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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충전 인프라 전면 개편”…기후부, 전기차 안전·편의 강화→충전정책 전환점

허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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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에너지환경부가 전기차와 양방향 통신이 가능한 스마트 완속 충전기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명확히 하며, 충전량을 정부가 임의로 제한하려 한다는 우려를 조기에 차단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 주차장 전기차 화재 이후 본격화된 스마트 충전 인프라 보급 사업이 소비자 사이에서 규제 강화로 오인되는 상황에서, 충전 제어의 목적은 안전성 확보와 편의 제고에 있지 충전량 통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전기차 시장이 빠르게 팽창하는 가운데 충전 인프라를 국제표준에 맞춰 고도화하고, 향후 양방향 충·방전과 플러그 앤 차지 같은 차세대 서비스의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정책 방향도 함께 제시됐다.  

 

기후부가 7일 배포한 설명 자료에 따르면 스마트 완속 충전기는 급속 충전기와 마찬가지로 전기차와 통신이 가능한 PLC모뎀을 장착한 완속 충전기다. 정부는 향후 신규 설치 충전기는 스마트 완속 충전기로 일원화하고, 내구연한이 도래한 기존 완속 충전기도 순차적으로 스마트 충전기로 교체하는 기본 방침을 세웠다. 정책의 축을 ‘스마트’ 기능에 둔 셈이다.  

스마트충전 인프라 전면 개편…기후부, 전기차 안전·편의 강화→충전정책 전환점
스마트충전 인프라 전면 개편…기후부, 전기차 안전·편의 강화→충전정책 전환점

소비자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대목은 스마트 완속 충전기의 핵심 기능으로 거론되는 충전 제어가 곧 충전량 강제 제한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특히 청라 화재 이후 공동주택 지하 주차장에 배터리가 일정 수준까지만 충전된 차량만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논의된 전례가 있어, 정부가 화재 위험 관리를 이유로 충전 상한을 사실상 법제화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여기에 배터리 충전량을 낮추는 방식만으로 화재 위험을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느냐는 실효성 논쟁까지 얽히며 시장의 혼선이 커졌다.  

 

기후부는 모든 전기차에 이미 탑재된 배터리관리시스템, 즉 BMS가 배터리 충전량이 기준 수준에 도달하면 스스로 충전을 멈추는 1차 안전장치로 작동하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스마트 완속 충전기는 전기차의 잔여 충전량과 충전 상태를 의미하는 SoC 정보를 통신을 통해 확인한 뒤, BMS에 오류가 발생하더라도 이용자가 사전에 설정한 충전 수준까지만 충전이 이뤄지도록 제한하는 이중 안전장치로 설계됐다고 설명됐다. 충전량의 기준을 정하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이용자이며, 정부나 운영자가 임의로 상한을 고정하는 구조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기후부 관계자는 5일 사전 브리핑에서 과거 청라 화재 이후 서울시가 공동주택 지하 주차장에 배터리 충전 상한을 90%로 제한한 차량만 진입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했을 때, 중앙정부는 소비자 권익 침해를 이유로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고 전했다. 당시에도 충전량을 강제하는 방식의 규제는 지양해야 한다는 원칙을 밝혔으며, 스마트 충전기 보급 정책 역시 이용자 자율 설정을 전제로 한다는 설명이다.  

 

스마트 충전기를 통해 수집되는 데이터가 기업 입장에선 영업비밀에 해당할 수 있고, 나아가 소비자 이용 행태가 과도하게 추적될 수 있다는 개인정보 보호 우려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기후부는 충전기에서 수집된 정보는 암호화 과정을 거쳐 저장되며, 화재 원인 분석과 이상 배터리 조기 발견 등 전기차 안전 확보를 위한 용도로만 활용된다고 밝혔다. 또한 관련 법령에 따라 정보 접근 권한과 활용 범위가 엄격하게 제한된다고 강조했다. 시장 확산 단계에서 데이터의 공공성과 산업 경쟁력, 개인정보 보호 사이의 균형을 의식한 설명으로 풀이된다.  

