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튬인산철 배터리 재활용 실증”…전기차 순환경제 실험대→규제특례 시험대
전기차 보급 확대와 함께 사용량이 급증하고 있는 리튬인산철 LFP 배터리에 대해 정부가 재활용 기준을 새로 설계하기 위한 규제특례를 부여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19일 열린 순환경제 신기술·서비스 심의위원회에서 LFP 배터리 재활용 실증을 위한 규제특례안을 확정했으며, 23일 이를 공식 발표했다고 밝혔다. 전기차 폐배터리 관리 체계가 니켈·코발트·망간 NCM 계열에 맞춰져 있던 국내 제도 구조를 LFP까지 포괄하는 방향으로 넓히겠다는 정책적 신호로 해석된다.
LFP 배터리는 중국 주요 배터리 기업들이 전기차 시장에서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화학체계로, 에너지 밀도는 NCM 계열보다 낮지만 안전성이 높고 수명이 길며 단가가 낮은 특성 때문에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점유율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반면 국내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은 전기차 폐배터리를 금속 원료물질로 재활용할 경우 재활용 원료의 니켈 함량이 무게 비율 10퍼센트 이상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니켈을 사용하지 않는 LFP 배터리는 제도상 재활용 인정 기준을 충족하기 어려운 구조로 남아 있었다. 정책과 기술, 그리고 글로벌 공급망 현실 간 괴리가 점차 커지는 국면에서, 정부가 제도 실험을 통해 규범을 재정비하는 절차에 착수한 셈이다.

이번 규제특례는 사용 후 회수된 LFP 배터리를 전처리한 뒤 침출 공정을 적용해 리튬과 인산철을 분리·정제하고, 이를 다시 탄산리튬과 인산철 제품으로 제조하는 공정을 실제 환경에서 검증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향후 실증 결과에 따라 LFP 계열에 적합한 물질 기준, 공정 안전성, 품질 관리 기준이 재설계될 경우, 장기적으로는 폐배터리에서 회수된 이차원료를 다시 전기차 배터리나 소재 산업에 투입하는 폐루프 순환경제 모델이 확립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내 배터리 산업이 NCM 중심에서 LFP를 포함한 다변화 전략을 모색하는 시점과 맞물려, 재활용 기준의 조정은 기술 선택과 원재료 조달 전략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순환경제 신기술·서비스 심의위원회는 폐배터리뿐 아니라 전자제품 전반에 활용되는 인쇄회로기판 PCB에 대한 규제특례도 함께 확정했다. PCB는 합성수지 기판 위에 반도체, 저항 등 각종 전자부품이 집적된 구조로, 폐기 시 합성수지 비중이 높다는 이유로 폐합성수지류로 분류돼 왔다. 현행 폐기물관리법 체계에서 폐합성수지류가 순환자원 지위를 얻어 규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물질 비율이 무게 기준 5퍼센트 이하를 충족해야 하지만, 금속과 전자부품이 다층 구조로 결합된 PCB는 이러한 기준을 맞추기 어렵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정부는 이번 특례를 통해 PCB에서 핵심 광물을 경제적으로 추출하는 기술과 공정 안정성을 검증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전자폐기물 자원순환 체계를 사실상 재편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아울러 현재 폐기물관리법상 그 밖의 폐기물로 분류돼 재활용이 불가능한 폐암면에 대해서도 규제특례가 부여됐다. 암면은 현무암 등 암석을 고온에서 용융한 뒤 섬유 형태로 가공하는 인조 광물성 섬유로, 수경재배 농가에서 토양을 대체하는 배지로 널리 활용된다. 배지로 사용된 암면은 수명이 다하면 폐기물로 분류돼 매립이나 소각으로 처리돼 왔지만, 불연성·무기질 특성 때문에 처리 비용과 환경부담이 적지 않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정부와 업계는 규제특례를 활용해 암면 배지 폐기물을 입상압면으로 가공해 시설재배 딸기 배지로 재활용하는 방안과, 폐암면을 시멘트 제조 과정에서 부원료로 사용하는 방안을 현장 실증을 통해 검토할 예정이다.
전기차 시대의 도래는 배터리 생산과 사용을 넘어, 사용 후 자원의 회수와 재투입을 둘러싼 규범 경쟁을 동시에 촉발하고 있다. 특히 LFP 배터리는 중국을 축으로 한 공급망 구조와 맞물려 에너지 안보, 기술 주권, 환경 규제의 접점을 형성하고 있어, 그 재활용 기준을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산업 전략 차원에서도 중요하게 받아들여진다. 정책 연구자들은 폐배터리와 전자폐기물, 농업 폐자원을 아우르는 이번 규제특례 패키지가 단기적으로는 실증 사업의 성패에 의해 평가받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자원순환을 둘러싼 규제 패러다임 전환의 시험대로 작용할 것이라고 진단한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실증 결과를 면밀히 분석해 기준 개편과 제도 정비에 반영하겠다고 밝히며, 전기차 보급 속도에 걸맞은 자원순환 인프라와 규범 체계 구축을 예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