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없이 친환경 과산화수소 생산”…UNIST·스탠퍼드, 고부가 융합기술 성과
전기나 태양광 등 외부 에너지 없이도 친환경 과산화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화학·에너지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UNIST와 KAIST, 미국 스탠퍼드대 공동 연구진이 발표한 이 기술은 글리세롤(바이오디젤 부산물)에 내재된 화학 에너지만으로 고순도 과산화수소와 고부가가치 글리세르산, 심지어 전기까지 동시에 생산 가능한 융합 시스템이다. 업계는 과산화수소 생산 공정 전환은 물론 “전기 없는 ‘그린 화학’ 실현”의 분기점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연구진은 비스무트-백금 촉매와 탄소나노튜브 전극을 활용해 자발적 산화·환원 반응으로 과산화수소 생산을 세계 최초로 구현했다. 글리세롤이 양극에서 산화돼 글리세르산을 내놓으면서 전자를 방출하고, 이 전자는 음극으로 이동해 산소를 환원시켜 과산화수소(H₂O₂)를 만든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전기는 추가로 회수할 수 있다. 기존 건전지가 아연 산화·이산화망간 환원에 의존하는 데 반해, 본 시스템에서는 소모 대신 고순도 화학물과 전기가 동시에 산출되는 효율성 혁신이 입증됐다.

실험 결과 과산화수소 생산 속도가 산업 공정 수준(1cm²당 8.475μmol/min)에 달하고, 글리세롤→글리세르산 전환 선택도 역시 74% 이상의 수치를 기록했다. 특히 글리세르산은 제약·화장품·바이오폴리머 등에서 폭넓게 쓰이며, 경제적 가치는 글리세롤 대비 3천배 이상으로 평가된다. 기술적 구현 과정은 전위차 제어 등 정밀 공정설계 기반이 뒷받침됐다.
과산화수소는 살균, 표백 등 산업 전반에 필수적인 기초 화학물이나, 지금까지는 주로 고에너지·고탄소 공정(안트라퀴논 방식 등)에 의존해왔다. UNIST 시스템은 생산 과정의 오염물·탄소배출이 원천적으로 발생하지 않는 것이 차별점이다. 전력망 없이도 운영 가능하다는 점은 중소 플랜트, 분산형 생산 등 새로운 시장 확장도 예고한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일본, 미국, 유럽 등에서도 친환경 과산화수소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나, 전기 완전 배제와 부산물 동시수득, 전기 생산 기능을 모두 갖춘 사례는 제한적이다. 연구진은 “이번 시스템이 기존 친환경 공정에서의 경제성·지속가능성 이슈를 동시에 극복한 첫 사례”라며 “국제 기술 선도와 글로벌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기여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과산화수소 등 화학물 안전규제와 시장 진입 요건, 바이오 기반 부산물 활용에 따른 원료 수급 정책 등은 상용화의 관건으로 꼽힌다. 장지욱 교수는 “저비용, 저탄소, 고부가가치라는 세 가지 요건을 동시에 충족한 융합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산업계는 기술의 실증과 확장, 제도적 뒷받침이 상용화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본다. 전문가들은 “글리세롤 등 바이오 부산물 기반 친환경 화학공정은 화학, 에너지, 바이오 분야별 융합·전환 가속의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기술 구현 속도와 더불어 글로벌 산업 구조 개선이 정책 수준에서 뒷받침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