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당원 주권 정당 약속 못 지켜 사과"…정청래 1인1표제, 민주당 중앙위에서 좌초

문경원 기자
입력

당내 권한 구조 개편을 둘러싼 더불어민주당 권리당원과 대의원 간 갈등이 중앙위원회 표결에서 정면으로 드러났다. 사실상 대의원 제도 폐지를 목표로 한 1인 1표제 당헌 개정안이 부결되면서, 강한 속도전을 내세워 온 정청래 대표 체제도 적지 않은 정치적 충격을 맞게 됐다.

 

더불어민주당은 5일 오후 중앙위원 596명을 대상으로 1인 1표제 도입과 지방선거 공천 룰 개정을 담은 당헌 개정안 두 건을 표결에 부쳤으나 모두 부결됐다고 밝혔다. 중앙위원 373명(참여율 62.58퍼센트)이 참여한 가운데, 지방선거 공천 룰 개정안은 찬성 297명, 반대 76명, 1인 1표제 개정안은 찬성 271명, 반대 102명으로 집계됐다.

당헌 개정을 위해서는 재적 중앙위원 과반인 299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했지만, 공천 룰 개정안은 의결정족수에 2표가, 1인 1표제는 28표가 모자랐다.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관문을 넘지 못한 셈이다.

 

조승래 사무총장은 중앙위원회 결과를 발표하며 "중앙위원들의 선택에 대해 지도부는 존중해야 한다"면서도 "당원 주권 강화를 향한 행진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도부가 표결 결과를 수용하되, 당원 중심 정당 구상 자체는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정청래 대표는 표결 직후 예정에 없던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책임을 인정했다. 그는 "저의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돼 당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한 뒤, "강물이 바다를 포기하지 않듯이 1인 1표, 당원 주권 정당의 꿈도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당권 도전 당시 내세웠던 핵심 공약이 좌초된 만큼, 향후 리더십 운용에 부담이 커진 셈이다.

 

정 대표는 8월 2일 전당대회에서 1인 1표제 도입과 권리당원 권한 강화를 대표 공약으로 제시했고, 지난달 17일 이를 위한 당헌 개정 추진 방침을 공식화했다. 1인 1표제는 당 대표 선거 등 주요 당직 선출 과정에서 대의원 표에 부여돼 왔던 가중치를 없애고, 권리당원 표와 동등하게 반영하는 구조를 뜻한다.

 

이 제도를 둘러싸고 당 안팎에서는 찬반 논쟁이 거세게 전개됐다. 당내 민주주의와 당원 참여를 확대할 수 있다는 긍정론이 제기된 반면, 영남 등 당 약세 지역의 의견이 과소 대표되고 이른바 강경 성향 권리당원의 영향력이 과도하게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특히 당내 일각에서는 정 대표가 조직표 성격이 강한 대의원보다 권리당원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 이에 따라 1인 1표제 도입이 내년 8월 전당대회에서 자신의 연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규정 변경이라는 비판이 제기됐고, 정 대표의 이해관계와 맞물린 제도 개편이라는 시각이 확산됐다.

 

논란이 거듭되자 민주당 지도부는 당 약세 지역에 대해서는 별도의 가중치를 두는 등 전략 지역 보호 장치를 포함한 수정안을 마련해 이날 중앙위원회 표결에 부쳤다. 그러나 절충안에도 불구하고 부결되면서, 제도 개편 필요성에는 일정 부분 공감하던 인사들까지 이탈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같은 날 표결에 오른 지방선거 공천 룰 개정안도 중앙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 안은 지방선거 예비 후보가 5인 이상일 경우 최고위원회 결정에 따라 권리당원 100퍼센트 투표로 예비경선을 치를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크게 논쟁적이지 않다는 평가가 많았던 만큼, 이 안건까지 함께 부결된 배경을 두고 정청래 지도부에 대한 불만이 집단적으로 분출된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민주당 지도부는 그러나 두 안건의 향후 처리 방향을 다르게 잡았다. 1인 1표제 도입은 당분간 재추진이 어렵다는 입장을 정리한 반면, 공천 룰 개정안은 지방선거 일정상 필요성을 재확인하며 신속한 재논의를 예고했다. 조 사무총장은 "주말이라도 지방선거기획단 회의를 열어서 신속히 논의가 정리되면 다음 주 월요일 최고위원회에 올려서 수정안을 제출하겠다"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부결을 계기로 정청래 대표의 개혁 드라이브에 속도 조절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내 민주주의 강화라는 가치에 공감하는 목소리와 함께, 제도 개편 과정에서 충분한 숙의와 이해 조정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병존한다. 향후 민주당이 중앙위원회와 권리당원, 대의원 간 힘의 균형을 어떻게 재설정하느냐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 공천 룰은 물론, 내년 8월 전당대회 구도까지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이날 민주당 중앙위원회는 1인 1표제와 지방선거 공천 룰 개정안을 둘러싸고 치열한 찬반 공방 끝에 부결 결론을 냈다. 당 지도부는 표결 결과를 수용하면서도 수정안을 토대로 한 재논의를 서두르겠다는 방침을 세운 만큼, 향후 당 최고위원회와 지방선거기획단 논의 과정에서 다시 한 번 제도 개편 방향을 둘러싼 격론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국회와 정치권은 민주당의 내홍과 제도 개편 논의를 지켜보며 차기 선거판의 유불리를 저울질할 공산이 크다.

문경원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정청래#더불어민주당#1인1표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