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정만 1만8천개”…TSMC 애리조나 공장, 미국 제조업 부흥에 관료주의 경고등
현지시각 기준 4일, 미국(USA) 일간지 뉴욕타임스(NYT)는 대만(Taiwan) 반도체 기업 TSMC가 애리조나주 피닉스 인근 사막지대에 건설 중인 대규모 공장이 1만8천개에 이르는 규정, 숙련 인력 부족, 주민 반발 등 복합적인 난관에 직면해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정부가 제조업 회복을 내세우는 상황에서 이 프로젝트가 미국 내 대규모 제조·인프라 투자에 내재한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 뒤따르고 있다.
NYT에 따르면 TSMC와 협력 업체들은 애리조나주 피닉스 북서부 소노라 사막 1천149에이커(약 4.65㎢) 부지에 반도체 생산 단지를 조성하고 있으며, 총 투자 규모는 1천650억달러(약 243조원)에 달한다. 황량한 사막을 이른바 ‘실리콘 사막’으로 바꾸려는 이 시도는 미국 내 복잡한 관료주의 구조와 행정 절차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야심적 개발 계획의 지연과 불확실성을 확대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TSMC는 자국인 대만에서 자원 확보, 인력 수급, 규제 승인 과정에서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왔지만, 미국에서는 시, 카운티, 주, 연방정부 등 여러 행정 단위가 겹겹이 관여하는 규제 체계에 부딪혔다. 웨이저자 TSMC 회장은 올해 초 국립대만대학교 강연에서 “모든 단계에서 허가를 받아야 하고, 승인 이후에도 전체 소요 기간이 대만의 최소 두 배 이상”이라고 언급하며 미국 인허가 절차의 비효율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웨이 회장은 특히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반도체 산업 관련 규정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TSMC가 스스로 산업 규정을 설계하고, 이를 승인받기 위해 별도의 전문가 팀을 구성해야 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과정에서 새로 마련된 규정이 1만8천개에 달했으며, 관련 비용만 3천500만달러(약 516억원)를 넘어섰다고 밝혀 규제 인프라 부재와 관료주의가 초래한 비용 부담을 부각시켰다.
NYT는 미국이 대기·수질 오염을 줄이고 작업장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엄격한 규제를 도입해 왔지만, 시간이 흐르며 각종 행정 절차와 서류 요건이 누적되면서 관료주의가 과도하게 비대해졌다는 전문가 비판이 힘을 얻고 있다고 소개했다. 미국 실리콘밸리 소재 연구기관 미국혁신재단(FAI)의 토머스 호크먼 디렉터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제조업 발전을 가로막는 주요 문제 상당수는 실제 환경 기준과 거의 관계가 없다”고 말하며, 현재 규제 체계가 실질적 목표보다 형식과 절차에 치우쳐 있다고 지적했다.
호크먼 디렉터는 주요 인허가 병목 사례로 국가환경정책법(NEPA)을 거론했다. NEPA는 대형 건설 프로젝트에 환경영향평가를 의무화하고 있지만, 무엇을 금지하거나 어떤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사실상 “서류 작업을 해야 한다”고만 요구하는 방식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이 방대한 문서 작업과 검토 절차에 매달리면서 실제 환경 보호 효과에 비해 행정 부담이 과도하게 커졌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규제 부담과 더불어 공장 인근 지역 주민들의 반대도 제조 시설 건설의 또 다른 불확실성 요인으로 떠올랐다. TSMC 협력사인 반도체 패키징업체 앰코 테크놀로지는 2023년 TSMC 단지 인근 애리조나주 피오리아 지역에 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했으나, 교통 혼잡과 환경 영향 등을 우려한 주민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결국 부지를 옮겨야 했다고 NYT는 전했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 각지에서 대형 산업 시설이나 인프라를 둘러싼 ‘님비(NIMBY)’ 갈등이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TSMC는 애리조나 공장 건설과 시운전 과정에서 현지 인력 확보에도 큰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첨단 공정 장비를 설치·운용하려면 상당한 수준의 전문 교육과 현장 경험을 갖춘 인력이 필요한데, 미국 현지에서 즉시 투입 가능한 인재를 충분히 찾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NYT는 이 같은 기술 인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TSMC가 대만에서 500명이 넘는 숙련 노동자를 애리조나로 파견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조치는 새로운 논란을 불러왔다. 현지 노조는 TSMC가 미국 연방 보조금을 받으면서도 해외 인력을 대량 활용하는 것은 보조금 취지와 규정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주장하며, 이민 당국에 대만 노동자들의 비자 발급을 제한해 달라고 요구했다. 미국 내 제조업 일자리 확대를 기대했던 노동계 입장에서는 외국인 숙련 인력이 핵심 공정에 투입되는 구조에 대한 반감이 작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TSMC의 인력 운용 방식을 둘러싼 논쟁은 법정으로도 번졌다. NYT는 애리조나와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TSMC 시설에서 근무한 전·현직 직원 28명이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상태라고 전했다. 이들은 소장에서 대만 출신 고위 관리자들이 주로 중국어로 업무 지시를 내리고, 미국인 직원을 폄하하거나 의사결정에서 배제해 현지 채용 인력이 조직에서 소외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지 문화와의 충돌, 직장 내 차별 논란이 외국 기업의 미국 진출 과정에서 새로운 리스크로 떠오르고 있는 셈이다.
NYT는 TSMC가 애리조나 피닉스를 새로운 반도체 허브로 전환하려는 시도가 미국에서 대규모 제조·인프라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필연적으로 마주치는 구조적 어려움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집권 당시 제조업 부흥을 핵심 국정 과제로 내걸었고, 조 바이든 행정부도 반도체법과 대규모 보조금을 통해 국내 제조 기반을 강화하려 하고 있지만, 복잡한 규제 장벽과 지역사회 반대, 숙련 인력 부족이 결합되면서 실제 공장 건설과 운영 단계에서 강한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NYT 보도는 미국(USA)이 중국(China)과의 기술 패권 경쟁 속에 반도체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전략을 추진하는 가운데, 제도와 사회 구조가 이를 뒷받침할 만큼 정비돼 있지 않다는 문제의식을 부각한다. 관료주의 개혁, 인력 양성 체계 개선, 지역사회와의 갈등 조정 메커니즘 구축이 뒤따르지 않을 경우, 대형 제조 프로젝트가 잇따라 지연되거나 비용이 급증할 수밖에 없다는 경고로도 읽힌다.
전문가들은 TSMC 사례가 향후 미국 내 다른 해외 기업 투자와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규제 간소화와 인허가 절차 개편, 숙련 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훈련 확대 등이 뒤따를지에 따라 미국 제조업 재건 전략의 성패가 갈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제사회는 미국이 이번 난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그리고 이러한 경험이 글로벌 공급망 재편 흐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