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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가능 치매 정상압수두증"…세브란스, 동반뇌질환 있어도 수술효과 확인

윤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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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 가능 치매로 알려진 특발성 정상압 수두증이 퇴행성 뇌질환을 동반한 경우에도 수술로 실질적인 기능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고령 인구 증가로 치매 진단이 급증하는 가운데, 그동안 논란이 컸던 수술 적응증을 재정의하는 연구 결과여서 임상과 보험 정책, 환자 치료 전략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와 의료계에서는 정상압 수두증을 둘러싼 수술 선택의 불확실성이 줄어들 계기가 될지 주목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은 29일 신경과 예병석, 신경외과 장원석, 병리과 김세훈 교수 공동 연구팀이 특발성 정상압 수두증 환자를 대상으로 뇌 조직 검사와 영상 검사, 수술 예후를 종합 분석한 결과를 국제 학술지 알츠하이머와 치매 최신호에 발표했다고 밝혔다. 특히 알츠하이머병 등 퇴행성 뇌질환 병리를 동반한 환자에서도 보행과 일상생활 기능이 의미 있게 회복된다는 점을 통계적으로 제시했다.

특발성 정상압 수두증은 뇌 안을 순환하는 뇌척수액이 과도하게 늘어나면서도 측정상 뇌압은 정상 범위를 보이는 질환이다. 주로 60대 이상에서 발생하며, 보행 장애와 인지 저하, 요실금이 함께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로서는 뇌실과 복강을 연결해 뇌척수액을 배출하는 뇌실복강단락술이나 요추와 복강을 연결하는 요추복강단락술이 사실상 유일한 근치적 치료로 쓰인다.

 

문제는 정상압 수두증 환자의 상당수가 알츠하이머병이나 루이소체병 같은 퇴행성 뇌질환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치매 원인이 겹쳐 있을 경우, 수술로 뇌척수액 순환을 개선해도 증상 호전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우려가 커 수술 결정에 혼선이 반복돼 왔다. 특히 인지 기능 저하를 동반한 환자에서는 비용 대비 효과를 명확히 설명하기 어려웠다.

 

연구팀은 이 같은 의문을 풀기 위해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세브란스병원에서 뇌실복강단락술을 받은 특발성 정상압 수두증 환자 58명을 후향 분석했다. 수술 중 전두엽 피질에서 소량의 뇌 조직을 채취해 알츠하이머병 관련 단백질을 면역염색으로 확인하고, 일부 환자에서는 아밀로이드 PET과 도파민 수송체 PET를 추가 시행해 퇴행성 병리와 도파민 신경 기능을 동시에 평가했다.

 

분석 결과 전체 환자의 약 40퍼센트에서 알츠하이머병 관련 단백질 축적이 관찰됐다. 연구팀은 수술 중 채취한 제한된 양의 뇌 조직이 실제 뇌 전체 병리를 얼마나 잘 반영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아밀로이드 PET 결과와 대조했다. 그 결과 조직 검사와 PET 검사 결과가 95퍼센트 이상 일치해, 비교적 간단한 수술 중 조직 검사만으로도 알츠하이머병 병리를 높은 정확도로 추정할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치료 효과를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양상은 더 뚜렷하다. 알츠하이머병 병리가 동반된 환자군은 기억력과 고차원 인지 기능의 회복은 제한적이었으나, 보행 속도와 균형, 일상생활 수행 능력은 수술 후 유의미하게 개선됐다. 연구팀은 환자가 실제로 체감하는 걷기 능력과 씻기, 옷 갈아입기 같은 생활 동작의 독립성이 수술 전보다 확연히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도파민 신경 기능과 수술 예후의 상관관계도 주목할 만하다. 도파민 수송체 PET에서 도파민 신경 기능 저하가 확인된 환자군이, 기능이 비교적 보존된 환자군보다 수술 후 기능 회복 폭이 더 컸다. 보행 장애와 운동 저하가 루이소체병과 유사해 도파민 신경 손상이 오히려 수술 결과를 나쁘게 할 것이라는 기존 가설과 다른 패턴이다. 도파민 시스템 장애로 인한 증상 비중이 클수록 뇌척수액 순환 개선에 따른 이득이 상대적으로 더 두드러졌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연구팀은 이 결과가 정상압 수두증 수술 적응증 판단 기준을 재정립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해석했다. 그동안 알츠하이머병 병리가 확인되면 수술 효과가 떨어질 것이라 보고 수술을 주저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이번 연구는 인지 기능과 보행, 일상생활 능력을 분리해 평가할 필요가 있으며, 특히 기능적 독립성을 중시하는 고령 환자에서는 수술 이득이 충분하다고 제시한다.

 

국제적으로도 정상압 수두증에 대한 수술 기준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져 왔다. 유럽과 북미 일부 센터에서는 MRI 영상과 보행 검사 위주로 수술 여부를 결정하는 반면, 국내와 일본에서는 뇌척수액 배액 검사나 조직 검사 등 보다 적극적인 진단 프로토콜을 적용하는 기관이 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연구 결과는 뇌 조직 검사와 도파민 영상 검사를 결합한 정밀 진단 전략이 환자 선별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는 근거를 제시해 글로벌 진료 지침 논의에 참고 자료가 될 전망이다.

 

정책 측면에서도 파급 효과가 예상된다. 정상압 수두증은 치매로 분류되는 다른 퇴행성 질환과 달리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 질환이라는 점에서 조기 발견과 적극 치료를 장려하는 방향으로 보험 제도가 설계되는 추세다. 여기에 퇴행성 뇌질환을 동반해도 보행과 생활 기능이 회복된다는 근거가 더해지면, 고령 환자 수술 적응증을 보다 넓게 인정하는 쪽으로 논의가 진행될 여지도 있다. 다만 인지 기능 호전이 제한적인 만큼, 환자와 보호자에게 기대 가능한 영역과 한계를 명확히 설명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예병석 교수는 알츠하이머병 병리가 동반됐다는 이유만으로 정상압 수두증 수술 효과를 비관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지 기능과 별도로 보행과 일상생활 기능은 충분히 호전될 수 있다는 점이 이번 연구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뇌 조직 검사와 도파민 영상 검사를 함께 고려하면 어떤 환자가 수술로 실질적인 이득을 볼지 정밀하게 예측할 수 있어, 환자 개별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치료 전략 수립에 중요한 근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의료계에서는 이번 연구가 정상압 수두증을 단일 질환이 아닌 혼합 병리 기반 증후군으로 바라보는 패러다임 전환을 촉진할 수 있다고 본다. 알츠하이머병, 루이소체병 등 다양한 퇴행성 병리가 뒤섞여 있어도, 뇌척수액 순환 이상으로 인한 가역적 요소를 제거하면 일정 수준의 기능 회복이 가능하다는 점이 확인된 셈이다. 산업계와 병원계는 이러한 근거들이 수술 기법 개선, 진단용 영상 솔루션 개발, 정밀의료 기반 환자 분류 기술 확산으로 이어질지를 지켜보고 있다.

 

정상압 수두증은 고령화 사회에서 치료 가능한 치매로 꼽히는 대표 질환이다. 세브란스병원 연구팀의 이번 발표는 퇴행성 뇌질환 동반 여부에 따라 수술을 포기하는 관행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신호를 던진다. 산업계와 의료계는 이 기술과 근거가 실제 진료 현장에서 어떤 환자에게, 어느 정도까지 이득을 가져다줄지, 그리고 제도와 보험이 그 변화를 얼마나 뒷받침할지에 주목하고 있다.

윤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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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란스병원#정상압수두증#알츠하이머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