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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검거는 입에 밴 말"…여인형, 윤석열 내란 재판서 체포조 의혹 정면 반박

문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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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을 둘러싼 내란 혐의 사건에서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다시 맞붙었다. 체포조 운영 의혹과 계엄 실현 가능성을 두고 양측의 시각 차이가 법정에서 선명하게 드러나면서 향후 재판 공방이 한층 거세질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 지귀연 부장판사는 27일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사건 속행 공판을 열었다. 이날 재판에는 비상계엄 당시 이른바 정치인 체포조 운영 의혹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여 전 사령관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여 전 사령관을 상대로 체포조 운영 지시가 없었다는 점을 부각하는 데 집중했다. 여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당시 체포조 관련 발언을 놓고 "군인들은 체포, 검거, 공격해, 쳐부숴 같은 말은 입에 배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도 모르게 한 말이 있고, 나중에 보니까 이때 이런 말을 왜 썼지 싶은 말도 있다"고 덧붙이며 실제 조직 운영과 발언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체포 대상자로 거론된 인물과 관련해 "위치 추적보다는 어디 있는지를 확인해 달라고 했던 것 아니냐"고 물었다. 여 전 사령관은 "추적은 트래킹이라 불가능하고 정확히 확인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며 "이 사람들 어디 있을까를 물어봤다가 가장 자연스러운 말"이라고 진술했다.

 

또한 윤 전 대통령 측은 여 전 사령관과 김대우 전 방첩사 수사단장 등의 메모에 적힌 이름이 서로 다소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다. 한 사람의 지시가 있었다면 명단이 같아야 하는데, 여러 경로에서 흘러들어온 정보를 종합하는 과정에서 차이가 생긴 것 아니냐는 취지였다. 이에 여 전 사령관은 "명단은 장관한테 들었다. 끄적끄적 썼고 김대우한테 불러줬고 김대우는 돌아가서 화이트보드에 적어놨다"고 답했다.

 

재판에서는 윤 전 대통령의 과거 발언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특검은 재주신문 과정에서 윤 전 대통령이 지난 공판에서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에게 했던 질문 영상 일부를 제시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위치 추적은 영장 없이 안 된다. 대통령은 검찰총장까지 지낸 사람인데 어떻게 이런 걸 시키고 여 전 사령관은 이런 걸 부탁한다는 게 연결이 안 되지 않느냐"고 말한 바 있다.

 

특검은 이날 여 전 사령관에게 "지시 없이 이런 일을 했느냐"고 따져 물었다. 여 전 사령관은 "전 지시 받는 입장이라고 분명히 말했다"고 답하며 상명하복 구조 속에서 움직였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또 지난해 11월 9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몇몇 이름을 듣고 받아 적은 사실은 인정했다. 다만 "그냥 적고 끝난 것이다. 그게 제 마음속에 있었으면 왜 한 달 동안 아무것도 안 했겠느냐"고 반문하며 실질적인 후속 조치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계엄령의 현실성 논란도 다시 부상했다. 여 전 사령관은 계엄 선포 이틀 전을 언급하며 "김 전 장관이 비상계엄, 대권 등을 언급해 식탁 유리를 꽝 치면서까지 계엄은 불가능하다고 명백히 말씀드렸다"고 회상했다. 그는 계엄 실행 가능성이 구조적으로 낮았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은 반대 신문 과정에서 여 전 사령관의 이 같은 발언에 공감을 표시했다. 윤 전 대통령은 "많은 숫자의 군이 투입되는 계엄이라는 게 현실적으로 대한민국에서 어렵다"며 한국 사회에서 대규모 계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그는 대신 이른바 경고성 계엄 효과를 언급하며 계엄 논의의 성격을 축소하는 데 힘을 실었다.

 

합동수사본부 인력 요청과 관련한 의혹에 대해 여 전 사령관은 당황 속 실수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비상계엄 당시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각각 100명씩의 인력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엄청나게 당황해서 실수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군인들은 연말쯤 되면 한해 훈련을 종합해서 작전계획을 새로 만드는데, 내부적으로 합동수사본부를 만들려면 경찰 100명, 조사본부 100명 생각을 했었다"며 "막상 비상계엄이 걸리니 당황하고 혼란스러워서 생각도 못 하고 머릿속 말을 실수로 했다"고 부연했다.

 

재판 과정에서는 여 전 사령관의 입장 정체성을 둘러싼 발언도 나왔다. 그는 "이 마당에 대통령님 편을 들 것 같나. 특검 편을 들 것 같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천만에. 나는 첫째, 하나님 편이고 둘째, 국민들 편이고 셋째, 사랑하는 전우들 편"이라고 말하며 특정 진영이 아닌 원칙과 동료들을 기준으로 진술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날 재판에는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도 증인으로 나왔다. 윤 전 대통령 측은 김 전 청장에게 "김용현이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이 의원들 출입하는 건 막지 말라"고 말했다는 내용이 알려져 있다며 관련 사실을 알고 있는지 질문했다. 김 전 청장은 "듣지 못했다"고 답해 계엄 상황에서 국회 출입 통제 지시 여부를 둘러싼 쟁점은 여전히 남게 됐다.

 

법정 안팎의 풍경도 재판부 입을 통해 언급됐다. 지귀연 부장판사는 공판을 시작하며 지난 재판에서 허가 없이 촬영된 사진을 둘러싸고 방청객들 사이에서 시비가 벌어진 일을 상기했다. 그는 "탄원서를 제출한 분께 법정 질서를 유지하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며 "이후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윤 전 대통령이 "저 때문에 오신 분들한테 당부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라고 묻자, 지 부장판사는 "피고인께서 그런 말씀하시는 건 적절하지가 않은 것 같다"며 제지했다.

 

재판부는 전날 공판준비기일에서 윤 전 대통령 사건을 다음 달 29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조지호 경찰청장 사건과 병합해 심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재판부는 내년 1월 초까지 변론을 종결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국회와 정치권을 뒤흔든 비상계엄 내란 혐의 수사의 법적 심판이 내년 초 윤곽을 드러낼 가능성이 커졌다. 정치권은 재판 결과가 향후 정국 구도와 책임 공방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으며, 재판부는 남은 기일 동안 핵심 증인 신문을 이어갈 예정이다.

문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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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형#윤석열#비상계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