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이 곧 캔버스가 된다”…서울 겨울밤 물들이는 서울라이트 DDP의 빛
요즘 겨울밤 동대문 앞을 지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든다. 예전엔 쇼핑의 거리로만 기억되던 이곳이, 지금은 거대한 빛의 스크린이 된 서울의 일상이 됐다. 유리와 금속이 얽힌 외벽 위로 파도처럼 밀려오는 색과 음악을 함께 바라보며, 사람들은 도시 한복판에서 조용히 한 해를 정리한다. 사소한 산책이지만, 그 안엔 달라진 겨울 풍경이 담겨 있다.
서울특별시와 서울디자인재단이 선보이는 글로벌 미디어아트 축제 서울라이트 DDP 겨울 축제가 2025년 12월 18일부터 12월 31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일대에서 열린다. 이미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로 꼽히는 iF, Red Dot, IDEA를 모두 거머쥔 데다, 세계 최대 비정형 건축물 3D 맵핑 디스플레이로 기네스 세계기록에 올라 있는 만큼 이 미디어파사드는 도시와 여행자 모두에게 하나의 볼거리이자 겨울의 풍경이 됐다. 곡선이 인상적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건물 전체가 하나의 스크린이 되고, 익숙한 서울의 이미지가 빛과 영상으로 다시 쓰이는 순간 관람객은 잠시 “이 도시가 이렇게 아름다웠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축제의 중심은 매일 밤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물들이는 대규모 미디어파사드다. 서울시와 버스데이가 함께 만든 Seoulful Winter는 제목 그대로 ‘서울다운 겨울’을 장면으로 엮어낸다. 눈 내리는 저녁거리, 네온사인과 건물 불빛, 사람들의 실루엣이 리듬감 있는 영상으로 이어지며 묘하게 따뜻한 온기를 전한다. SNS에는 “회사 끝나고 일부러 한 정거장 더 걸어서 보고 간다”는 인증 글이 쌓이고, 연인과 가족, 혼자 온 이들 모두 화면 속 서울을 배경으로 각자의 서울을 떠올린다.
IPX와 협업한 Seoul with LINE FRIENDS는 겨울 축제의 분위기를 조금 더 장난스럽게 만든다. 브라운과 코니 같은 라인프렌즈 캐릭터들이 서울 곳곳을 여행하는 스토리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외벽 위로 펼쳐지고, 캐릭터 특유의 둥근 표정과 과장된 몸짓이 더해지며 아이들의 환호성이 터진다. 화면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젊은 관람객들도 끊이지 않아, 광장은 언제든 “사진 한 장만 찍어주실 수 있나요”라는 말이 오가는 공유의 공간이 된다.
프리다츠가 작업한 Merry Beat Seoul과 DDP Winter's Gift는 도시의 박자를 시각으로 번역한다. 강렬한 비트에 맞춰 빛이 튀어 오르고, 추상적인 패턴이 건축물의 곡선을 타고 흐르며 마치 거대한 악보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Merry Beat Seoul이 활기찬 서울의 에너지를 드러낸다면, DDP Winter's Gift는 선물 상자를 여는 장면처럼 서서히 열리는 빛의 연출로 설렘을 키운다. 관람객들은 “노래 한 곡 듣는 시간 동안 마음이 환기된다”고 표현하며, 음악과 영상에 몸을 맡긴 채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이야이야앤프렌즈가 선보이는 A Christmas Adventure는 동화 같은 이야기로 관람객을 붙잡는다. 모험을 떠난 작은 캐릭터들이 환상적인 공간을 지나며 겪는 여정을 화면 위에 그려내고, 관람객은 고개를 들어 그 길을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스토리에 빠져든다. 프리다츠의 또 다른 작품 DDP Luminarie는 화려한 색감 대신 은은한 빛의 결을 강조한다. 번쩍이는 도시 속에서도 고요를 품은 장면이 필요하다는 듯, 빛은 푸르게 숨을 고르고 사람들은 그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한 번 더 더듬어 본다.
