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자료 미제출에 신상 털기 공방"…김호철 감사원장 청문회 한때 중단

전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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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제출을 둘러싼 충돌과 이념 공방이 맞물리며 감사원장 인사청문회가 파행을 빚었다. 여야는 김호철 감사원장 후보자의 인사 검증을 두고 신상털기냐 정당한 검증이냐를 놓고 거세게 맞붙었다. 감사원 내 파벌 논란과 유병호 감사위원 책임론까지 함께 부각되며 향후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 과정에서도 치열한 힘겨루기가 예상된다.

 

29일 국회에서 열린 김호철 감사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오전 10시 개의 직후부터 자료 제출 공방으로 얼어붙었다. 청문특위 야당 간사인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은 "최재해 전 원장은 국회에 자료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탄핵이 의결됐다. 누가 하면 로맨스이고 누가 하면 불륜이냐"고 지적하며 자료 미제출 문제를 전면에 올렸다.

같은 당 곽규택 의원은 환전, 외화저축, 외화송금 내역 미제출을 거론하며 "이런 식으로 자료 없이 진행되는 청문회는 불필요하다. 자료가 올 때까지 정회를 요청한다"고 압박했다.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도 주식 취득·처분 내역, 정치후원금 내역 등 추가 자료 요구가 수용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여당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김승원 의원은 "청문회가 야당의 고의적인 발목잡기로 진행이 안 되는 것에 대해 유감"이라고 맞받았다. 그는 "국민의힘에서 신상털기식 저인망식 자료 제출을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자료 요구의 성격을 문제 삼았다.

 

더불어민주당 백승아 의원도 "자료 제출을 핑계로 파행을 유도하는 것이냐"며 "후보자의 직무 수행 능력이나 도덕성과 무관한 과도한 사생활 침해성 자료 요구가 많이 있다"고 말했다. 여야는 개의 후 40분이 지나도록 자료 공방에만 시간을 보냈고, 정점식 청문특위 위원장이 "후보자는 자료 제출에 협조하고, 여야는 청문회를 진행하도록 양해해달라"고 요청한 뒤에야 청문회가 본질 의사 진행으로 넘어갔다.

 

질의가 본격화된 이후에는 김 후보자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장 이력을 놓고 이념·편향 논쟁이 이어졌다. 국민의힘 곽규택 의원은 "민변은 공변으로 이름을 바꿔야 한다. 공직 진출을 위한 변호사 모임으로 변질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가기관, 국회, 사법부, 행정부, 감사원까지 호화로운 요직에 민변 출신이 포진해있다"고 말하며 민변 출신 인사의 권력기관 진출을 문제 삼았다.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도 "민변이 지금 의심받고 있는, 분명한 정치적 편향성이 있다는 것에는 어느 정도 국민적 동의가 있다"고 거들었다. 보수 야권 전반이 민변의 정치적 성향을 부각하며 김 후보자의 중립성에 의문을 제기한 셈이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민변을 인권·민주주의 단체로 규정하며 방어막을 쳤다. 민주당 김남희 의원은 "오세훈 서울시장도 민변 회원이었던 것으로 안다"고 언급하며 특정 성향으로 단정짓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변호사는 사회 정의를 위해 일하는 직역이다 보니 당연히 사회 정의 문제에 관심 있는 변호사들이 민변에 가입한다"고 설명했다.

 

같은 당 송기헌 의원도 "민변은 인권을 옹호하고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는 활동을 하는 법률가 단체"라고 규정했다. 이어 "진보 정부에 민변 출신 변호사들이 많이 들어오는 것은 어떤 지향점을 공유하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야는 민변을 두고 한쪽은 공직 진출 창구, 다른 한쪽은 인권 단체라는 상반된 프레임을 내세우며 신경전을 이어갔다.

 

감사원 내부 파벌과 인사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전 대통령 재임기 임명된 유병호 감사원 전 사무총장(현 감사위원)을 정조준했다. 민주당 김기표 의원은 유 감사위원이 감사원 내 타이거라는 사조직을 이끌었다는 언론 보도를 인용하며 "유병호 체제에 부역해 승진과 핵심 보직 배치를 받은 이른바 타이거 인사 전반에 대해 전수 점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남희 의원도 감사원 운영 쇄신 태스크포스가 지난달 내놓은 발표를 언급하며 "유 전 사무총장 시절 감사원이 국민권익위원을 감사하는 과정에서 위법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사람이 계속 업무를 수행한다면 국민이 감사원을 신뢰하겠느냐"고 반문하며 유 감사위원의 거취 문제를 압박했다.

 

오전 질의를 마친 청문회는 오후에도 자료 제출 문제로 다시 한 차례 멈춰 섰다. 오후 2시 40분께 속개된 청문회에서 여야 의원들은 여전히 자료가 부실하다며 목소리를 높였고, 개의 20분 만인 오후 3시에 정회에 들어갔다. 약 1시간 30분이 지난 뒤 김 후보자 측이 추가 자료를 제출하자 청문회는 재개됐다.

 

속개 이후에도 공방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은 "감사원장은 공직사회 전반의 허위 보고, 자료 은폐, 사실 왜곡을 가장 엄정하게 지적해야 할 위치에 있다"고 전제한 뒤 "그런데 후보자가 허위 또는 불완전한 답변을 제출하고도 향후 감사원이 공직자들에게 요구하는 진실성과 투명성을 신뢰할 수 있겠느냐"고 질타했다. 자료 제출 태도가 향후 감사원의 독립성과 공정성에 대한 국민 신뢰와 직결된다는 문제 제기였다.

 

청문회 과정에서 여당은 정쟁성 검증을 경계하면서도 감사원 내 파벌 청산과 인사 쇄신 필요성을 부각하려는 모습을 보였고, 야당은 민변 이력, 재산·거래 내역, 정치후원금 등까지 파고들며 후보자의 도덕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따져 묻는 데 집중했다. 여야 모두 감사원 개혁을 언급했지만 책임 소재와 방향을 두고는 시각차만 확인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는 30일 오전 10시 전체회의를 열어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다. 감사원장직은 헌법상 대통령이 임명할 때 국회 동의를 받도록 규정돼 있다. 특위에서 보고서가 채택되면 같은 날 오후 예정된 국회 본회의에서 임명 동의 여부를 표결에 부치게 된다.

 

국민의힘은 도덕성·자료 제출 문제를 고리로 압박 수위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고, 더불어민주당은 감사원 정치적 중립 회복과 유병호 체제 청산을 내세워 김 후보자 임명을 뒷받침할 전망이다. 이날 국회는 감사원장 인선과 감사원 개혁 방향을 둘러싸고 날 선 공방을 이어갔으며, 정치권은 보고서 채택과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막판까지 치열한 수 싸움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전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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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철#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