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목사방’ 총책 무기징역”…김녹완 사건으로 본 디지털 성착취의 잔혹성
텔레그램 기반 사이버 성폭력 범죄집단 ‘목사방’의 총책으로 지목된 김녹완에게 1심 법원이 무기징역을 선고하며 디지털 성착취 범죄의 심각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재판부는 피해자 다수가 아동·청소년인 점과 범행 수법의 잔혹성을 지적하며 사회로부터의 영구 격리를 강조했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의 한 형사합의부(재판장 이현경)는 범죄단체 조직 및 활동, 성착취물·불법 촬영물 제작·유포, 불법촬영물 이용 강요, 유사강간 등 혐의로 기소된 김녹완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함께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 30년, 아동·청소년·장애인 관련 기관 취업제한 10년, 신상공개 및 고지 10년도 명령했다.

김녹완은 2020년 5월부터 2025년 1월까지 텔레그램을 기반으로 한 사이버 성폭력 범죄집단 ‘자경단’을 조직·운영한 혐의를 받았다. 수사 결과 자경단의 피해자는 261명으로 파악됐고, 김녹완 일당이 제작·유포한 성착취물은 약 2천여 개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 내에서 ‘선임 전도사’로 활동하며 조직원을 포섭·교육하고 범행을 지시한 강모씨와 조모씨에게 재판부는 각각 징역 4년과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두 사람 모두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취업제한 명령도 각각 5년, 3년 부과됐다.
‘전도사’ 또는 ‘예비 전도사’로 활동하며 피해자 물색, 텔레그램 채널 운영, 성착취물 제작·배포, 피해자 협박 등을 담당한 공범 8명도 실형을 피하지 못했다. 성인 피고인 3명은 징역 2년에서 2년 6개월을 선고받았고, 미성년자 5명은 징역 단기 2년·장기 2년 6개월에서 단기 3년·장기 3년 6개월까지의 장기·단기형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양형 이유에서 피해자 연령과 범행의 지속성을 특히 문제 삼았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은 대부분 아동·청소년들로, 이 사건 범행으로 극도의 육체적·정신적 고통에 시달렸을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들은 텔레그램의 익명성 뒤에 숨어 지속적으로 피해자들을 협박하고 변태적 행위를 강요하며 성 착취를 했다”고 지적했다.
디지털 성범죄 특유의 비가역성도 양형의 핵심 근거로 언급됐다. 재판부는 “디지털 성범죄는 피해가 디지털 공간을 통해 순식간에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확대되고, 성착취물 등의 배포가 한 번 이루어지고 나면 물리적으로 이를 완전히 삭제하는 것이 어렵다”며 “피해자들에 대한 피해 회복이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라고 말했다.
특히 김녹완에 대해서는 조직 내 지위와 범행 방식의 잔혹성이 강조됐다. 재판부는 “공범을 통해 피해자 아버지에게 피해자의 성관계 영상을 전송하고, 피해자의 직장까지 찾아가 협박을 일삼는 등 전체 범행 과정에서 보여준 범행 수법이 매우 잔혹하고 악랄하다”며 “피해자들 중 3명과 합의했더라도 김씨를 사회적으로 영구히 격리시키는 무기징역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다만 모든 혐의가 유죄로 인정된 것은 아니다. 재판부는 김녹완의 범죄집단 가입죄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또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성착취물 제공 및 배포) 일부 혐의에 대해서도 증거 불충분 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구체적 조직 구조와 지휘·복종 관계 입증 정도 등을 종합했을 때 범죄집단 가입 혐의는 인정하기 어렵다”고 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검찰은 방대한 피해 규모와 계획적 범행 양상을 근거로 김녹완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자경단이 제작한 성착취물 수와 피해자 숫자가 공소장과 재판 과정에서 드러나며, 일명 ‘n번방’ 사건 이후에도 텔레그램 기반 성착취 범죄가 구조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김녹완은 범행 과정에서 스스로를 ‘목사’라 칭하며 조직을 이끌어 ‘목사방’ 총책으로 불렸다. 수사 이후 서울경찰청은 그의 이름과 얼굴, 나이 등을 포함한 신상정보를 공개했다. 이에 대해 김씨는 신상공개 처분이 위법하다며 집행정지를 신청했으나, 서울행정법원이 이를 기각해 신상공개는 유지됐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 단체들은 이번 선고를 두고 “무기징역 선고는 의미 있는 진전이지만, 피해 영상의 완전 삭제가 사실상 불가능한 현실에서 피해 회복과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국가 차원의 시스템이 여전히 부족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솜방망이 처벌 관행에서 벗어난 판결”이라는 평가와 함께, 미성년 공범에 대한 교화·재사회화 프로그램 강화 필요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번 판결이 디지털 성착취 사건에서 중형 선고의 기준점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편 항소 여부에 따라 2심에서 양형과 일부 무죄 판단이 다시 쟁점이 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김녹완과 공범들에 대한 이번 판결은 n번방 사태 이후 강화된 관련 법·제도의 실효성을 점검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피해 영상이 남긴 상흔과 피해자들의 삶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만큼, 수사·재판을 넘어 재유포 차단과 피해자 지원 체계 강화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경찰과 검찰은 유사 디지털 성범죄 조직에 대한 수사를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