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김정은 혁명사상, 노동당 규약 명문화 가능성"…전문가들 "공화국 대원수·국가주석 추대 있을 수 있다"

김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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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안보와 체제 결속을 둘러싼 북한 내부 구도와, 이를 관리하려는 한국 외교안보 라인이 맞붙었다. 내년 초 예정된 제9차 조선노동당 대회를 기점으로 북한이 최고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권위를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한반도 긴장 관리와 대화 재개의 외교전도 가팔라질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다.

 

9일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연 '2026년 한반도 정세전망과 정책과제' 포럼에서 전문가들은 북한이 9차 당대회를 통해 노동당 규약에 이른바 김정은 혁명사상을 명문화하고, 김 위원장에게 공화국 대원수 칭호를 부여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더 나아가 국가기구 개편을 통해 김 위원장이 국가주석에 오르는 시나리오도 거론됐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는 이날 발표에서 "북한이 9차 당대회 체제에선 '김정은의 조선' 만들기에 주력할 것"이라며 김정은 혁명사상의 규약 반영 가능성을 내다봤다. 김정은 혁명사상은 우리국가제일주의와 인민대중제일주의를 핵심으로 내세우는 정치 이념으로, 김일성 주의·김정일 주의에 이어 김 위원장을 독자 이념의 수령으로 부각하는 장치로 해석된다.

 

김 위원장에 대한 군사 칭호 격상도 전망됐다. 공화국 대원수는 북한에서 최고통치자에게만 부여되는 군사 칭호로, 현재 김 위원장의 군 직위인 원수보다 한 단계 높다. 김일성은 생전에, 김정일은 갑작스러운 사망 이듬해에 각각 대원수로 추대됐다.

 

양 교수는 "당 규약 개정과 국가기구 개편을 연계해 김정은 혁명사상을 최고 이념으로 삼고, 김 위원장에 대한 칭호와 직함을 동시에 상향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김 위원장이 국가주석에 오르는 방안을 유력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로 거론하면서, "명실상부한 최고지도자 체제를 제도적으로 완성하려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이 이미 김 위원장의 군 칭호를 상향했을 가능성에 대한 언급도 나왔다. 2022년 조선인민군 창건 90돌 열병식 당시 김 위원장의 복장에서 기존 원수 계급장과 형태가 다른 견장이 포착되면서, 일각에선 대원수 계급장일 수 있다는 추측이 제기됐었다. 그러나 북한은 지금까지 공화국 대원수 칭호 부여 사실을 공식적으로 알리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번 9차 당대회가 관련 사실을 제도적으로 확정하고 대내외에 과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김보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북한연구실장도 발표에서 "북한이 9차 당대회를 계기로 김 위원장의 수령 지위와 절대 권위 상징화를 추진하며, 온사회 김정은 혁명사상화를 가속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당 규약과 각종 법령, 선전·선동 체계에 김정은 혁명사상 문구가 대대적으로 편입될 경우, 주민 생활 전 영역에서 사상 통제가 한층 강화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북한의 대외전략과 관련해서는 북러·북중 관계를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거세질 것이란 분석이 제시됐다. 이정철 서울대학교 교수는 "내년 북한의 대외 관계는 북러동맹이나 북중관계를 매개로 북미관계 재개를 타진하는 외교를 구사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그는 러시아와 중국을 통해 안전보장과 경제 지원을 확보하면서도, 미국과의 협상 공간을 넓히려는 다층적 접근이 병행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내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 예정된 상황을 주목하며, 이를 남북대화 재개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미국과 중국이 전략 경쟁 속에서도 일정 수준의 대화를 유지하는 국면에서, 북한이 이를 활용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려 할 수 있고, 한국은 이런 흐름을 한반도 긴장 완화와 대화 복원으로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양 교수는 "남북관계 단절 장기화 속에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은 북한이 다시 움직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한국이 선제적으로 여건 조성 노력을 활발히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년 초 한미 연합훈련을 조정하고, 이재명 대통령의 방중을 통해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미리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여건이 무르익을 경우 대북 특사 파견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대북 관련 발언 변화도 대화 재개를 위한 포석으로 해석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 2일 연설에서 북한 비핵화 대신 핵 없는 한반도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양 교수는 이에 대해 "비핵화는 외부 개입과 관여, 강제력에 기인한 정책 프로세스"라며 "핵 없는 한반도는 핵이 없는 상태는 비핵화와 다를 바 없지만, 정책 프로세스보다는 남북 모두 지향해야 할 가치 또는 담론 성격으로, 강제력에 바탕한 수동적 성격보다 동의와 의지에 기반한 능동적 성격"이라고 평가했다. 북측 입장에서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적은 표현을 통해 대화의 문턱을 낮추려는 시도로 본 셈이다.

 

헌법 문제와 관련해선 현실적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이어졌다. 이정철 교수는 "북한이 요구하는 한국 헌법 개정은 불가능하지만, 현행 헌법 체제하에서 북한과 사실상 두 국가론이나 통일 지향의 평화적 잠정적 두 국가론 등의 접근법을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영토 조항과 통일조항을 유지하되, 현실적으로는 두 개의 실질적 국가가 공존하는 구조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협상과 제도 협력을 모색해야 한다는 취지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9차 당대회를 통해 김정은 개인에 대한 혁명사상과 칭호, 직함을 집중 강화할 경우, 내부적으로는 체제 결속을 높일 수 있지만 외부에겐 군사·핵 능력을 바탕으로 한 장기 대치 의지를 알리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봤다. 동시에 미국 대선 이후 트럼프 행정부와 중국, 러시아를 둘러싼 국제 정세 변화가 한반도 정세의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어, 한국 정부가 선제적 외교와 군사적 긴장 완화 조치, 대화 제안 카드를 입체적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내년 초 한미 연합훈련을 둘러싼 결정과 이재명 대통령의 중국 방문 추진 여부, 대북 특사 카드 가동 여부 등이 향후 정국의 분수령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국방부와 외교부, 대통령실이 북중러 공조와 미국의 대북정책 방향을 동시에 감안한 전략 수립에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는 주문도 뒤따랐다. 정치권은 북한의 9차 당대회 결과와 미국 대선 이후 정세 변화를 면밀히 주시하며, 다음 국회 회기에서 관련 외교안보 현안을 두고 본격적인 논의에 나설 계획이다.

김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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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이재명#양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