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의 도구와 결별하자”…안규백,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국민의 군대’ 재건 강조
비상계엄의 상처와 작전권 전환을 둘러싼 숙제가 다시 맞붙었다. 12·3 비상계엄 1년을 맞아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전군 주요 지휘관을 소집하면서, 군의 정치적 중립과 한미연합 방위태세를 둘러싼 논쟁이 정국의 물음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방부는 3일 오후 서울 용산 국방부 대회의실에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 주관으로 ‘12·3 비상계엄’ 1년을 계기로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개최한다. 회의에는 각 군과 합동참모본부, 주요 직위자 등 150여 명이 참석해 헌법가치 수호, 군 구조 개편,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간부 복지 개선 등의 의제를 집중 점검한다.

국방부에 따르면 이날 회의의 핵심 의제는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는 국민의 군대 재건이다. 국방부는 5·16군사정변과 12·12쿠데타, 5·18광주학살로 이어진 군의 정치 개입 역사와 12·3 비상계엄 사태를 함께 짚으면서, 군이 더는 비상계엄의 도구로 소모되지 않도록 지휘구조와 작전 개념을 재정립하는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안규백 장관은 회의에서 전군 지휘관을 향해 12·3 비상계엄 1년을 되돌아보며 과거와의 단절, 국민 신뢰 회복 메시지를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전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 계정에 올린 ‘12·3 비상계엄 1년 담화’에서 “국민을 지켜야 할 우리 군이 내란에 연루돼 도리어 국민 여러분을 위험에 빠뜨리고, 무고한 국군 장병 대다수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긴 점, 헌법기관인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를 무단 침탈한 중대한 과오를 저지른 점에 대해 우리 군을 대표해 공식적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12·3 내란의 토양은 5·16군사정변, 12·12쿠데타, 5·18광주학살 등 우리 현대사의 상흔 속에서 부족했던 성찰과 적당한 타협에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마침표를 찍지 않고서는 다음 문장을 쓸 수 없듯이 반복된 과오를 직시하지 않고서는 군의 명예 회복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해 군 내부의 철저한 성찰과 제도 개편을 촉구했다.
이날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선 군 구조 개편과 더불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추진 상황도 중점 평가 대상이 된다. 국방부는 2040년을 목표로 한 군 구조 개편 로드맵을 점검하며, 동맹 구조 변화와 신기술 도입 등을 감안한 부대 배치와 지휘체계 재편 방향을 논의할 예정이다. 동시에 간부 처우와 복지 개선 방안도 안건으로 올려 병영 내 인권 보장과 인력 유출 방지 대책을 병행 검토한다.
전작권 전환 문제와 관련해 안 장관은 이재명 정부 임기 중 전작권 전환을 실현하겠다는 방향을 분명히 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우리 군의 핵심 작전 수행 역량을 강화해 한미가 합의한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 원칙을 충족하겠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할 전망이다.
앞서 안규백 장관과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14일 제57차 한미안보협의회 공동성명을 통해 전작권 전환 원칙을 재확인했다. 두 장관은 성명에서 한미가 조건 충족에 관한 공동평가를 진행해 왔다며 “올해 공동평가 간 준비태세 및 능력에서 의미 있는 진전을 달성했다”고 평가했다. 이는 한국군의 지휘 능력과 정보·정찰, 미사일 방어 등 핵심 전력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진전이 이뤄졌다는 인식을 공유한 것으로 해석된다.
양국 국방장관은 또 “전작권 전환에 필요한 조건 충족 가속화에 필수적인 능력 획득을 위한 로드맵을 발전시키며, 2026년에 미래연합군사령부 본부의 완전운용능력 검증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이 일정에 맞춰 한미 연합훈련과 전력증강 사업을 조정하고, 한국군 주도의 연합 지휘체계를 구체화하는 작업을 병행할 계획이다.
전작권 전환은 최초작전운용능력, 완전운용능력, 완전임무수행능력 등 세 단계로 평가와 검증을 거친다. 현재 한국군은 완전운용능력 평가를 마친 상태에서 세부 검증 절차를 진행 중이다. 국방부에 따르면 완전운용능력의 마지막 절차는 미래한미연합군사령부에 대한 검증이며, 이를 내년 중 마무리하면 마지막 단계인 완전임무수행능력 평가로 넘어가게 된다.
검증이 계획대로 진행돼 완전임무수행능력이 확보될 경우,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임기 내 전작권 전환 목표도 가시권에 들어오게 된다. 다만 야권과 일부 보수 진영에서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고도화되는 상황에서 지휘구조 변화가 동맹 억제력에 미치는 영향을 신중히 따져야 한다는 우려도 제기돼 왔다. 군 내부에서도 준비태세와 장비 획득 일정, 연합지휘 경험 축적을 둘러싼 실무적 고민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이날 회의에서는 간부 복지와 처우 개선 과제도 함께 논의된다. 국방부는 전역 후 진로 지원, 주거·교육 여건 보장, 장병 인권 보호 체계 강화를 통해 군 조직의 전문성을 유지하면서도 국민 눈높이에 맞는 병영 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구상이다.
국방부와 군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도출된 논의 결과를 토대로 전작권 전환 이행계획과 2040년 군 구조 개편, 병영 혁신 과제를 구체화해 나갈 방침이다. 정부는 한미와의 협의를 바탕으로 전작권 전환 로드맵을 계속 점검해 나가겠다고 밝힌 만큼, 국회 역시 향후 국정감사와 예산 심의 과정에서 관련 현안을 놓고 치열한 공방을 이어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