이런 변화는 주변 공간에서도 이어진다. 미래로 다리 일대에는 DDP 루미나리에가 조성돼 빛의 아치가 이어진 산책로가 펼쳐진다. 사람들은 그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조용히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다. 누군가는 사진을 남기느라 연신 셔터를 누르고, 누군가는 말없이 빛의 곡선을 따라 걷는다. 사진 한 장을 찍고 바로 떠났던 예전과 달리, 이제는 빛을 배경으로 여유를 즐기려는 움직임이 읽힌다. 전문가들은 이런 겨울 빛 축제를 “도시의 야간 공원을 확장한 또 다른 정원”이라고 부르며, 어두운 시간을 쓸 줄 아는 새로운 도시 문화로 해석한다.
디자인 거리에는 서울 대표 캐릭터 해치와 소울프렌즈가 관람객을 맞는다. 서울의 상징을 현대적인 캐릭터로 풀어낸 설치물 앞에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이게 서울을 지키는 캐릭터야”라는 설명을 듣고, 부모들은 사진을 남기며 도시의 얼굴을 소개한다. 그만큼 서울의 정체성이 딱딱한 상징물이 아니라 놀이와 디자인의 언어로 다가온다. 거리 전체는 잠시 교과서 대신 카메라와 웃음으로 배우는 도시 수업의 장이 된다.
어울림 광장에 마련된 라인프렌즈 포토존은 낮과 밤 서로 다른 표정을 보여준다. 낮에는 대형 조형물이 만들어내는 귀여운 풍경 덕분에 가족과 친구들이 줄을 서고, 미디어파사드 상영 시간에는 화면 속 캐릭터와 현실의 조형물이 이어지는 장면이 연출되면서 축제의 대표 사진 명소로 자리 잡는다. “서울 왔으면 여기서 한 장은 찍어야 한다”는 말이 나올 만큼, 관광객에게도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이 된다.
팔거리에는 이야이야앤프렌즈 포토존이 이어진다. 거리 곳곳에 놓인 캐릭터와 소품 덕분에 관람객은 작은 마을을 탐험하듯 발걸음을 옮긴다. 아이들은 숨은 그림을 찾듯 포토 스폿을 찾고, 어른들은 어릴 적 크리스마스 풍경을 떠올리며 사진을 남긴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별 거 아닌 산책이었는데, 돌아오는 길에 괜히 마음이 따뜻해졌다”, “아이보다 내가 더 들떴다”처럼, 사람들은 각자의 속도로 축제를 소비하고 있다.
잔디언덕 위에 자리한 위싱 크리스탈은 축제의 가장 조용한 공간이다. 반짝이는 구조물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은 소리 내어 말하진 않지만, 마음속으로 소원을 한 번쯤 떠올린다. 주변 조명과 어우러져 빛나는 크리스탈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곡선과 함께 몽환적인 풍경을 만들고, 그 앞에서 사람들은 휴대전화 화면 대신 잠시 자신의 머릿속을 들여다본다. 한 관람객은 “작은 소원을 비는 순간, 올해를 돌아보게 됐다”고 표현했다.
서울라이트 DDP 겨울 축제는 예술성과 기술력, 그리고 도시의 일상을 한데 묶는다. 세계적인 디자인 어워드와 기네스 기록이 증명하는 수준 높은 3D 맵핑 기술이 동대문디자인플라자라는 상징적 건축물 위에서 구현되고, 곳곳의 캐릭터 포토존과 빛의 산책로가 연결되면서 서울의 겨울밤은 또 하나의 거대한 공공 미디어 갤러리로 바뀐다. 과거 겨울 축제가 소비와 쇼핑 중심이었다면, 지금의 서울라이트는 산책과 관람, 기록과 성찰이 한데 섞인 새로운 야간 문화로 자리 잡는 중이다.
2025년 12월 18일부터 12월 31일까지 이어지는 이 축제 기간 동안, 동대문을 찾는 사람들은 화려한 빛과 음악, 캐릭터와 함께하는 사진 속에서 잠시 빠르게 흘러가던 시간을 멈춘다. 누구와 왔는지, 어떤 한 해를 보냈는지에 따라 풍경은 조금씩 다르게 읽히지만, 공통된 것은 “오늘 밤만큼은 도시가 나를 위해 밝게 켜져 있다”는 감각이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겨울밤 빛을 따라 걷는 그 경험 속에서 우리 삶의 리듬은 조금씩 새로운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