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혈관질환 예측 AI 공개…삼성서울병원, 대화형 건강관리로 일상 공략
뇌혈관 건강을 인공지능이 상시 모니터링하는 시대가 가까워지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을 중심으로 한 국내 연구진이 스마트폰과 같은 개인 기기에서 인공지능 모델과 대화만으로 뇌졸중 위험 신호를 조기에 감지해 대응할 수 있는 기반 기술을 선보였다. 단순 상담형 챗봇을 넘어 실제 생체 신호를 읽고, 의료 이미징과 진료기록까지 통합 분석하는 구조를 구현하면서 디지털 기반 뇌혈관질환 예방 시장의 분수령이 될지 관심이 쏠린다. 업계에서는 환자 일상으로 스며드는 의료 인공지능 경쟁의 본격적인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연구는 삼성서울병원이 주관하고 고려대학교안산병원, 서울아산병원, 한양대학교구리병원, 인천대학교가 참여한 다기관 컨소시엄 형태로 진행됐다. 한국연구재단의 지원 아래 약 3년에 걸쳐 공동 연구를 수행했으며, 결과는 지난 14일 열린 인 실리코에서 환자로 심포지엄에서 공개됐다. 연구책임자인 서우근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24일 이 같은 내용을 전하며 미래형 건강관리 서비스로 확장 가능한 뇌혈관질환 예측 AI 기반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핵심은 피지컬 AI라 불리는 생체 신호 분석 인공지능과 LLM으로 불리는 거대언어모델을 결합한 구조다. 피지컬 AI는 맥박, 혈류, 발음 변화 등 실제 신체에서 측정되는 신호를 정량 분석하는 기술이며, LLM은 자연어 대화와 추론에 특화된 모델이다. 연구팀은 이 두 축을 하나의 서비스 아키텍처로 묶어 사용자가 스마트폰 등 스마트 기기만으로 고도의 대화형 상담과 건강 상태 점검을 받을 수 있는 형태를 설계했다.
특히 별도의 대형 의료 장비 없이도 맥박 측정과 발음 이상 감지 같은 기능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한 점이 눈에 띈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앱에 접속해 일정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면, 시스템은 음성 패턴과 말의 명료도, 호흡 리듬 등 언어와 발성 관련 데이터를 추출해 뇌졸중 전조 증상과 연관된 이상 신호를 탐지하는 식이다. 동시에 카메라·광센서를 활용한 광혈류 기반 측정으로 말초 혈류 변화를 파악해 심뇌혈관 건강 위험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구조로 설계됐다.
연구팀은 센서 레벨에서의 혁신뿐 아니라 데이터 융합에도 공을 들였다. 광혈류 기반 생체 신호, 병원 전자의무기록, 뇌 자기공명영상 등 서로 다른 형식의 의료 데이터를 통합 분석하는 멀티모달 뇌혈관 질환 예측 모델을 구축했다. 멀티모달 모델은 한 가지 데이터만 보는 기존 알고리즘보다 환자 상태를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 예측 정밀도를 높이는 데 유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모델은 실제 병원 환경에서 확보된 다양한 임상·생체신호 데이터를 결합해 설계돼 향후 의료기기 소프트웨어로의 확장 가능성도 염두에 둔 구조로 평가된다.
연구팀이 특히 집중한 부분은 LLM의 결정적 한계로 지적돼 온 환각현상 제어다. 환각현상은 LLM이 학습 데이터에 없는 내용을 사실처럼 만들어내는 오류를 의미하며, 의료 현장에서는 치명적 위험으로 꼽힌다. 서 교수팀은 건강 데이터를 다루는 전용 데이터 관리 모델을 기반 기술에 포함하고, 도메인 특화 지식과 검증 절차를 강화해 해당 현상을 억제하는 전략을 택했다.
연구진 설명에 따르면 300여 회에 달하는 반복 평가 과정에서 모델의 환각현상이 관찰되지 않았다고 보고됐다. 완전한 의미의 절대 제로화를 입증하려면 추가 검증이 필요하지만, 의료 LLM에서 이 수준의 일관된 억제 결과가 나온 것은 상용화 가능성을 높이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향후 식약처나 해외 규제기관이 인공지능 기반 의료기기 심사 시 환각 제어 성능을 핵심 기준으로 삼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번 기술은 개발 초기 단계부터 환자와 일반 소비자 그룹을 핵심 파트너로 참여시킨 점도 차별점으로 꼽힌다. 연구팀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사용자들이 실제로 원하는 기능과 불편을 설문과 인터뷰로 수집해 시스템 구조와 인터페이스에 반영했다. 예를 들어 고령층 사용자가 복잡한 메뉴를 어려워한다는 의견, 반복 측정에 피로를 느낀다는 피드백을 반영해 측정 횟수와 안내 문구를 조정하는 방식이다. 검증 파이프라인 역시 환자 집단을 중심에 두고 반복 테스트를 진행해 맞춤형 서비스 구현에 초점을 맞췄다.
다기관 협력 구조도 기술 경쟁력의 기반이 됐다는 평가다. 서 교수는 고려대학교안산병원과 한양대학교구리병원이 제공한 임상·생체신호 데이터가 실제 환자 상황을 반영한 알고리즘 학습에 큰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아산병원의 ELSI팀은 윤리적·법적·사회적 이슈에 대한 자문을 제공해 데이터 활용 과정에서 개인정보 보호와 연구윤리를 충족하도록 지원했다. 인천대학교는 AI 모델링을 담당하며 예측 모델의 수학적 구조와 학습 전략을 고도화해 적용성과 정밀도를 끌어올렸다.
이 같은 협업은 글로벌 의료 AI 시장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병원과 대학, IT 기업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심뇌혈관 질환, 종양, 희귀질환 등 분야별 예측 모델을 공동 개발하는 추세가 강화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이번 연구처럼 대형 상급종합병원과 대학, 공공 연구비가 결합한 형태가 본격 등장하면서 글로벌 경쟁에 대응할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는 평가도 제기된다.
규제와 제도 측면에서 보면, 멀티모달 뇌혈관 예측 AI와 같이 진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소프트웨어는 국내에서 의료기기 소프트웨어로 분류될 여지가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SaMD라 불리는 의료기기 소프트웨어 심사 가이드라인을 확대 적용하고 있어, 실제 환자 진료에 투입되기 위해서는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 임상 평가, 품질관리 체계 구축 등이 필수적이다. 연구팀이 ELSI 자문을 초기부터 연계한 이유도 향후 식약처 심사와 해외 인증 획득을 고려한 사전 정지 작업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연구 성과와 관련된 기반 기술은 이미 국내 특허 1건 등록을 마친 상태다. 보호 범위에는 생체신호 기반 뇌혈관질환 위험 평가 알고리즘 구조와 LLM을 이용한 대화형 피드백 메커니즘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팀은 특허를 바탕으로 추가적인 응용 기술 확보와 임상 현장 적용을 위한 후속 연구를 이어갈 계획이다. 상용 앱 형태의 시범 서비스나 특정 뇌졸중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한 파일럿 프로그램 추진 가능성도 업계에서 거론된다.
서우근 교수는 최신 인공지능 기술을 실제 환자 일상에 연결하는 것이 연구의 핵심 철학이라고 강조했다. 단순 기술 시연을 넘어, 사용자가 병원 밖에서 자신의 뇌혈관 상태를 상시 점검하고 이상 징후를 조기에 인지해 전문 진료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산업계와 의료계는 이번 기술이 의료 현장의 안전성 요구와 규제 기준을 충족하며 실제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