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병원 현장 바꾸나”…동의서 부담에 디지털 혁신 발목 잡혀
의료 인공지능(AI)을 비롯한 혁신의료기술이 임상 현장에 확산되는 가운데,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동의서 제출 절차가 오히려 현장 혁신의 발목을 잡고 있다. IT 기반의 진료 디지털화가 행정 업무 부담 증가로 이어지면서, 현장에서는 인력 충원을 논의해야 할 정도로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다. 업계는 실효적 디지털 혁신을 위해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은경 용인세브란스병원장(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영상의학교실 교수)은 최근 개최된 필립스 기자간담회에서 “의료AI와 같은 혁신의료기기를 실제 임상에서 쓰려면 환자 동의서를 받아야 하는데, 작성과 제출 절차가 지나치게 번거롭다”며 “의료진 입장에서는 늘상 활용되는 기술임에도 불구하고 행정 업무량이 크게 늘어난다”고 지적했다. 현행 지침상 병원 등 임상 진료 기관은 혁신의료기술을 환자에게 적용할 때, 매번 개별 환자 동의서를 확보해 한국보건의료연구원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각각 제출해야 한다.

특히 이런 행정적 부담이 의료진 및 의료기관의 실질적 인력 운영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제기된다. 직접 동의서를 받기 위한 인력 투입 논의가 현장 간호사들 사이에서 빈번하며, “사람을 위한 디지털화가 역설적으로 사람 채용 부담으로 연결됐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들린다. 김은경 병원장은 “결국 의료 혁신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동의서 문제만큼은 정부 차원의 근본적인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정부 역시 의료기기 산업 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에 나서 왔다. 지난해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혁신의료기기 허가 후, 기존기술 적정성만 확인하면 최장 490일이 걸리던 시장 진입 소요 기간을 80일~140일 수준으로 크게 단축하는 등 일부 규제 합리화 조치를 시행한 바 있다. 그러나 정작 임상 현장에서는 동의서 취합·제출 등 잔존 행정 절차가 혁신의료기기 자체의 도입 동력을 약화시키는 실정이다.
의료AI 업계 관계자는 “병원 입장에서 행정 부담이 높아질 경우, 혁신의료기기 도입이 지체되거나 소극적으로 변할 우려가 있다”며 “특히 동의서 종류가 다양화되고 제출 대상이 복수 기관일 때 수집과 관리가 더욱 복잡해진다”고 설명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현재의 동의서 프로세스가 디지털화된 의료 환경에 실질적으로 부합하는지,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개선이 필요한 시점으로 진단한다.
글로벌 의료 현장에서는 이미 원스톱 관리 절차, 전자 동의서 시스템 등으로 이러한 실무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제도 개선 속도가 의료AI 등 혁신기술의 상용화 속도에 맞춰지지 않는 한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산업계는 행정 절차 간소화 및 진료 현장 중심의 규제 정비 없이는, 의료AI를 비롯한 혁신의료기술이 시장에 실질적으로 안착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기술 혁신과 제도 혁신의 균형이 향후 의료 현장 디지털 전환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