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분명 처방, 환자에게 위험할까”…서울시의사회, 반대 공모전 수상작 공개
성분명 처방이 환자 안전과 약물 사용 행태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의료계의 우려가 문화 콘텐츠 형식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서울특별시의사회가 정부의 성분명 처방 정책에 대한 문제의식을 국민과 공유하기 위해 개최한 공모전 수상작을 발표하면서, 제도 도입을 둘러싼 논쟁이 의료 현장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이슈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의료계는 이번 공모전이 약물 안전성과 의약분업 구조 개선 방향을 둘러싼 향후 정책 논의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서울특별시의사회는 17일 성분명 처방 정책 추진에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성분명 처방 반대 공모전 결과를 공개했다. 공모전은 성분명 처방의 구조적 한계와 환자 안전에 미칠 영향을 다양한 형식의 콘텐츠로 표현해 국민과 공유하고, 보다 안전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찾기 위해 기획됐다.

공모 주제는 왜 성분명 처방이 위험한가, 불편한 의약분업 대신 편리하고 경제적이며 안전한 선택분업,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 확대 등 3개 축으로 구성됐다. 접수 부문은 동영상, 포스터, 웹툰 세 가지였으며, 서울시의사회는 심사를 통해 총 9개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시상 규모는 상금 3000만원과 상장으로, 정책 평가 성격의 의료 콘텐츠 공모전 가운데 비교적 큰 편에 속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동영상 부문 대상은 정지현 뮤지컬 감독이 연출한 분명하지 않습니다가 차지했다. 수상작은 성분명 처방이 전제하는 의약품 선택 과정의 불확실성을 단계적으로 드러내면서, 동일 성분이라는 이름 아래 실제로는 제형과 흡수율, 제조 공정 등이 다른 약물이 선택될 수 있다는 점을 드라마적 구성으로 풀어냈다. 특히 그 위험과 부담이 제조사나 유통 주체가 아니라 환자 개인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감정적으로 공감 가능하게 전달하면서도, 최종 약제 선택에서 의료진의 정확한 임상 판단이 왜 중요한지를 설득력 있게 강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동영상 부문 우수상은 두 작품이 선정됐다. 정병권 다리핏의원 원장의 아무거나 써보세요는 성분명 처방 환경에서 약국 선택과 약제 변경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풍자적으로 묘사하며, 약을 잘 모르는 환자가 가격이나 마케팅 정보에 더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현실을 그렸다. 전용운 감독과 김민, 김시연 PD가 참여한 DIP 팀의 생명을 건 도박, 하시겠습니까는 약물 종류 변화가 치료 효과와 부작용에 미치는 영향을 도박에 비유해, 만성질환자나 다약제 복용 환자에게 성분명 처방이 치명적인 변수가 될 수 있음을 극적으로 보여줬다.
웹툰 부문 대상은 국립재활원 남수민 전공의의 성분명 처방, 누군가에겐 생명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가 수상했다. 이 작품은 재활의학과 진료 현장에서 접하는 고령 환자들의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백내장과 노안 등 시력 저하와 인지 기능 저하를 겪는 환자가 약 봉투의 모양과 색, 글씨에 의존해 약을 구분하는 현실을 상세하게 묘사했다. 성분명 처방 도입으로 약의 모양이나 포장이 반복적으로 바뀔 경우, 치매 환자나 보호자 없이 약을 복용하는 독거 고령자가 약을 혼동해 복약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구체적인 에피소드로 풀어냈다. 의료 취약계층에게 약제 변경이 단순한 브랜드 교체가 아니라 생명과 직결되는 변수라는 점을 시각적으로 강조했다는 평가다.
웹툰 부문 우수상에는 이희성의 왜 약은 병원에서 안 주나요와 김기범 평택 PMC박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의 내가 결정하는 약국 선택분업 바로 알기가 선정됐다. 전자는 현행 의약분업 구조에 대한 일반 국민의 불편과 오해, 성분명 처방 확대 논의를 둘러싼 인식 차이를 유머와 해설 형식으로 풀어냈다. 후자는 환자가 약국을 선택하되, 의료진이 처방한 약제가 그대로 전달되도록 하는 선택분업 모델을 소개하며, 성분명 처방과 대체조제 확대가 가져올 수 있는 혼란을 줄이는 대안으로서 선택분업의 장단점을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포스터 부문 대상은 프리랜서 마케터 박우석의 걱정 마요, 동일 성분이잖아요가 차지했다. 이 작품은 같은 성분이라는 문구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제형, 첨가물, 용량, 제약사 등 여러 요소가 다른 의약품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황을 대비시켜 시각적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환자와 보호자가 동일 성분이라는 말만 믿고 약을 교체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효과 차이와 부작용 가능성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며, 성분명만으로 약의 동등성을 판단하는 정책 설계의 한계를 직관적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다.
