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재판부·법왜곡죄 위헌 논란 크다"…전국법관대표회의, 국회 사법개혁 입법에 제동
사법개혁 입법을 둘러싸고 여당이 추진하는 내란전담특별재판부 설치와 법왜곡죄 신설을 놓고 사법부 내부가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재판 독립 침해와 위헌성 논란을 이유로 입법 속도 조절을 요구하면서, 국회 논의가 새로운 갈등 국면에 들어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8일 오전 10시부터 약 6시간 동안 정기회의를 연 뒤, 내란전담특별재판부 설치 법안과 법왜곡죄 신설 법안에 대해 헌법 위반 논란과 재판 독립 침해 우려가 크다고 공식 입장을 냈다. 법관대표회의는 각급 법원에서 선출된 대표 판사들이 사법행정과 법관 독립 문제를 논의하는 협의체다.

이날 회의에서는 내란재판부 설치 법안과 법왜곡죄 도입과 관련한 입장 표명 안건이 현장에서 발의됐다. 전체 구성원 126명 가운데 재석 79명이 표결에 참여했고, 이 중 50명이 찬성해 안건이 가결됐다. 사실상 사법부 현장 판사 다수가 국회 입법 방향에 우려를 공식화한 셈이다.
법관대표들은 결의문에서 "비상계엄과 관련된 재판의 중요성과 이에 대한 국민의 지대한 관심과 우려에 대해 엄중히 인식한다"고 전제했다. 그러나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법안들에 대해서는 "위헌성에 대한 논란과 함께 재판의 독립성을 침해할 우려가 크므로 이에 대한 신중한 논의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회의 과정에서는 쟁점을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이 제기됐다. 한 측에서는 "논의의 시급성에 비춰 위헌성에 대한 의견 표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다른 한편에서는 "비상계엄 관련 재판의 중요성과 국민의 우려에 대한 의견 표명도 함께 필요하다"는 견해가 제시됐다. 또 일부에서는 "사법부 불신에서 법안 논의가 비롯된 점을 고려할 때 법안의 위헌성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국민들을 설득할 수 없다"며 입장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법관대표회의는 여당을 중심으로 발의된 법원행정처 폐지 법안, 법관 징계 강화 법안, 내란재판부 설치 법안, 법왜곡죄 신설 법안 등에 대해 법원행정처에 설명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법원행정처 심의관들이 해당 법안들의 국회 진행 경과와 구체적 내용, 그리고 법원행정처가 내부적으로 검토한 쟁점과 입장을 상세히 설명했다.
법관대표들은 사법제도 개선 전반에 대해서도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회의에서는 재판제도 분과위원회가 상고심 제도 개선과 관련해 발의한 안건, 법관인사제도 분과위원회가 법관 인사·평가 제도 변경과 관련해 발의한 안건이 모두 통과됐다.
법관대표회의는 "사법제도 개선은 국민의 권리 구제를 증진하고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이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요구, 그리고 재판을 담당하는 법관들의 의견이 논의에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고 밝혔다. 제도 변화가 정치권 주도만으로 밀어붙여져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구체적으로 상고심 제도 개선과 관련해서는 충분한 공감대 형성과 실증적 논의를 전제로 삼았다. 법관대표들은 상고심 개편이 "사실심을 약화하지 않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하고, 사실심 강화를 위한 방안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사건 폭증을 이유로 한 상고심 축소 논의가 1·2심 재판의 충실도를 떨어뜨려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대법관 인선 문제에 대해선 민주적 정당성 제고 필요성이 강조됐다. 법관대표회의는 대법관 구성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대법관 후보 추천위원회 구성의 다양성과 절차의 투명성을 높이고, 검증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대법관 제청과 임명 과정에 더 다양한 사회적 목소리와 견제가 반영돼야 한다는 요구다.
법관 인사 및 평가 제도 변경 안건에 대해서는 더욱 강한 우려가 드러났다. 법관대표들은 "법관의 인사 및 평가 제도 변경은 재판의 독립과 법관 신분 보장, 나아가 국민의 사법 신뢰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제했다. 이어 "단기적 논의나 사회 여론에 따라 성급하게 추진돼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또한 법관대표회의는 "충분한 연구와 폭넓은 논의를 거쳐 법관들의 의견뿐 아니라 국민들의 기대와 우려도 균형 있게 수렴해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는 법관 성과평가 강화, 징계 확대 논의가 여론 동향에 휘둘려 재판 독립을 해치지 않도록 제동을 건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회의는 온오프라인 병행 방식으로 열렸으며, 법관대표 126명 가운데 과반을 넘는 84명이 참석해 개의 요건을 충족했다. 법관대표회의는 그간 주요 사법행정 현안과 재판제도 논의에서 의견을 제시해 왔으나, 특정 입법에 대해 위헌성 논란을 전면에 내세워 공개적으로 우려를 밝힌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도 뒤따른다.
이보다 앞서 5일에는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겸 대법관 주관으로 전국법원장회의 정기회의가 열렸다. 당시 법원장급 고위법관들은 내란전담특별재판부 설치와 법왜곡죄 신설 등 여당 중심 사법개혁 입법 패키지에 대해 "위헌성이 크다"며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상층부와 일선 법관 대표기구가 연이어 같은 취지의 메시지를 낸 셈이다.
국회에서는 여당이 내란전담특별재판부를 통해 비상계엄 관련 사건을 집중 심리하고, 법왜곡죄를 도입해 법관의 고의적 법 해석 왜곡을 처벌하겠다는 입장이다. 여당은 사법부에 대한 국민 불신과 정치적 사건에 대한 편향 판결 논란을 근거로 제도 개편 필요성을 주장해 왔다. 반면 야당은 재판에 대한 입법부의 과도한 개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사법부 내부에서는 이번 법안들이 특정 사건이나 정권을 겨냥한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특히 내란전담특별재판부 설치가 개별 사건 배당과 재판부 구성의 중립성을 흔들 수 있고, 법왜곡죄가 법관의 양심에 따른 법 해석을 위축시켜 사법부 독립을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이 법관들 사이에서 이어지고 있다.
대법원은 9일부터 사법제도 개편 공청회를 열어 사법개혁 의제를 둘러싼 각계 의견을 듣는다. 국회 입법 논의와 별개로, 사법부가 자체 논의 구조를 통해 제도 개선 방향을 모색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정치권은 전국법관대표회의와 전국법원장회의의 연이은 우려 표명을 두고 공방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 여당은 국민 여론을 근거로 입법 추진 명분을 강화할 수 있고, 야당은 사법부 독립 침해를 이유로 제동 논리를 부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는 향후 회기에서 내란전담특별재판부와 법왜곡죄 도입을 둘러싼 위헌성 논란, 사법 불신 해소 방안을 놓고 치열한 논의에 나설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