이 함께 안전한 환경 조성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계와 학계는 이번 대책이 AI와 데이터 기반의 스마트 안전 관리로 이어질 경우, 첨단 연구실이 갖춰야 할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강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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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정보통신부#국가연구안전관리본부#연구실안전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