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바이오

GPU 26만장 동원 독자 AI 개발…과기정통부, AI 3강 도약 승부수

서현우 기자
입력

인공지능과 첨단 과학기술이 산업 전반의 경쟁 판도를 바꾸는 가운데,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대규모 컴퓨팅 인프라와 국가 연구개발 체계 개편을 앞세워 이른바 AI 3강 도약 전략을 가동한다. 내년 세계 10위권 독자 인공지능 파운데이션 모델을 공개하고 GPU 26만장을 단계적으로 도입해 AI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청사진이다. 여기에 1조원 규모 범용AI, 국산 AI반도체, 양자컴퓨터와 차세대소형모듈원자로까지 연계해 국가 기술 주권과 신성장동력을 동시에 확보하겠다는 구상으로 읽힌다. 업계에서는 한국이 미국과 중국 중심으로 재편되는 글로벌 AI 경쟁에서 존재감을 키울 분기점이 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과기정통부는 12일 세종컨벤션센터에서 개최한 2026년도 업무계획 보고에서 내년 핵심 과제로 AI 3강 도약과 국민 체감 성과 창출, 과학기술 기반 혁신, 새로운 거버넌스를 통한 국가 혁신 역량 극대화를 제시했다. 배경훈 부총리는 내년 AI 관련 예산을 9조9000억원 규모로 기존 대비 3배 수준으로 늘리고 GPU 26만장 확보 계획을 세우며 AI 3대 강국 진입의 기반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17년 만의 과학기술 부총리 체제 복원을 계기로, 2026년부터 국민이 변화를 실질적으로 체감하는 성과에 방점을 찍겠다고 강조했다.

핵심 축은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이다. 과기정통부는 한국형 대규모 언어모델·멀티모달 모델에 해당하는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 1차 개발을 내년 1월 중 마무리하고, 상반기 중 오픈소스로 공개할 계획이다. 목표 수준은 내년 안에 글로벌 성능 기준 10위권 진입이다. 대형 언어모델은 방대한 텍스트와 이미지, 코드 데이터를 학습해 자연어 처리, 콘텐츠 생성, 추론 등 다양한 작업을 수행하는 범용 AI 기반 기술이다. 과기정통부는 이 모델을 국방, 제조, 문화 등 각 산업에 특화된 서비스로 확장하고, 민생 현장에 적용하는 AI 민생 프로젝트를 통해 활용 폭을 넓힌다는 구상이다.

 

특히 정부가 직접 나서 범용AI, 특화AI, AI반도체까지 아우르는 풀스택 구축을 추진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먼저 AI 고속도로 역할을 맡을 컴퓨팅 인프라로 GPU 26만장을 순차적으로 도입하는 계획을 잡았다. 이 가운데 내년에는 정부 직접 구매 GPU 1만5000장과 슈퍼컴퓨터 6호기용 GPU 9000장 등 3만7000장을 우선 확보해 연구기관, 대학, 스타트업 등에 전략적으로 배분한다. 글로벌 AI 기업들이 수만 장 단위의 GPU 클러스터로 초거대 모델을 학습하는 흐름을 감안할 때, 국가 차원에서 연구용·산업용 컴퓨팅 자원을 집적 제공해 민간의 진입 장벽을 낮추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이와 연동해 1조원 규모의 범용AI 개발도 추진된다. 범용AI는 특정 도메인에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과업을 수행할 수 있는 초대형 모델을 뜻한다. 과기정통부는 국가가 일정 정도 초기 비용을 부담해 글로벌 상위권 모델과 경쟁 가능한 성능을 확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금융, 제조, 공공행정, 교육 등 각 분야에서 맞춤형 파생 모델을 구축해 활용 저변을 넓히겠다는 전략이다. 동시에 국산 AI반도체 육성 프로젝트를 통해 GPU 의존도를 줄이고, 장기적으로는 AI 연산 칩을 국산화해 컴퓨팅 인프라의 비용 구조와 공급망 리스크를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AI 활용 인력과 스타트업 생태계 강화도 병행한다. 과기정통부는 AI 중심 대학 신설과 AI 대학원 지원 확대를 통해 고급 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하고, 유망 AI 스타트업 지원을 위해 내년 4000억원 규모의 민관합동 투자 재원을 조성한 뒤 2030년까지 누적 3조원 이상으로 키운다는 계획을 내놨다. 또 대학과 출연연을 연계하는 AI 융합 연구 생태계를 위해 대학 기초연구 AI 센터를 확대하고, 국가과학AI연구소를 신설해 대형 융합 프로젝트와 컴퓨팅 인프라를 함께 지원한다는 방침도 포함됐다.