포스터 부문 우수상에는 아이디어부자 팀의 성분명이 같다고 효과도 같은 것은 아닙니다와 기적기획 팀의 처방약은 뽑기가 아닙니다가 이름을 올렸다. 두 작품 모두 의약품이 생명과 직결된 전문성 영역이라는 점을 전제로, 가격 중심 선택이나 무작위 선택에 가까운 구조가 제도적으로 고착화될 경우 환자 안전에 부정적 영향이 발생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강한 시각적 메타포로 전달했다.
서울특별시의사회 황규석 회장은 성분명 처방은 동일 성분이라는 기준만으로 의약품이 선택될 경우, 제형이나 흡수율, 제조 공정 차이에 따라 환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며 특히 고령자와 만성질환자처럼 세심한 약물 관리가 필요한 환자에게는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 회장은 이번 공모전이 현장의 문제의식을 국민의 눈높이에서 재구성한 시도라고 평가하면서, 다양한 형식의 콘텐츠가 성분명 처방 제도의 쟁점을 보다 알기 쉽게 전달하는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의료계에서는 성분명 처방 논의가 단순한 약제비 절감이나 제약사 간 경쟁 구도 문제를 넘어, 디지털 헬스케어 환경에서의 약물 데이터 관리, 전자의무기록과 연계된 처방 정보 표준화, 약물 이상반응 추적 체계 등과도 맞물려 있다고 본다. 특히 인구 고령화와 만성질환 관리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약품 교체가 반복될 경우 장기 복용 환자에 대한 모니터링이 어려워지고, 그 책임 소재가 의료진과 약사, 환자 사이에서 모호해질 수 있다는 점이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상태다.
반면 일부에서는 성분명 처방이 활성화되면 제약사 간 가격 경쟁을 촉진해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줄이고, 국내 복제의약품 산업의 품질 경쟁을 유도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유럽 일부 국가와 호주 등에서는 성분명 처방 또는 약사의 대체조제가 일반화된 사례도 존재한다. 다만 이러한 국가들은 약가 제도, 품질 규제, 처방·조제 정보 시스템, 약물 이상반응 보고 체계가 유기적으로 연동돼 있어, 단순 비교가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내에서는 성분명 처방을 둘러싼 규제 설계와 책임 범위, 환자 동의 절차, 전산 시스템 개선 수준이 정책 수용성의 핵심 변수로 꼽힌다. 의료계는 특히 동일 성분이라도 제형과 약동학적 특성이 서로 다른 제제 간 무분별한 변경을 막기 위한 기술적 장치와, 다약제 복용 환자의 약력 관리를 강화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고 요구한다. 제약업계와 약사계 역시 약품 공급 안정성과 품질 균질성, 약가 구조 조정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서울특별시의사회는 이번 공모전을 계기로 성분명 처방과 의약분업 제도 전반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폭넓게 진행되길 기대하고 있다. 의료진과 환자, 정책 당국이 참여하는 공론장 속에서 환자 안전을 최우선 기준으로 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콘텐츠를 통해 간접적으로 제시했다는 평가다.
수상작 시상식은 12월 21일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성의회관 마리아홀에서 열릴 예정이다. 서울특별시의사회는 2026년 1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국민의힘 한지아 의원 주최로 수급 불안정 의약품 성분명 처방 국회 토론회를 개최해, 성분명 처방 정책 방향과 공급망 불안정 의약품 관리 방안을 함께 논의할 계획이다. 의료계와 정책 당국, 환자 단체 등이 어떤 합의를 도출할지에 따라 향후 제도 설계와 디지털 헬스케어 기반 약물 관리 체계의 방향이 크게 달라질 수 있어, 산업계는 논의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