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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SNS 금지법”…플랫폼 규제 논쟁 국내 디지털 헬스

정하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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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의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사용을 법으로 제한할지 여부를 둘러싸고 국내에서도 논쟁이 거세지고 있다. 숏폼 영상과 비교 중심의 피드에 빠진 10대들이 수면 부족, 학습 저하, 자존감 붕괴를 겪고 있다는 호소가 이어지면서다. 호주가 세계 최초로 16세 미만 아동·청소년의 SNS 접속을 전면 차단하는 강수를 두자 한국에서도 이른바 10대 SNS 금지법 도입 논의가 본격화되는 모양새다. 다만 과거 게임 셧다운제의 전례처럼 기술적 우회와 모호한 규제 범위로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과 함께, 교육과 자율 규제를 중심으로 한 디지털 건강 관리 전략이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힘을 얻고 있다.  

 

김종철 방송미디어통신위원장은 1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청소년 SNS 이용 금지법 추진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당연하게 생각한다고 답하며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호주 사례를 언급하며 16세 미만 이용 제한을 포함한 규제 방향에 공감하는 듯한 입장을 내비쳤다가, 반발 여론이 커지자 법정대리인 동의 권한 강화 등 다양한 대안을 검토하겠다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취임 후 첫 출근길에서도 청소년은 보호 대상이자 기본권 향유자라며, 권리 보장과 피해 방지를 동시에 고려한 안전장치 마련을 검토하겠다고 선을 그었다.  

논쟁의 배경에는 전 세계적인 청소년 SNS 중독과 정신건강 악화 우려가 놓여 있다. 숏폼 영상에 장시간 노출되는 중학생, 또래의 외모와 일상을 비교하며 불안과 열등감에 시달리는 고등학생 사례가 일상적으로 포착된다. 국내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에서는 청소년의 약 절반에 해당하는 47.7퍼센트가 SNS 이용을 스스로 조절하기 어렵다고 응답했다. 일부 뇌 영상 연구에서는 과도한 SNS 사용이 청소년기 뇌 발달과 정서 조절 기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결과가 보고돼, SNS 환경을 새로운 디지털 건강 리스크로 보는 시각도 확산되고 있다.  

 

호주는 지난해 시드니 한 교회에서 16세 소년이 주교를 흉기로 공격한 사건을 계기로 규제 고삐를 죄었다. 극단주의 단체가 SNS를 통해 세력을 넓힌 정황이 드러난 데다, 정부 의뢰 연구에서 10세에서 15세 아동·청소년의 96퍼센트가 SNS를 사용하고 그중 70퍼센트가 유해 콘텐츠에 노출됐다는 결과가 나오면서다. 호주 정부는 법안을 통해 앞으로 16세 미만 국민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스레드, 유튜브, 틱톡, 엑스 등 주요 SNS에 접속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아니카 웰스 통신부 장관은 SNS 알고리즘이 마약과 같은 중독을 유발한다며, 아동 보호를 위한 극단 처방임을 강조했다.  

 

호주발 규제 움직임은 말레이시아와 유럽연합 등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말레이시아는 내년부터 16세 미만 미성년자의 SNS 이용을 금지하는 제도 도입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연합 의회도 지난달 SNS 이용 최소 연령을 16세 이상으로 높이자는 결의안을 통과시키며 어린 연령대의 플랫폼 노출을 줄이려는 방향을 제시했다. 각국이 법적 연령 상향과 알고리즘 규제를 통해 정신건강 피해와 극단화 확산을 막으려는 흐름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국내에서는 이미 국회 차원의 규제 시도가 있었다.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청소년의 일일 SNS 이용 시간을 제한하고 이용 한도를 설정하는 내용을 담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부도 알고리즘 기반 추천 시스템이 청소년의 이용 패턴과 정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연구 과제를 추진해 왔다. 다만 실제 입법으로 이어지려면 SNS 정의와 연령 확인 방식, 해외 사업자 적용 수단 등 기술적 세부 설계가 필요해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태다.  