 

기술 표준 측면에서는 통신 프로토콜을 둘러싼 논쟁이 커졌다. 국제적으로 전기차와 충전기 간 통신을 위해 널리 채택된 표준은 ISO-15118-2인데, 스마트 완속 충전기에는 K-VAS라는 별도 프로토콜이 쓰여 국제표준과 동떨어진 ‘독자 노선’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K-VAS는 명칭 자체가 부가서비스, 즉 Value Added Service를 의미한다. 독일 등 일부 유럽에서는 주행 전 전기차 히터를 미리 가동하는 기능을 VAS로 구현한 사례가 있다.  

 

기후부 설명에 따르면 K-VAS는 ISO-15118-2와 경쟁하는 독자 규격이 아니라 ISO-15118-2 규격을 준수한 상태에서 충전 제어와 배터리 정보 수집과 같은 추가 기능을 부가서비스 형태로 구현하기 위한 확장 계층이다. 핵심 통신 구조와 호환성은 국제표준을 그대로 따른다는 점에서 고립된 프로토콜이라는 평가는 부정확하다고 강조했다. 충전 인프라 제조사와 전기차 제조사가 동일한 국제표준 언어를 기반으로 하되, 국내 안전정책과 서비스 모델에 맞춘 부가 기능만 덧입힌 구조라는 설명이다.  

 

한편 전기차와 충전기 간 통신 표준은 2027년을 기점으로 차세대 규격인 ISO-15118-20으로의 전환이 예고돼 있다. 일각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구세대로 분류되는 ISO-15118-2 기반 스마트 충전기를 지금 단계에서 대거 보급하는 것이 타당한가라는 문제를 제기해 왔다. 기후부는 ISO-15118-2에서 ISO-15118-20으로의 전환은 충전기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만으로 가능하도록 설계돼 있다고 설명하며, 하드웨어 자산이 조기 폐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책 로드맵도 제시됐다. 기후부는 올해를 ISO-15118-2 도입의 실질적인 원년으로 삼고, 중장기적으로 ISO-15118-20 기반 체제로 자연스럽게 이행한다는 계획이다. 충전기 제조사들은 내년 12월까지 차세대 규격 지원을 위한 업그레이드를 마치는 일정으로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충전 인프라 투자가 대규모로 이뤄지는 시점에 호환성과 업그레이드 가능성을 구조적으로 확보해 두겠다는 취지다.  

 

K-VAS 기반 기능이 실제로 작동하려면 전기차 제조사들이 차량에 탑재된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해 관련 기능을 수용해야 한다. 기후부에 따르면 현대자동차와 기아, 테슬라는 이미 업데이트를 진행하거나 완료한 상태이며, 대부분 글로벌 제조사가 정부가 제시한 기한인 내년 6월까지 지원을 마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일부 유럽 브랜드 차량은 업데이트에 제약이 있을 수 있지만, 설령 K-VAS 기반 부가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더라도 기본적인 충전 기능에는 장애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스마트 인프라의 부가 기능을 점진적으로 확장하되, 기본 사용성은 훼손하지 않는 방향의 점진적 이행 모델로 해석된다.  

 

스마트 완속 충전기를 통해 구현될 예정인 서비스 역시 충전 인프라 전환의 궁극적 목적을 드러낸다. 기후부는 충전 요금 결제 과정을 생략하고 커넥터를 차량에 연결하는 행위만으로 인증과 결제가 자동으로 이뤄지는 플러그 앤 차지 기능, 전기차 배터리에 남은 전력을 전력망으로 되돌려 판매할 수 있게 하는 양방향 충·방전 기능에 스마트 충전기가 필수적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전기차를 단순한 교통수단에서 분산 에너지 자원으로까지 확장하려는 에너지 정책과 맞닿아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스마트 완속 충전기 정책이 충전 인프라를 안전 중심에서 편의·에너지 시장 연계까지 포괄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충전량 임의 제한 우려, 데이터 활용 논란, 국제표준과의 정합성 문제 등은 정책 추진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할 과제지만, 전기차 보급 규모가 커지는 상황에서 지능형 충전 인프라 없이는 화재 위험 관리나 전력 수급 안정, 이용자 경험 개선을 동시에 달성하기 어렵다는 점에는 대체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기후부는 스마트 충전기를 전기차 안전과 이용자 편의를 높이기 위한 인프라 고도화 정책의 결실로 규정하며, 표준과 데이터, 시장 구조를 둘러싼 세부 논의와 함께 정책 완성도를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허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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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에너지환경부#스마트완속충전기#iso15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