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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을 걷고, 빵 냄새를 맡는다”…가을 부산에서 찾은 쉬어가기 좋은 하루

박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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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를 고르는 기준이 달라졌다. 이제는 사진 한 장보다 하루의 호흡이 더 중요하다. 강변을 걷고,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천천히 저녁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도시가 사람들의 마음을 끈다. 가을의 부산은 그런 의미에서, 바다와 강, 미식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동선으로 주목받고 있다.

 

요즘 부산을 찾는 이들 사이에서는 “바다만 보고 돌아오기엔 아쉽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 해운대와 광안리 같은 익숙한 풍경 대신 낙동강을 따라 걷는 산책, 강변에서 시간을 보내고 난 뒤 도심 카페와 레스토랑을 옮겨 다니는 하루 코스가 인기다. SNS에는 삼락강변체육공원의 코스모스와 강변 자전거 사진, 그 뒤를 잇는 빵집 인증샷, 마린시티 야경을 배경으로 한 저녁 식사 모습이 차례대로 올라온다.

해운대 마천루 출처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
해운대 마천루 출처 : 한국관광공사 포토코리아

부산 사하구의 세류소멘나가시앤솥밥은 이런 여정의 시작점이 돼 준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정갈한 테이블과 깔끔하게 정돈된 오픈 키친이다. 면 요리와 솥밥, 즉석에서 튀겨내는 덴푸라까지 한 상에 오르며, 일본 가정식 특유의 담백한 맛이 입안을 천천히 채운다. 갓 지은 솥밥의 김이 올라오는 순간, 식사 자체가 작은 의식처럼 느껴진다. 재료 본연의 풍미를 살린 조리 덕분에 자극적인 양념보다 쌀과 국물, 튀김의 식감에 집중하게 되고, 청결한 매장은 긴 이동 끝에 도착한 여행자에게 안도감을 준다.

 

점심으로 속을 든든히 채웠다면, 낙동강을 따라 펼쳐진 삼락강변체육공원으로 발길이 향한다. 부산 사상구에 자리한 이 공원은 472만 제곱미터에 이르는 넓은 강변 공간으로, 강을 품은 도시의 여유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잔디광장과 야생화단지, 사계절꽃동산이 이어지고, 가을이면 그 사이사이를 코스모스가 수놓는다. 강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는 이들, 인라인스케이트로 바람을 가르는 아이들, 강 너머로 해가 기우는 풍경을 말없이 바라보는 연인들까지, 공원 곳곳에 제각각의 속도로 오후를 보내는 사람들이 흩어져 있다.

 

이런 변화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4.9km 길이로 제방 위에 조성된 조깅 코스는 지역 주민뿐 아니라 여행자들에게도 인기 산책로가 됐다. 강을 따라 걸으며 부는 바람과 흙길의 감촉을 느끼다 보면, 바다와는 또 다른 부산의 얼굴이 드러난다. 인근에 자리한 삼락습지생태원에서는 연꽃단지와 갈대, 물억새 군락지를 따라 천천히 걸을 수 있다.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는 갈대 소리와 물새가 나는 소리가 섞이면서, 도심에서 잠시 떨어져 나온 듯한 기분이 든다.

 