 

AI 활용 저변 확대를 위한 대국민 프로그램도 계획에 담겼다. 전국민 AI 경진대회를 개최해 우수 참가자를 AI 챔피언으로 선발하고, 상금과 후속 연구개발, 사업화, 창업 지원까지 연계해 실질적인 성장 사다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교육 측면에서는 온라인 기반의 우리의 AI 러닝과 오프라인 AI라운지를 통해 비전공자와 지역 주민까지 포함하는 AI 교육 프로그램을 넓힌다. 정부는 이 과정을 통해 AI 활용이 일부 대기업과 연구기관에 머물지 않고 국민 전체의 생산성 도구로 확산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 전환 측면에서는 AX로 명명된 AI 전환 프로젝트가 중점 과제로 제시됐다. 과기정통부는 서남권 모빌리티와 에너지, 동남권 정밀제조, 대경권 바이오와 로봇, 전북 AI 팩토리 등 4대 지역 AX 프로젝트를 추진해 지역 전략산업에 AI를 심는다는 전략이다. 물류, 조선, 국방, 제조 등에서 대규모 데이터와 AI 제어 기술을 결합하는 피지컬 AI 구축·확산 전략도 내년 상반기 중 별도 수립할 예정이다. 물리적 자산과 디지털 AI 시스템을 결합하는 피지컬 AI는 실시간 제어와 최적화를 통해 에너지 효율, 안전성, 생산성을 개선하는 기술 축으로, 향후 스마트팩토리와 자율이동체 분야의 핵심 인프라로 부상할 수 있다.

 

AX를 뒷받침하기 위해 과기정통부는 부처 간 협업 체계와 AI 자원 공유 구조를 정비한다. 조선 AX, 국방 AX, 피지컬 AI와 같은 사업을 범정부·산학연 협력 구조로 전개하고, 기후·에너지 등 신산업 분야까지 협력 범위를 넓힌다는 계획이다. 각 부처가 추진하는 AX 사업에는 AX 원스톱 지원 시스템을 도입해 정부가 확보한 첨단 GPU를 공동 활용하도록 하고, 과기정통부가 개발한 국산 AI 모델을 공통 기반으로 제공한다. 이를 통해 공공부문에서 중복 인프라 투자를 줄이고, 데이터·모델·컴퓨팅 자원의 상호 호환성을 높이는 효과도 기대된다.

 

정부 R D 구조 개편 역시 기술 혁신 전략의 중요한 축이다. 과기정통부는 혁신기술을 적용한 신제품의 초기 시장 형성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부처 간 경계를 낮춘 협업형 기술사업화 R D를 확대해 유니콘 기업 창출 토대를 넓힌다는 방침을 제시했다. 동시에 35조5000억원 규모로 역대 최대 수준에 이른 R D 예산의 집행 성과를 상시 점검하고, 예산심의 과정에 AI를 도입해 유사·중복 과제를 줄이겠다고 밝혔다. 절감된 예산은 국정과제에 재투자하는 구조로 설계해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국가 차원의 난제 해결을 겨냥한 K 문샷 프로젝트도 추진된다. 문샷은 인류의 난제를 정면 돌파하는 초도전적 연구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과기정통부는 2030년까지 기술 수준 85퍼센트 달성을 목표로 내년 중 핵심 임무와 단계별 마일스톤을 설계할 계획이다. 출연연은 임무 중심 연구소로 개편해 국민 체감 기술과 국가 난제 해결형 연구 비중을 높이고, 우수성과에 연계한 인센티브로 100개 팀에 총 51억2000만원을 배정해 연구 의욕을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동시에 전략 기술 분야에서 산학연 거점 역할을 강화해 기업과의 실질적인 공동 연구와 기술 이전을 촉진한다는 복안이다.

