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기정통부 8조1천억 R&D 투자…AI 3강·초격차 전략 가속
인공지능과 전략기술 중심의 국가 연구개발 투자가 한층 공격적으로 전환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025년 한 해에만 8조1188억 원 규모의 연구개발사업을 집행하기로 하면서다. 전년 대비 25퍼센트 이상 늘어난 예산은 기초과학과 반도체·이차전지·양자·바이오 등 국가전략기술에 집중돼,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이른바 AI 3강 도약과 초격차 전략을 동시에 겨냥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업계에서는 이번 계획을 한국 과학기술·ICT R&D 포트폴리오가 양적 확대에서 질적 재편 단계로 넘어가는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과기정통부가 2일 확정·발표한 연구개발사업 종합시행계획에 따르면 올해 총 R&D 예산 8조1188억 원 가운데 과학기술 분야에 6조4402억 원, 정보통신·방송 분야에 1조6786억 원이 배정됐다. 과학기술 분야는 전년 대비 25.8퍼센트, ICT 분야는 24.3퍼센트 증액된 규모다. 정부는 이 예산을 통해 과학기술 기반 혁신성장을 본격 추진하는 동시에, 인공지능 3강 국가 도약에 필요한 기술·인력·인프라를 동시에 확충한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기초연구와 전략기술 투자가 양대 축으로 짜였다. 우선 기초연구사업에 2조8123억 원, 반도체·디스플레이·이차전지·양자·바이오 등을 묶은 전략기술개발사업에 2조4098억 원을 배정해 총 5조2588억 원을 투입한다. 기초연구 예산만 따로 보면 2조7000억 원 수준으로 17.4퍼센트 확대되며, 지원 과제 수도 약 1만2000개에서 1만5000개로 늘어난다. 정부는 이공계 연구생활장려금 참여 대학도 기존 35개교에서 50개교 이상으로 확대해, 장기적으로 연구자 저변을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전략기술 측면에서는 미·중 기술 경쟁과 공급망 재편에 대응할 수 있는 원천기술 개발이 핵심으로 제시됐다. 인공지능 네이티브 첨단바이오 자율실험실 구축에 135억 원을 새로 투입해, 실험 설계·데이터 수집·분석까지 자동화된 바이오 R&D 환경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AI가 실험 조건을 스스로 조합·검증하는 시스템으로, 신약 후보 발굴과 세포·단백질 기반 연구 속도를 크게 높일 수 있는 방식으로 주목된다.
차세대 연산 패러다임 확보를 위한 광기반 연산반도체 핵심기술개발 사업에도 46억3000만 원이 투자된다. 전자 대신 빛을 이용해 연산을 수행하는 광컴퓨팅 기술은 고성능 연산과 초저전력 구현에 유리해, 대규모 AI 모델 처리에서 병목이 되는 속도와 전력 문제를 동시에 풀 수 있는 대안으로 거론된다. 여기에 미래혁신선도형 이차전지 원천기술개발에 50억 원을 배정해, 차세대 전고체 전지, 고에너지 밀도 소재 등 중장기 기술 우위를 노리는 프로젝트도 병행한다.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한 미래소재 개발에도 힘을 싣는다. 반도체·전기차·첨단부품 산업의 핵심인 국가전략기술 미래소재개발에 935억7000만 원이 투입되며, 가동 중인 원전의 안전성을 높이는 가동원전 안전성 향상 핵심기술개발에는 383억2000만 원이 책정됐다. 특히 과학기술 연구 전반에 AI를 접목하는 AI 플러스 과학기술 혁신기술개발 사업을 신규로 45억 원 규모로 시작해, 실험 최적화, 설계 자동화, 데이터 기반 예측 모델링 등 연구 프로세스 전반에 AI를 내재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인프라 측면에서도 대형 시설과 슈퍼컴퓨팅 역량 강화에 나선다.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시설 착공에 1188억 원을 배정해, 재료·바이오·나노 등 기초과학과 산업기술 전반을 뒷받침할 정밀 분석 기반을 넓힌다. 초고성능 컴퓨팅 6호기 구축에도 684억4000만 원을 투입해, 대규모 AI 학습과 기후·우주·신약 설계 등 데이터 집약적 연구 수요를 처리할 연산력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지역 R&D 사업 구조도 시·도 단위에서 5극 3특 단위로 재편해, 중앙 주도에서 지역 자율형 체계로 옮겨가는 방향을 제시했다.