한 트렌드 분석가는 이런 강변 산책 열풍에 대해 “여행의 본질이 ‘어디를 봤는가’에서 ‘어떻게 쉬었는가’로 옮겨가고 있다”고 표현했다. 목적지보다 리듬, 속도, 감정이 중요해졌다는 뜻이다. 부산의 강변은 그런 새로운 여행 태도를 담아내는 무대가 되고 있다.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당기는 건 한 잔의 커피와 달콤한 디저트다. 삼락강변체육공원에서 멀지 않은 부산 사상구 괘법동의 아덴블랑제리 시그니처 사상점은 도심 속에서 숨을 고르기 좋은 공간이다. 매일 직접 생산하는 빵이 오픈 시간부터 차례대로 진열되고, ‘당일 생산, 당일 폐기’를 원칙으로 하는 덕분에 진열대에는 막 구운 빵 특유의 빛과 향이 살아 있다. 스페셜티 원두로 내린 커피는 묵직함보다 균형 잡힌 향을 지향해, 빵과 함께해도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실제로 매장을 찾는 이들은 “갓 구운 빵 냄새만으로도 기분 전환이 된다”고 표현한다. 세련된 인테리어와 널찍한 좌석 배치는 잠시 노트북을 펼치거나, 동행과 조용히 대화를 나누기에 충분한 간격을 유지해 준다. 빵을 한 입 베어 물고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은, 여행과 일상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 트레이에 쌓인 크루아상과 식빵, 달콤한 디저트는 사람들의 각기 다른 오후를 채워 주고, 커뮤니티에는 “부산에 가면 꼭 들러야 할 빵집”이라는 후기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해가 기울 무렵, 부산의 풍경은 다시 바다 쪽으로 향한다. 해운대구 우동 마린시티에 자리한 라비꽁띠뉴는 유러피언 캐쥬얼 레스토랑으로, 도시의 저녁을 한층 느긋하게 만들어 준다. 유럽 빈티지 감성이 묻어나는 공간에서 창밖을 보면, 해운대 바다와 마천루가 한눈에 들어온다. 낮에는 창가 자리에 앉아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브런치를 즐기기에 좋고, 접시에 담긴 유럽 정통 스타일의 요리는 여행지에서 만나는 작은 미식 여행처럼 느껴진다.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면 분위기는 한층 깊어진다. 앤티크한 인테리어와 올드 재즈 선율이 어우러지며, 와인 한 잔이나 따뜻한 커피를 천천히 음미하기 좋은 시간이 열린다. 여행자들은 “해운대의 밤을 한결 차분하게 바라볼 수 있는 곳”이라고 고백한다. 특별한 기념일을 맞은 연인,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혼자 조용히 책을 펼친 사람까지, 각자의 사연이 테이블 위에 놓인 접시와 잔 사이를 오간다. 전문가들은 이런 공간에 대해 “미식 경험의 핵심은 맛뿐 아니라, 그 맛을 둘러싼 시간과 풍경”이라고 이야기한다.

 

댓글 반응도 흥미롭다. “부산에서 하루만 있다면, 강변 산책 + 빵집 + 마린시티 저녁 코스로 보내고 싶다”, “예전엔 해수욕장 중심으로 움직였다면, 이젠 강과 빵집, 레스토랑을 잇는 동선이 더 끌린다”는 말들이 이어진다. 누군가는 가족과 함께 코스모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또 다른 누군가는 혼자서 조깅 코스를 한 바퀴 돌고 난 뒤 카페에 들러 노트북을 연다. 그만큼 가을의 부산은 ‘같이’와 ‘혼자’ 사이의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흐름을 “도시형 슬로우 트립”이라고 부른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유명 관광지를 빼곡히 채우지 않아도, 자신의 호흡에 맞춰 걷고 먹고 머무는 여행 방식이다. 강변 공원과 도심 카페, 바다를 바라보는 레스토랑이 한 도시 안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될 때, 사람들은 비로소 “한 도시를 제대로 느꼈다”고 말하게 된다.

 

가을 부산의 하루는 그렇게 흘러간다. 점심에는 솥밥과 면 요리로 몸을 채우고, 오후에는 낙동강 둔치를 따라 걷다가, 향긋한 빵과 커피로 잠시 숨을 고른다. 그리고 해가 진 뒤에는 마린시티의 빛을 바라보며 천천히 저녁을 마무리한다. 작고 사소한 선택이지만, 우리 삶의 방향은 그 안에서 조금씩 바뀌고 있다. 강과 바다, 빵과 커피, 한 그릇의 음식이 이어 붙인 부산의 가을은, 지금 이 변화를 누구나 겪고 있는 나의 이야기로 만들어 주고 있다.

박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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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삼락강변체육공원#라비꽁띠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