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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구 GLP-1·초장기 주사제 부상…글로벌 제약, 투여 혁신 경쟁 가속

윤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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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구형 비만치료제와 연 2회 투여 초장기 지속형 주사제가 동시에 부상하며 제약바이오 산업의 ‘약물 투여 경로’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기존에는 고가 생물학적 주사제가 표준 치료를 주도했다면, 2026년 전후로는 먹는 GLP-1 비만약과 초장기 주사제가 시장 접근성을 바꾸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이 흐름을 환자 순응도와 의료 시스템 부담을 동시에 바꾸는 투약 패러다임 전환의 시작으로 해석한다.  

 

헬스케어 시장조사기관 아이큐비아가 25일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약물 투여 경로의 혁신은 주사제를 경구제로 바꾸는 방향과, 기존 단기 주사제를 3개월에서 6개월 단위로 맞는 초장기 지속형 주사제로 전환하는 두 축에서 진행 중이다. 특히 경구 GLP-1 비만치료제와 연 2회 투여 중증 천식 치료제, HIV 예방 주사제가 상징적인 선도 사례로 꼽힌다.  

경구제 혁신의 중심에는 노보노디스크와 일라이릴리가 있다. 노보노디스크는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에서 먹는 GLP-1 비만치료제 위고비 정제의 승인을 받으며 경구용 GLP-1 시장을 공식 개척했다. 이 약은 비만 또는 과체중 성인 대상 임상에서 평균 16.6퍼센트 체중 감소를 보여 기존 주사제 수준에 근접한 효능을 확인했다. 회사는 내년 1월 초 미국 시장에 위고비 정제를 출시할 계획으로, 주 1회 주사 위고비의 경구 버전이 되는 셈이다.  

 

경쟁사 일라이릴리는 경구 GLP-1 후보물질 오포글리프론의 상업화를 준비하며 뒤를 바짝 쫓고 있다. FDA에 신약 허가를 제출한 상태이며, 3상에서 최고 용량 36밀리그램을 72주간 복용한 환자의 평균 체중 감소율이 11.2퍼센트로 보고됐다. 체중 감소 폭은 위고비 정제 대비 낮지만, 복용 편의성·부작용 양상·보험 적용 조건에 따라 실제 시장 선호도가 갈릴 수 있는 구도다. 업계는 기존 주사제에서 이미 형성된 양강 경쟁이 경구 비만약 시장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고 본다.  

 

아이큐비아는 두 경구 GLP-1 제품이 공히 미국에서 월 149달러 수준의 시작 용량 가격대를 제시할 계획이라며, 기존 주 1회 주사제 대비 진입 장벽을 낮추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보고서는 위고비 특허 만료 이후 저가 제네릭과 경구제가 결합하면 비만치료제 시장 규모가 2030년까지 1000억에서 2000억 달러로 확대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공급망 확충과 약가 정책이 이 전망의 주요 변수로 지목된다.  

 

경구제 혁신은 비만 영역에 그치지 않고 면역질환과 심혈관 질환으로 확산되고 있다. 존슨앤드존슨이 개발 중인 이코트로킨라는 건선 치료에서 생물학적 제제 수준의 효능을 목표로 하는 최초의 경구용 인터루킨 23 억제제로 평가된다. 인터루킨 23을 표적하는 기존 치료제는 대부분 주사 생물학적 제제였으나, 같은 기전을 입으로 복용할 수 있는 형태로 구현하면서 복약 순응도를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심혈관 분야에서는 MSD의 경구 난치성 고콜레스테롤혈증 치료제 MK0616이 3상 임상에서 긍정적 결과를 내며 주목받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MK0616은 혈중 LDL 콜레스테롤을 기존 주사제 PCSK9 항체와 유사한 수준으로 낮추는 효능을 보였다. 고지혈증 치료에서 주사제 대신 경구제로 같은 기전의 약을 선택할 수 있게 되면, 1차 의료기관 중심의 치료 패턴과 환자 치료 여정이 대폭 단순화될 수 있다. 아이큐비아는 이러한 경구제의 확산이 단순한 편의성 개선을 넘어, 적응증 확장과 장기 유지요법 시장 확대를 견인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초장기 지속형 주사제는 투약 주기를 3개월에서 6개월까지 늘리며 치료 행태를 재편하고 있다. 길리어드사이언스는 올해 투약 간격을 6개월로 확장한 HIV 치료제 레나카파비르 주사제를 미국에서 승인받았다. 이 약은 연 2회 투여만으로 HIV 감염 예방 효과를 제공해, 기존 월 단위 혹은 격월 주사 및 매일 복용하는 경구 치료제보다 환자 순응도와 예방 프로그램 운영 효율을 높이는 수단으로 평가된다.  

 

중증 천식 분야에서는 GSK가 개발한 연 2회 투여 초장기 지속형 주사제 엑스덴서가 이달 FDA 승인을 획득했다. 성분명 데페모키맙을 사용하는 이 약은 기존 2주에서 4주마다 맞아야 했던 생물학적 제제와 달리 6개월마다 한 번 투여하는 모델을 제시했다. 중증 천식 환자는 장기간 꾸준한 치료가 필요한데, 투약 주기 단축이 곧 외래 방문 횟수 감소로 이어져 의료 자원 소모를 줄이고, 지방 중소 의료기관에서도 고난도 생물학적 치료 제공이 수월해질 수 있다.  

 

아이큐비아는 면역학, 비만, 심혈관 대사 질환 등 만성 질환 영역에서 분기별 혹은 6개월 주기 초장기 주사제가 활발히 개발 중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이번 기술은 기존 일일 경구제와 주간 주사제 중심의 치료 패턴이 갖고 있던 환자 피로도, 복약 이탈, 의료기관 방문 부담의 한계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보고서는 이 변화가 환자와 의료진의 기대치를 근본적으로 재설정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앞으로 환자들이 더 이상 일일 복용이나 주간 주사를 ‘표준’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왜 3개월마다 투여하지 못하는지, 왜 반드시 주사여야 하는지 질문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시에 전통적으로 높은 선호도를 보인 경구제가 초장기 주사제에 일부 자리를 내줄 가능성도 언급했다. 연 2회 수준의 주사라면 경구제보다 실제 복약 순응도가 더 높아질 수 있고, 의료진이 치료 계획을 보다 엄격하게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투여 경로 혁신이 약물 설계 기술, 제형 공학, 약물 전달 시스템 등 기초 기술 진보와 맞물려 산업 전반의 구조를 바꿀 수 있다고 본다. 다만 고가 신약의 보험 등재, 장기 안전성 데이터 축적, 장기간 체내에 머무르는 약물에 대한 규제 기준 등 해소해야 할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산업계는 새롭게 등장한 경구제와 초장기 주사제가 실제 시장과 의료 현장에 어느 속도로 안착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윤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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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큐비아#노보노디스크#길리어드사이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