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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연료전지 기술유출 파장”…현대차, 국가핵심기술 보안강화→산업안보 분수령

서윤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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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연료전지 제조 기술을 중국으로 유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 현대자동차 연구원이 항소심에서도 중형을 선고받으며, 미래 모빌리티의 핵심 기반인 수소연료전지 기술 보호가 다시 한 번 산업 안보의 최전선으로 부각됐다. 수원지법 형사항소3-3부는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하는 수소연료전지 스택 제조 기술과 전극막접합체 정보 등을 무단 반출한 혐의를 인정해 징역 5년과 3억원 추징을 명한 1심 판단을 그대로 유지했다. 재판부는 동종 업체 직원과 함께 기소된 또 다른 전 현대차 연구원에게 징역 4년, 관련 업계 종사자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며 기술 유출 행위에 대한 사법부의 엄정한 태도를 분명히 했다.  

 

이번 사건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피고인들이 중국 자동차 업체로 이직한 후, 현대자동차에서 축적된 수소연료전지 시스템 스택 제조 기술을 중국 측과 공유하고, 스택 핵심 부품인 전극막접합체 정보를 부정 사용한 혐의로 수사가 시작된 사건이다. 수소연료전지 스택은 수소와 산소의 전기화학적 반응을 통해 전기를 생산하는 장치로, 수소연료전지차의 성능과 안전성, 내구성을 좌우하는 핵심 구성품으로 평가된다. 특히 전극막접합체는 촉매, 전해질막, 전극이 정교하게 결합된 부품으로 효율과 수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 소재 기업들이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투입하는 분야다. 법원은 피고인들의 범행이 이러한 고부가가치 기술을 중국 내 경쟁업체와 합작 법인 설립에 활용하려 했다는 점에서, 단순한 이직을 넘어 산업경쟁력 기반을 훼손하는 행위로 보아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수소연료전지 기술유출 파장 현대차, 국가핵심기술 보안강화
수소연료전지 기술유출 파장 현대차, 국가핵심기술 보안강화

현대자동차는 수소연료전지 스택 시스템 제조 기술을 국가 핵심기술이자 자사 영업비밀로 분류하고, 전담 보안팀 운영과 퇴직자 대상 동종업계 이직 제한 계약을 통해 보호 조치를 취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들은 중국에서 투자자를 물색해 전극막접합체 제조·판매 합작 법인을 설립하고, 현지 수소연료전지 개발업체와 170억원 규모의 투자 합작 업무협약까지 체결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과정에서 수소연료전지 스택 파일럿 양산설비 구축에 필요한 세부 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현대차 협력업체에 접근해 설비 관련 기술 자료를 추가로 취득한 정황도 드러났다.  

 

협력업체 대표 등 4명에 대한 형사 책임도 가볍지 않게 판정됐다. 중국에 수소연료전지 스택 양산설비를 공급하기 위해 부품 세부 사양과 도면을 누설한 혐의로 기소된 이들은 1심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에서 징역 4년에 이르는 형을 선고받았고, 항소심에서는 실형 선고자 3명에 대해 징역 2년 2월에서 3년 8월로 다소 감형되었으나, 유죄 판단의 방향은 유지됐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피고인들의 범행 동기와 수단, 범행 후 정황까지 종합할 때 원심 형량이 재량의 합리적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강조하며, 국가핵심기술 유출에 대한 처벌 기준을 분명하게 제시했다.  

 

수소연료전지와 같은 미래차 핵심 기술은 한 국가의 중장기 산업전략과 직결되는 자산으로, 유출이 현실화될 경우 단기적인 매출 손실을 넘어 연구개발 경쟁력, 글로벌 특허 포트폴리오, 공급망 주도권 전반에 파급 효과를 미친다. 수소전기차 분야를 국가 전략 산업으로 육성해온 한국으로서는, 세계 시장에서 앞선 기술력을 무형 자산으로 축적해온 현대자동차의 기술 기반이 해외 경쟁 세력에 이전되는 상황을 좌시할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수소연료전지 스택 제조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해 관리해 왔으며, 국정원과 검찰은 2019년 3월 이첩된 자료를 토대로 공조 수사를 이어가면서 이번 재판에 이르렀다.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완성차와 부품업체 전반에서 보안 거버넌스 고도화와 인력 관리 체계 재점검이 가속화될 것으로 내다본다. 인공지능 설계, 전동화 플랫폼, 수소 인프라와 같이 복수의 기업과 기관이 얽혀 있는 차세대 기술일수록, 물리적 보안뿐 아니라 연구 데이터 접근권한 관리, 해외 파트너십 검증, 퇴직자 사후 관리 등 입체적인 보호 체계가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한 자동차산업 정책 전문가는 국가핵심기술 유출 사건에 대해 수사기관이 초기에 개입하고 사법부가 실형을 선고한 점은 기술주권을 중시하는 글로벌 흐름과 궤를 같이 한다고 평가하며, 향후 산업기술 보호 제도와 기업 내부 규정이 보다 정교한 균형점을 찾아갈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수소연료전지 상용화 경쟁에서 선두권을 지켜온 한국 자동차 산업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기술 보호와 개방 혁신 간의 경계선을 다시 그려야 하는 도전에 직면했다. 핵심 인력의 이동성이 커지는 글로벌 노동시장 환경 속에서, 연구 인재의 정당한 경력 개발과 국가핵심기술 보호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충족하는 거버넌스 설계가 향후 수소 모빌리티 경쟁력의 지속성을 좌우할 전망이다.

서윤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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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수소연료전지#국가핵심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