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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복지 앞세운 영장류 관리가이드…식약처, 윤리기준 강화로 글로벌 대응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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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류 실험의 윤리성과 과학성을 동시에 끌어올리기 위한 표준 지침이 마련돼 바이오 산업 전반의 연구 패러다임 변화가 예상된다. 사람과 유전적·생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동물인 영장류는 신약 후보 물질의 안전성과 효과를 검증하는 비임상 단계에서 핵심 역할을 맡아 왔다. 동물복지에 대한 국제적 요구가 높아지는 가운데 사육 환경과 감염관리, 연구 절차를 구체적으로 규정한 이번 가이드라인이 글로벌 규범과 보조를 맞추는 분기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제약업계는 동물실험의 윤리 논란을 줄이는 동시에 데이터 신뢰도를 높여 해외 승인 심사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지 주목하는 분위기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은 2일 비임상연구용 영장류의 사육관리 기준을 표준화하기 위한 비임상연구용 영장류 사육관리 가이드라인을 발간해 관련 기관과 산업계에 배포했다고 밝혔다. 대상은 신약 개발 등 비임상 단계에서 사용되는 원숭이류를 포함한 영장류 전반으로, 연구시설 설계부터 일상 사육, 실험 수행, 연구자 안전 관리까지 전 과정에 걸친 권장 기준이 담겼다. 식약처는 대통령 주재 바이오 혁신 토론회에서 제기된 영장류 관리 체계 정비 요구를 정책으로 구체화한 첫 결과물이라는 점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가이드라인의 핵심 축은 영장류의 생태적 습성을 존중하는 동물복지 중심 사육관리다. 식약처는 권장 사육환경으로 온도 24도에서 27도, 습도 40퍼센트에서 70퍼센트, 소음 60데시벨 이하 유지 기준을 제시했다. 온도와 습도 범위는 영장류의 체온 조절과 호흡기 질환 예방, 스트레스 최소화를 고려한 값으로, 지나친 변동이 반복되면 면역력 저하와 행동 이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동물행동학 연구 결과가 반영됐다. 소음 기준 역시 사람과 마찬가지로 만성적인 소음 노출이 심혈관계와 신경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사육실과 실험실의 설비 배치, 경보음 관리, 출입 동선 설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로 제시됐다.

 

시설 내 공기 흐름에 대한 기준도 새로 담겼다. 영장류는 호흡기 감염에 취약해 공기 중 병원체 확산을 억제하는 공조 설계가 필수인데, 가이드라인은 실험실과 사육실의 구획에 따라 음압과 양압을 적절히 설정해 교차오염을 막도록 권고했다. 음압은 실내 공기를 외부로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구조를 뜻하며, 사람에게 위험한 병원체를 다루는 구역에 주로 적용된다. 영장류 사육시설에 이 원칙을 적용하면 연구자와 주변 동물실로의 감염 전파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식약처는 공조 설비 유지보수, 필터 교체주기, 공기 흐름 검증 방법 등도 함께 제시해 시설 운영자가 참고할 수 있도록 했다.

 

연구자와 사육관리 인력의 안전을 위한 감염관리 기준도 주요 내용이다. 영장류는 결핵, 헤르페스바이러스 등 사람과 공유하는 인수공통감염병을 보유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보호구 착용, 정기 건강검진, 물리적 접촉 최소화 지침이 포함됐다. 특히 동물 관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물림, 긁힘, 체액 노출에 대비한 비상 대응 프로토콜과 교육 체계가 강조됐다. 이는 영장류 유래 병원체가 연구시설 밖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는 동시에, 인력 확보의 전제조건인 작업 환경 안전성을 제고하는 조치로 해석된다.

 

윤리적 연구 수행 기준은 데이터 신뢰도와 직결되는 대목이다. 가이드라인은 동물복지 원칙인 3R, 즉 동물 사용 숫자를 줄이고, 고통을 줄이며, 가능한 경우 대체시험법으로 바꾸는 방향을 기본 원칙으로 제시했다. 영장류는 다른 실험동물보다 고통 인지 수준이 높고 사회적 행동이 발달해 있어, 스트레스와 불안은 생리 지표 변화로 이어져 실험 결과에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 식약처는 사육 밀도, 사회적 교류를 위한 군집 사육, 놀이 및 환경 풍부화 제공 같은 항목을 구체화해 과도한 스트레스 상황을 예방하도록 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기준을 충족한 데이터를 활용할 경우, 해외 규제당국이 요구하는 윤리 검토와 품질 검증 단계에서 설득력이 커질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바이오 산업 측면에서는 국내 영장류 실험의 국제 정합성 제고 효과가 주목된다. 최근 글로벌 제약사는 실험동물 복지, 데이터 투명성, 시설 인증 여부 등을 신약 공동연구와 위탁시험 선정의 전제 조건으로 삼는 추세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은 영장류 실험시설 부족과 관리 기준 미비로 해외 위탁시험에 의존해 온 만큼, 이번 가이드라인이 장기적으로 국내 인프라 확충과 역외 의존도 감소로 이어질 여지도 있다. 특히 해외 수주를 노리는 독립 비임상시험기관은 가이드라인을 기반으로 국제 인증 취득을 추진할 수 있어, 시험 수출 산업 성장의 발판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세계적으로는 동물실험 축소와 대체기술 확대라는 큰 흐름 속에서, 불가피한 영장류 실험의 윤리 기준을 강화하는 움직임이 병행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영장류 수입과 사용에 대한 규제가 차츰 엄격해지고 있으며, 영장류 자체 공급망 리스크가 부각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사육관리와 감염관리, 윤리 기준을 국가 차원에서 제시하는 것은 국내 연구기관이 글로벌 규제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최소 조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실제 시설 개선과 인력 교육에 필요한 비용과 시간이 만만치 않아, 중소 연구기관이 기준을 얼마나 빠르게 따라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과제가 남아 있다.

 

식약처는 가이드라인 발간 이후 현장 설명회와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연구기관과 기업의 적용 부담을 줄여 나간다는 계획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이번 가이드라인을 통해 국내 영장류 실험의 윤리성과 과학적 신뢰도를 한 단계 높이고, 국내 제약 및 바이오 기업의 경쟁력 강화와 동물복지 중심 연구 환경 조성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산업계는 가이드라인이 권고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향후 법제화와 인증 기준으로 연계될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으며, 새로운 규범이 실제 시장 관행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지켜보는 분위기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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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의약품안전처#영장류사육관리#비임상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