 

규제 방식이 법적 차단에 치우칠 경우 실효성 논란이 다시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대표적인 사례가 10년 만에 폐지된 게임 셧다운제다. 셧다운제는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청소년의 온라인 게임 접속을 막는 것을 골자로 했지만, 부모 명의 계정을 빌려 쓰거나 가상사설망을 활용해 시간 제한을 회피하는 방식이 빠르게 확산돼 유명무실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SNS의 경우 플랫폼 종류와 접속 경로가 훨씬 다양해, 기술적으로 완전한 차단을 구현하기 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SNS 정의 자체가 애매하다는 점도 규제 설계의 난관이다. 호주는 둘 이상의 사용자 간 온라인 사회적 상호작용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규제 대상으로 삼았지만, 이 기준으로도 동영상 플랫폼이나 메신저, 커뮤니티 서비스가 어디까지 포함되는지 논쟁이 반복되고 있다. 실제로 호주에서는 초기 입법 초안에서 유튜브를 제외했다가 여론과 해석 논란을 거쳐 다시 포함시키는 혼선이 있었다. 국내에서도 인스타그램과 같은 이미지 기반 SNS를 막고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는 허용하는 식의 선택적 규제가 자의적 기준이라는 형평성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IT업계는 지난해 정보보호법 개정안에 대해 일제히 반대 의견을 제출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SNS 정의가 지나치게 넓어지면 사실상 대부분의 정보통신서비스가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청소년이 보호자 동의 없이 거의 모든 디지털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렵게 되는 상황을 우려했다.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도 포괄적 입법 규제보다는 세부 가이드라인과 사업자 자율규제로 사적 질서를 형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플랫폼별로 10대 이용 비중과 사용 행태를 면밀히 파악하는 데이터 인프라가 미비하다는 점도, 일률 규제의 한계로 꼽힌다.  

 

의학·뇌과학 분야에서는 청소년 과도 사용이 위험하다는 경고와 함께, 법적 규제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동시에 나온다. 전지원 가톨릭대 의료정보학 교수는 청소년 뇌 영상 연구에서 SNS 과다 사용이 뇌 건강을 위협한다는 결과가 꾸준히 관찰되고 있고 심리적 취약성을 지닌 청소년에게 더 위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전 교수는 SNS 이용 제한 같은 강력 규제가 실제로 문제 행동을 줄이는지, 새로운 우회 수단과 갈등을 부르는 부작용은 없는지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며, 청소년이 안전한 온라인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실질적 교육을 우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업계 역시 법으로 막기보다는 청소년 스스로 디지털 사용을 조절할 수 있도록 돕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핵심이라고 본다. 알고리즘 추천 구조를 이해시키고, 유해 콘텐츠 신고와 차단 기능 사용법을 체계적으로 안내하며, 건강한 이용 시간 관리 습관을 학습시키는 내용이 학교 정규 교육과정에 자리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부 교육기관과 지자체에서는 이미 SNS 디톡스 프로그램, 디지털 웰빙 교육 등을 시범 도입하고 있으나, 여전히 선택 과목이나 단기 캠페인에 그치는 수준이다.  

 

호주를 비롯한 해외는 법적 연령 제한과 플랫폼 책임 강화를 전면에 내세우는 반면, 국내에서는 청소년 표현의 자유와 정보 접근권 침해 우려로 정면 금지 방식에 대한 정치적 부담이 큰 상황이다. 그 대신 부모와 학교, 빅테크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공동 관리 모델, 예를 들어 기본값으로 적용되는 청소년 보호 모드 강화와 투명한 알고리즘 설명 의무, 데이터 기반의 위험 이용자 조기 개입 시스템 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정책 당국은 청소년을 보호 대상이자 디지털 시민으로 동시에 바라보는 시각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단기적인 접속 차단보다, SNS가 학습·관계 형성·진로 탐색에 긍정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환경을 설계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법·제도 정비 과정에서 학부모와 교사, 의료계, 플랫폼 업계 의견을 균형 있게 반영하지 못하면 제2의 셧다운제 논란만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국회와 정부가 어떤 선택을 하든, 청소년의 디지털 건강을 둘러싼 사회적 합의 없이는 제도가 작동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산업계는 이번 SNS 규제 논쟁이 강행 입법으로 이어질지, 교육과 자율 규제 중심의 절충 해법을 찾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하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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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sns금지법#호주sns전면차단#게임셧다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