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용 AI 시대 대비해야"…이재명, 우주·AI 전략 속도전 주문
인공지능과 우주항공 기술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에 대통령이 직접 속도전을 주문했다. 정부가 무인 달 착륙선 발사와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구축 계획을 내놓자, 이재명 대통령이 일정과 목표 수준이 글로벌 흐름에 뒤처질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지적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정부 R&D와 인프라 방향을 다시 조정해야 하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특히 우주항공 분야에서는 발사체 자립과 일정 현실화, AI 분야에서는 범용 인공지능과 전 국민 디지털 역량 강화가 향후 정책의 핵심 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은 12일 세종시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과학기술 분야 업무보고 자리에서 우주항공청의 달 궤도선·착륙선 발사 계획을 보고받았다. 발표에 따르면 정부는 우리 기술과 발사체를 활용한 무인 달 착륙선을 2032년에 쏘아 올리는 목표를 제시했다. 여기에 대해 이 대통령은 국제 우주개발 흐름을 언급하며 시기와 목표 수준이 적절한지 되물었다.

이 대통령은 "달 착륙선은 2032년에 보낼 계획이냐"며 "남들은 사람도 타고 왔다 갔다 하는데 이제 보내는데 그것도 2032년이나 돼야 한다는 게 조금"이라고 말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민간과 국가의 유인 달 탐사가 재개된 상황에서 우리 계획이 후발 주자에 머물 수 있다는 문제의식으로 풀이된다. 현재 미국과 민간 기업들은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을 통해 달 궤도 정거장과 유인 탐사 재개를 추진하는 중이다.
윤영빈 우주항공청장은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자국의 발사체로 완전한 우리나라 기술로 착륙선을 보내는 계획"이라고 답했다. 단순 참여가 아니라 설계부터 발사까지 독자 기술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설명이다. 우주항공 분야에서 발사체 기술은 위성·탐사선·국방 시스템까지 연계되는 핵심 인프라로, 기술 자립 여부가 장기 경쟁력의 분기점으로 꼽힌다.
이 대통령은 조직 운영 측면에서도 우주개발 효율성을 문제 삼았다. 우주항공청 본청이 경남 사천에, 연구 기관은 대전에 분리된 구조를 지적하며 "사천에선 사무실만 얻어놓고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걸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연구개발과 정책 기능이 분리돼 우주항공 밸류체인 구축과 현장 의사결정 속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로 해석된다. 우주 산업 특성상 발사장, 시험시설, 연구기관, 기업이 집적된 클러스터가 경쟁력의 핵심인데, 현재 국내 구조는 물리적·행정적 단절을 안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공지능 분야에서도 대통령의 주문은 속도와 수준 모두를 향했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국내 기술로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을 개발해 민간에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보고했다. 파운데이션 모델은 초거대 언어·멀티모달 모델처럼 다양한 업무와 서비스에 공통 기반으로 활용되는 범용 AI 기술을 뜻한다.
배 부총리는 "민생 AI 프로젝트를 통해 국민이 실제 체감할 수 있는 서비스를 먼저 내년에 제공하려고 한다"며 "AI 국세 정보 상담사, 농산물 알뜰 소비 정보 플랫폼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세 행정, 농수산물 유통 등 공공·생활 영역에서 AI 기반 상담과 정보 제공을 먼저 구현해 실효성을 보여주겠다는 구상이다.
여기에 대해 이 대통령은 현재 계획이 범용 인공지능의 전략적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그는 "제가 상상하는 범용 AI하고는 많이 동떨어진, 부분적이다. 빨리 준비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국세 상담, 소비 정보와 같은 개별 서비스 AI가 아니라, 누구나 폭넓게 활용할 수 있는 범용 파운데이션 모델과 그 위에서 돌아가는 다양한 생태계를 목표로 해야 한다는 주문으로 해석된다.
배 부총리는 "전 국민이 쓸 수 있는 AI는 대학생, 취약계층을 우선으로 하고 2027년에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우선 대상에게 무료 또는 저비용으로 AI 서비스 접근 권한을 제공하고, 이후 일반 국민까지 확장하는 로드맵을 제시한 셈이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이미 범용 생성형 AI를 앞세워 교육·업무·상거래를 장악하는 국면에서, 국가 차원의 공공 AI 플랫폼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AI 접근 격차와 디지털 문해력 문제를 교육 과제로 명확히 제시했다. 그는 "국민이 AI를 어떻게 활용할지 모르는 분들이 많다"며, 인공지능을 읽고 쓰는 기본 기술로 규정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인공지능을 활용하지 않으면 마치 산수나 한글을 깨치지 못한 것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며 "동네 아주머니, 아저씨, 할아버지, 할머니, 아무나 AI를 쓸 수 있게 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나라의 문맹률이 매우 낮은데 국민의 90퍼센트 이상이 AI를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전 국민의 AI 활용 역량을 기초 교육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다. 여기에는 기초 디지털 교육, 맞춤형 온라인 강좌, 공공 도서관과 주민센터 기반의 AI 체험 인프라 확충 등이 수반돼야 한다는 지적이 뒤따를 수 있다.
이 대통령은 "국민에게 기회를 활용할 수 있는 최소의 능력은 우리가 보유해 줘야 한다"며 "교육이 중요한데 해당 부처들을 모아서 필요한 것들은 강력하게 리더십을 가지고 추진해 달라"고 주문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교육부, 고용노동부 등 다수 부처가 관여하는 만큼 컨트롤타워의 역할과 예산·제도 정비가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과학기술계에서는 이번 발언을 두고 정부 R&D의 우선순위 재편 신호로 보는 시각도 있다. 달 탐사와 AI 파운데이션 모델 모두 국가 전략기술로 분류되는 만큼, 일정과 수준에 대한 최고위급의 문제 제기가 예산과 조직 개편, 민간 협력 구조에 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다만 우주항공 분야의 경우 발사체·탐사선·지상국 인프라를 모두 자립시키는 데 막대한 시간과 투자가 필요한 만큼, 일정 단축만을 목표로 삼기보다 기술 내실과 국제 협력을 병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AI 분야에서는 글로벌 선도 기업과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 데이터, 연산 인프라, 인력에 대한 공격적 투자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동시에 공공이 주도하는 파운데이션 모델이 민간 혁신을 제약하지 않도록 개방형 API, 오픈소스 협력, 규제 샌드박스와 연계하는 정책 설계가 관건으로 꼽힌다. 산업계는 정부가 제시한 우주·AI 전략이 실제 실행 단계에서 어느 정도 속도와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