ICT 분야에서는 AI와 디지털 인프라가 투자의 중심축으로 제시됐다. 기술개발사업에 1조400억 원, 인재양성사업에 3083억 원이 투입되며, 국가 AI 대전환을 견인할 AI 전환 엔진과 네트워크·보안 인프라가 주요 타깃이다. 차세대 AI 원천기술로는 경량·저전력 AI 한계 극복 사업에 90억 원, 인간인지기반 AI 핵심원천 사업에 100억 원이 신규 편성됐다. 이는 대형 모델의 연산 부담을 줄이면서도 인간의 인지 구조를 모사해 추론·학습 효율을 높이는 기술로, 모바일·엣지 디바이스까지 AI 활용 영역을 확장하는 기반으로 꼽힌다.
물리 세계와 디지털 AI를 밀접하게 결합하는 피지컬 AI 선도기술개발에도 150억 원이 새로 투입된다. 로봇, 자율주행, 드론 등 실제 환경에서 움직이는 자율행동체를 위한 온디바이스 응용지원 사업도 60억 원 규모로 신규 추진된다. 이들 사업은 센서·제어·통신이 결합된 통합 플랫폼을 통해, 산업용 로봇, 물류, 스마트 모빌리티 분야의 자동화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디지털 첨단 인프라 구축도 속도를 높인다. AI 기반 네트워크, 이른바 AI RAN에 90억 원을 투자해, 무선 접속망에서 트래픽을 지능적으로 제어하고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는 기술 개발을 추진한다. 6세대 이동통신과 저궤도 위성통신 등 차세대 통신 분야에는 1068억 원이 배정돼, 지상·위성 융합 네트워크와 초저지연·초고신뢰 통신 기술 확보를 노린다. 이는 글로벌 통신장비·서비스 경쟁에서 기술 자립도를 높일 수 있는 분야로 평가된다.
사이버보안 역량 강화는 AI 생태계와 디지털 전환의 필수 전제로 제시됐다. AI 생태계 보안 내재화 사업에 36억 원, 정보보호 핵심원천기술개발에 1074억 원을 투입해, AI 모델 보호, 데이터 위변조 탐지, 양자내성 암호 등 차세대 보안 기술 연구를 지원한다. 디지털 헬스케어, 핀테크, 공공 서비스 등 민감한 데이터가 오가는 서비스에서 보안과 신뢰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고급 인재 양성은 AI와 디지털 전환을 뒷받침할 구조적 과제로 다뤄졌다. 과기정통부는 AI 대학원 10개에 400억 원, AX 대학원 10개에 150억 원을 지원해 특화 교육·연구 거점을 확대한다. 호남권, 대경권, 동남권, 전북 등 4개 권역에는 AI 전환 혁신거점 조성을 위한 대형 R&D 사업도 새로 착수해, 지역별 산업 구조에 맞춘 AI 활용 모델을 발굴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수도권 편중을 완화하고 지역 기반의 디지털 산업 생태계를 유도하겠다는 목표가 담겼다.
연구개발 효율과 연구자 체감도를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도 병행된다. 과기정통부는 데이터 기반 R&D 관리 체계를 본격화하고, 연구성과 평가 기준을 단기 실적 중심에서 도전성과 성실성 중심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도전적 목표 설정과 실패 허용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 파괴적 혁신을 겨냥한 연구가 활성화되도록 유도하는 방향이다.
연구행정 간소화 역시 ICT 분야를 중심으로 추진된다. 과제 신청 시 제출 서류가 13종에서 10종으로 줄어들고, 도전적 연구목표 달성 실패를 용인하기 위해 기존의 평가등급 제도도 폐지된다. 해외에서 복귀한 연구자나 국내에서 활동하는 해외 연구자 참여를 늘리기 위해 영문 공고 사업도 확대할 계획이다. 이는 글로벌 인재와 국내 연구 생태계의 연결을 강화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이번 R&D 투자 확대와 구조 개편이 실제 산업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이 공존한다. 대형 예산 프로젝트가 늘어나는 만큼, 사업 간 중복과 예산 분산을 피하고 성과를 산업 현장과 연결시키는 실행력이 관건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기정통부는 신규사업과 과제별 추진 일정을 2일 중 공고하고, 이달 중 열리는 정부 연구개발사업 부처합동 설명회를 통해 구체적 내용과 공모 시기, 절차를 안내할 예정이다. 산업계는 이번 계획이 한국의 AI 3강 도약과 전략기술 초격차 전략을 뒷받침하는 실질적 전환점이 될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