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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사 장기기증 데이터"…한국장기조직기증원, 디지털 헬스 전환 촉진

윤지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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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이식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장기기증 정보를 디지털로 연결하는 데이터·플랫폼 인프라가 의료 IT 산업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이 공개하는 개별 기증 사례는 단순 미담을 넘어, 병원과 이식 대기자를 실시간으로 연동하는 장기 배분 시스템의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업계에서는 장기이식 네트워크 고도화가 인공지능 기반 공여자·수혜자 매칭, 이식 성공률 예측 모델 등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 확산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최근 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병원에서 뇌사 판정을 받은 40대 여성 기증자의 장기가 5명에게 이식됐다고 밝혔다. 뇌사 장기기증은 의료진의 사망 판정 이후 가족 동의, 조직·장기 적합성 검사, 국가 차원의 이식 관리 시스템 등록, 이식 병원 매칭과 수술까지 일련의 디지털·의료 절차를 거친다. 국내에서는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와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이 관련 데이터를 수집·관리하며, 장기 종류별 이식 우선순위와 시급성을 고려한 배정 알고리즘을 운용한다.  

장기 배분 시스템의 기술적 핵심은 공여자와 수혜자의 의료 데이터를 표준화해 신속하게 분석하는 구조에 있다. 혈액형, 조직 적합성 지표, 체중과 장기 크기, 기저질환, 이식 대기 기간 등 수십 개의 지표가 데이터베이스로 통합되고, 장기 손상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송 거리와 수술 가능한 의료진 일정까지 고려한 매칭 로직이 적용된다. 기존에는 수기 입력과 전화·팩스 중심의 의사소통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전자의무기록과 연동된 전산 시스템을 통해 후보자를 자동 검색하고, 우선순위에 따라 병원에 알림을 보내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특히 뇌사 장기기증 데이터는 향후 인공지능 기반 예측 모델 개발의 중요한 학습 자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공여자 상태, 이식 직전 장기 기능 수치, 수술 시간, 수혜자의 기저질환과 이식 후 생존 기간을 장기적으로 추적하면, 어떤 조합에서 이식 후 합병증과 생존율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패턴을 찾을 수 있다. 의료 AI 기업들은 이러한 데이터를 활용해 이식 후 거부반응 위험도, 면역억제제 용량 조정 전략 등을 시뮬레이션하는 모델을 연구하고 있으며, 일부 글로벌 센터에서는 머신러닝을 활용해 기존 경험적 판단보다 이식 성적을 높였다는 보고도 나오고 있다.  

 

국내 장기이식 플랫폼은 아직 미국과 유럽에 비해 디지털 전환 수준이 낮다는 평가도 있다. 미국에서는 전국 장기 배분을 담당하는 유나이티드 네트워크 포 오건 셰어링이 클라우드 기반 시스템으로 병원과 실시간 데이터를 공유하며, 이식 대기자 수천 명을 대상으로 복잡한 우선순위를 자동 연산해 장기를 배분한다. 유럽 주요국 역시 국가 단위 이식 레지스트리를 구축해, 환자별 이식 전후 데이터를 수십 년 단위로 축적하고 알고리즘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병원별, 질환별 데이터 포맷이 제각각이어서 장기이식 관련 데이터를 통합 분석하는 데 제약이 크다. 개인정보 보호 규제에 대한 해석이 기관마다 달라, 연구 목적으로 데이터를 결합하는 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 의료계에서는 식약처와 보건복지부가 이식 데이터의 활용 범위와 익명화 기준을 보다 명확히 제시해야, 실제 환자 안전을 높이는 방향으로 데이터 기반 연구가 탄력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윤리와 제도 역시 디지털 장기이식 네트워크의 성장 축으로 꼽힌다. 장기기증 동의 과정, 뇌사 판정 절차, 장기 배분 알고리즘의 공정성은 모두 신뢰 문제와 직결된다. AI가 개입하는 의사결정 과정이 늘어날수록, 알고리즘이 어떤 기준으로 수혜자를 선정하는지 투명하게 공개하고 검증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유럽연합의 인공지능 법안 논의처럼, 의료 AI를 고위험 군으로 분류해 설명 가능성과 책임 소재를 강화하는 방향이 국내에서도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  

 

장기기증 플랫폼은 의료 기술뿐 아니라 사회적 인식과 교육, 가족 동의 문화를 포함한 복합 생태계에 기반한다. 기증자의 삶과 선택을 존중하며, 이를 바탕으로 장기기증 데이터 인프라를 정교하게 구축할 수 있다면, 신약 개발과 수술 기법 개선, 이식 후 관리 솔루션까지 연계된 새로운 의료 IT 시장이 열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산업계와 의료계는 장기이식 데이터의 가치가 커지는 만큼, 생명 윤리와 데이터 보호, 기술 혁신이 균형을 이루는 방향으로 제도가 설계될지 지켜보고 있다.

윤지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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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장기조직기증원#장기이식#디지털헬스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