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과다섭취 경련 유발”…성인 하루 10알 넘기면 위험
은행 열매가 가을철 인기 간식으로 소비되면서, 식품영양·독성학계가 과다 섭취에 따른 신경계 독성 위험을 거듭 경고하고 있다. 길가에서 주운 은행을 볶아 한꺼번에 먹었다가 전신 발작과 의식저하로 응급실에 실려 간 사례가 보고되면서, 성인은 하루 10알, 어린이는 3알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는 권고에 관심이 쏠린다. 전문가들은 열을 가해 조리하더라도 독성 물질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 ‘하루 허용량 관리’가 안전의 핵심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국내 의료진이 보고한 대표적인 증례는 50대 후반 남성 환자 사례다. 평소 간질이나 발작 병력이 없던 58세 남성 A씨는 새벽에 갑작스러운 구토 후 의식을 잃어 응급실로 이송됐다. 병원 도착 후에도 의식이 회복되지 않는 상태에서 갈색 분비물을 여러 차례 토했고, 곧이어 몸이 뻣뻣해졌다가 전신이 규칙적으로 떨리는 강직간대발작이 이어졌다. 사전에 알려진 뇌전증 병력이 없었던 만큼, 의료진은 섭취 이력과 독성 물질 가능성에 주목했다.

위 내용물을 확인한 결과, 상당량의 은행 열매가 발견됐다. 조사 과정에서 A씨는 이틀 전 길에서 주운 은행 3000개 중 일부를 매 끼니마다 볶아 4~5알 정도씩 먹어왔고, 사고 직전 저녁에는 약 두 주먹 분량인 200알가량을 한꺼번에 섭취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수준은 통상 성인 권장량을 수십 배 웃도는 수준으로 평가된다.
의료진은 은행 열매에 포함된 독성 물질에 의한 중독, 그중에서도 간질지속상태로 판단했다. 치료팀은 신경계 유지에 필수적인 비타민 B6의 활성 형태인 피리독신 50밀리그램을 정맥 투여해 중독 기전을 역전시키는 전략을 선택했다. 투여 후 환자의 의식 상태는 서서히 호전됐고, 입원 4일째에 의식이 회복됐으며 추가 경련도 재발하지 않았다. 이후 뇌파검사 결과도 정상 범위로 돌아와 10일째 퇴원했다. 이 사례는 순천향대 천안병원 신경과학교실이 2011년 발표한 ‘은행 열매 중독으로 인한 간질지속상태’ 증례로 정리된 바 있다.
은행의 독성 기전은 여러 유해 성분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우선 시안 배당체로 불리는 화합물이 체내에서 효소 반응을 거치며 청산, 즉 시안화수소를 생성한다. 시안화수소는 세포 호흡을 방해해 현기증, 구토, 설사 같은 급성 중독 증상을 일으킬 수 있으며, 심해지면 산소 이용 장애로 인한 청색증과 의식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을 섭취할수록 위험성이 커지는 구조다.
더 근본적인 문제로 꼽히는 것은 메틸피리독신이라는 성분이다. 일본중독정보센터는 메틸피리독신을 은행 과량 섭취 시 경련, 복통, 호흡곤란, 의식 혼수 등 다양한 부작용을 일으키는 신경독성 물질로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은행잎 추출 진액을 복용한 고령 뇌전증 환자에게서 발작이 연속적으로 발생한 사례도 보고됐다. 은행 열매뿐 아니라 일부 관련 제제에서도 용량 관리와 기저 질환 고려가 필요하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메틸피리독신은 비타민 B6의 구조와 기능을 방해해, 뇌 속에서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인 GABA 생성 경로를 교란한다. GABA는 신경세포의 과도한 흥분을 가라앉히는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데, 메틸피리독신이 B6 작용을 저해하면 이 브레이크가 풀리면서 전신 경련과 호흡곤란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대량 섭취 시에는 의식 소실, 반복 발작, 심하면 호흡 정지와 사망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독성학계의 평가다.
열 안정성도 문제다. 메틸피리독신은 높은 온도에서도 쉽게 분해되지 않는 특성을 가져, 볶거나 삶는 조리 과정을 거쳐도 독성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조리는 일부 성분을 감소시킬 수 있지만, ‘익혔으니 안전하다’고 보기 어렵다. 이 때문에 식품영양학계는 조리 여부와 상관없이 하루 섭취량 관리를 가장 중요한 안전 수칙으로 제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은행을 먹을 때 두 가지 원칙을 강조한다. 첫째는 반드시 익혀서 먹는 것이다. 생은행은 독성 농도가 더 높고 소화 과정에서 급성 중독을 일으킬 위험이 커, 단순 시식 수준이라도 피하는 편이 안전하다고 조언한다. 둘째는 연령별 최대 섭취량을 지키는 것이다. 성인은 하루 10알 이내, 어린이는 3알 정도로 제한하는 것이 현재 학계에서 제시하는 기준이다. 특히 체중이 적고 해독 능력이 성인보다 떨어지는 어린이의 경우 중독 위험이 훨씬 높게 나타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식물학·영양학 관점에서 보면 은행을 포함한 씨앗류는 지방, 단백질, 탄수화물, 비타민, 무기질 등이 풍부한 고밀도 영양원이다. 다만 일부 씨앗은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시안배당체 같은 자연 독소를 내포하는 경우가 많다. 한 전문가는 씨앗류 섭취 원칙에 대해 식물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만든 방어 물질이 사람에게 독성이 될 수 있어 올바른 조리와 적정량 섭취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식품안전·보건 당국은 계절성 식재료에 대한 소비가 늘어나는 시기에 독성 정보와 섭취 기준을 반복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길가에서 주운 은행을 장기간 보관해 대량으로 섭취하는 행태는 독성 물질 노출과 식중독 위험을 동시에 키울 수 있어, 교육 자료와 캠페인을 통해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산업계에서는 은행 추출물을 활용한 기능성 식품과 건강 보조제 개발 수요가 꾸준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기능성 원료로 활용하더라도 메틸피리독신 등 독성 성분 관리와 인체 안전성을 입증하는 전임상·임상 데이터 축적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유효 성분과 독성 성분을 분리·정량화하는 기술과 함께, 장기 복용 시 신경계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체계가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결국 은행은 소량을 올바르게 섭취하면 영양 간식이지만, 과량 섭취 시 심각한 신경독성을 유발할 수 있는 양면성을 가진 식품으로 평가된다. 산업계와 보건당국, 소비자가 모두 독성 정보와 안전 섭취 기준을 공유할 때, 전통 식재료가 위험 요소가 아닌 건강 자산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산업계는 계절성 인기 식재료인 은행이 실제 식탁과 제품 시장에서 안전하게 소비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