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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수사권 사유화·정치화"…특검, 오동운·이재승 직무유기 기소 파장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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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상병 순직 사건 수사외압을 둘러싼 충돌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뇌부로 번졌다. 순직해병 특별검사팀이 현직 처장과 차장을 정면 겨냥하면서 공수처 설립 취지가 흔들리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이명현 순직해병 특별검사팀은 26일 오동운 공수처장과 이재승 공수처 차장, 박석일 전 공수처 부장검사 등 3명을 직무유기 혐의로 불구속기소 했다고 밝혔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한 이후 처장과 차장이 동시에 형사 재판에 넘겨진 것은 처음이다.  

특검팀에 따르면 오 처장과 이 차장은 지난해 8월 접수된 송창진 전 공수처 부장검사의 위증 혐의 고발 사건을 약 11개월 동안 대검찰청에 통보하거나 이첩하지 않고 수사도 진행하지 않은 채 방치한 혐의를 받는다. 공수처법은 공수처장이 소속 검사의 범죄 혐의를 인지한 경우 관련 자료와 함께 대검에 통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가 된 위증 의혹은 지난해 7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비롯됐다. 송 전 부장검사는 당시 국회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통신기록 영장이 모두 기각됐다고 진술했고, 수사외압 사건에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가 연루된 사실을 몰랐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발언이 허위라고 주장하며 송 전 부장검사를 국회증언감정법상 위증 혐의로 고발했다.  

 

특검팀은 공수처 지휘부가 이 고발을 공수처를 겨냥한 정치적 공격으로 간주하고 사건 처리를 의도적으로 미뤘다고 판단했다. 사건을 대검에 넘길 경우 공수처장 등 지휘부가 외부 수사기관의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박석일 전 부장검사는 고발장 접수 이틀 만에 송 전 부장검사에 대한 무혐의 결론을 전제로, 사건 이첩과 수사 진행에 반대하는 보고서를 작성해 오 처장과 이 차장에게 보고한 혐의를 받는다. 특검팀은 보고서 내용이 그대로 이행됐다고 결론 내렸다.  

 

공수처의 미조치 기간 동안 주요 증거 상당수는 사라졌다. 특검팀에 따르면 송 전 부장검사의 통화내역은 1년이 지나 소실돼 이종호 전 대표와의 연락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워졌고, 공수처 재직 시 사용한 업무용 PC 자료도 퇴직 후 폐기돼 추적이 불가능해졌다.  

 

특검팀은 채상병 수사외압 의혹과 관련해 공수처 수사를 막은 혐의로 김선규 전 공수처 부장검사와 송 전 부장검사를 직권남용 혐의로도 기소했다. 두 사람은 검찰 재직 시절 윤 전 대통령과 근무 연이 있어 친윤 검사로 분류돼왔으며, 공수처의 채상병 수사외압 의혹 수사 당시에는 각각 공수처 처장과 차장 직무를 대행했다.  

 

김 전 부장검사는 지난해 2월부터 4월까지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관련 소환조사를 하지 말라고 지시한 혐의를 받는다. 그러나 그해 4월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한 뒤 기류는 급변했다. 순직해병특검법이 5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다음 날 김 전 부장검사는 "어서 소환하라. 막 소환하라. 대통령께 특검법 거부권을 만들어 드려야 한다"고 지시하며 소환조사를 독려한 것으로 조사됐다.  

 

송 전 부장검사는 지난해 6월 윤 전 대통령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등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청구를 막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일선 수사팀은 지난해 1월부터 대통령실과 국방부 장관·차관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수차례 올렸으나, 공수처 수뇌부가 수사에 제동을 걸면서 상반기 내내 압수수색영장 청구나 통신허가 청구 등 강제수사는 물론 주요 피의자와 관련자 소환조사도 진행되지 못했다.  

 

대통령실과 국방부 장관·차관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은 올해 4월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결정 이후에서야 착수됐다. 그러나 특검팀은 이미 상당한 증거가 소실됐고 핵심 당사자의 진술이 왜곡됐을 가능성이 커 수사 효율성이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정민영 순직해병 특별검사보는 이날 브리핑에서 "이들이 윤 전 대통령으로 향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관련 수사를 방해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의 행위는 공수처의 수사권을 사유화·정치화한 것은 물론, 권력형 비리 사건 등 고위 공직자 범죄에 대한 독립적이고 엄정한 처리를 목적으로 국민의 염원을 담아 출범한 공수처의 설립 취지를 무력화했다"고 비판했다.  

 

특검팀은 추가 정황도 파악했다. 송 전 부장검사는 지난해 3월 채상병 사건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호주대사로 임명되자 수사팀에 출국금지를 해제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 전 부장검사 역시 지난해 총선에 출마한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에 대해 출국금지 연장을 하지 말라고 지시한 정황이 드러났다. 다만 수사팀의 반발로 지시가 실행되지는 않아 범죄사실에는 포함하지 않았다고 특검팀은 설명했다.  

 

공수처는 특검 수사와 기소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다만 내부에선 수사 지휘 과정과 법률 검토 결과에 따른 판단이었다는 반론이 제기된 것으로 전해진다. 향후 재판 과정에서 공수처 지휘부가 직무유기와 직권남용 혐의를 둘러싸고 특검과 치열한 공방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권에선 공수처 책임론과 정치적 의도 논란이 맞서고 있다. 여권 일각에서는 공수처가 출범 때부터 정치 편향 논란에 휩싸였다고 지적하며 제도 개편이나 폐지를 언급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야권에서는 공수처 수뇌부가 정권을 향한 수사를 회피했다며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특검팀이 공수처 수뇌부를 정식 재판에 세우면서 채상병 순직 사건을 둘러싼 진상 규명 공방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재판 경과와 추가 수사 결과에 따라 공수처 조직 존폐와 고위공직자 수사 시스템 전반에 대한 개편 논의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회는 특검 수사와 재판 진행 상황을 지켜보면서 공수처 관련 제도 개선 여부를 다음 정기국회에서 논의할 계획이다.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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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운#이재승#송창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