 

미래 전략기술 분야에서는 AI 바이오, 양자컴퓨팅, 원자력, 기초연구 등으로 투자 축이 넓게 분산됐다. AI 바이오 분야에서는 신약, 역노화 등 5대 분야 AI 바이오 모델을 2030년까지 개발하고, AI 바이오 연구거점과 자율실험실 같은 연구 인프라를 구축한다. 자율실험실은 로봇과 AI를 활용해 실험 설계와 데이터 분석을 자동화하는 플랫폼으로, 신약 후보물질 탐색과 바이오 공정 최적화를 크게 가속할 수 있는 기반으로 평가된다.

 

양자경제 선도를 위해서는 2028년까지 국산 양자컴퓨터 개발을 추진하고 2030년까지 양자 활용기업 1200개 육성을 목표로 제시했다. 양자컴퓨터는 특정 계산 문제에서 기존 슈퍼컴퓨터의 한계를 뛰어넘는 연산 능력을 갖출 수 있는 차세대 컴퓨팅 기술이다. 정부는 양자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을 함께 육성해 소재, 신약, 물류 최적화, 암호해독·보안 등 분야에서 선도 사례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원자력 분야에서는 차세대소형모듈원자로 메가프로젝트를 통해 실증로 개념 설계와 핵심기술 개발, 관련 인프라 구축 사업을 병행해 중장기 에너지 안보와 수출 산업 기반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연구 생태계 전반을 뒷받침하는 기초연구 강화와 인재 정책도 포함됐다. 과기정통부는 정부 R D 예산 중 일정 비율 이상을 기초연구에 투자하도록 하는 내용을 법제화하고, 10년 이상 장기 연구를 촉진해 연구자가 중단 없이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국가과학자 제도 기본계획을 마련해 내년에 리더급 국가과학자 20여 명을 선정하고, 박사우수장학금 1000명 신설 등 이공계 대학원 장학금을 확대한다. 또 5개 연구기관을 선정해 블록펀딩 방식으로 예산을 지원함으로써 기관이 책임지고 해외 우수 연구자를 유치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높일 계획이다.

 

사이버보안 분야에서는 해킹과의 전면전을 표방했다. 우선 기업의 보안 인식 제고와 책임 체계 강화를 위해 최고경영자의 보안 책임을 법령에 명문화하고, 보안최고책임자의 권한을 강화하는 제도 개편을 준비한다. 반복적으로 보안 사고를 일으키는 기업에 대해서는 매출액의 100분의 3 이하 수준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이는 AI와 디지털 인프라 확대에 비례해 사이버 위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현실을 반영한 조치로 볼 수 있다.

 

국민 보호 측면에서는 해킹이 발생한 사업자에게 이용자 통지 의무를 부과해 피해 확산을 줄이고, AI 기반 위협 탐지 시스템과 AI 위협 공유체계인 AI ISAC을 구축해 공격 패턴을 신속히 공유하고 대응하는 체계를 마련한다. 기존 보안관제 시스템에 AI 분석 엔진을 접목해 이상 징후 탐지 정확도와 속도를 높이고, 산업 전반의 보안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전반적으로 과기정통부의 이번 계획은 AI와 양자, 원자력, 바이오 등 미래 전략기술을 국가 차원의 통합 프로젝트로 묶어 추진하면서, GPU 인프라와 R D 거버넌스, 인재·보안 체계를 함께 재정비하는 방향으로 설계됐다. 산업계와 연구계에서는 확보된 예산과 인프라가 실제 현장의 혁신으로 이어지려면 부처 간 칸막이 해소와 규제 정비, 민간과의 역할 분담이 관건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산업계는 이번 정책 설계가 실행 단계에서 얼마나 속도감 있게 추진되며 실제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서현우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과기정통부#k문샷프로젝트#국산양자컴퓨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