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 유전 경로 규명”…1480만명 분석, 가족 내 유병 위험 심화 논란
정신질환을 앓는 이들이 자신과 비슷한 질환을 가진 이와 결혼할 확률이 높다는 대규모 국제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미국 로리엇 뇌과학연구소 연구진이 대만, 덴마크, 스웨덴 등 3개국에서 수집한 1480만 명의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주요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은 동질적 증상 경험자와 결혼할 가능성이 유의하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 대상은 우울증·조현병·양극성 장애·불안장애·ADHD(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OCD(강박장애)·자폐 스펙트럼·약물중독·신경성 식욕부진 등 총 9개로, 유전적 요인이 명확히 관측되는 질환일수록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연구팀은 부부 모두 같은 정신질환을 앓는 경우 자녀에게 질환이 유전될 상대적 위험도도 급격히 높아짐을 밝혀냈다. 실제 조현병, 우울증, 양극성 장애, 약물중독 등에서는 가족 내 유전 연관성이 높다는 통계적 근거가 제시됐다. 이번 연구는 단일 국가나 문화권이 아닌, 유럽과 아시아 등 이질적 사회에서 유사 패턴이 관찰됐다는 점에서 ‘정신질환의 선택적 결혼’ 현상을 세계적 규준으로 뒷받침한다는 평가다.

정신질환자 간 결혼이 잦은 배경으로는 비슷한 삶의 경험이 가족 형성 과정에서 교집합 역할을 하거나, 사회적 낙인 및 교제 기회의 제한 등이 지목된다. 실제로 정신질환 낙인(stigma)으로 결혼·연애 시장에서 배제되는 현상이 공통분모로 분석된다. 연구를 이끈 판 춘제 교수는 “정신질환의 선택적 결혼 현상은 국가, 문화, 세대를 초월해 일관적으로 관찰된다”고 해설했다.
한편,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청소년·아동의 정신질환 치료 건수가 급증하며, 가족 내 정신질환 예방과 유전 역학 연구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 집계에 따르면 18세 미만에서 치료 건수가 팬데믹 이전보다 56%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정신질환의 유전적 위험이 가정 환경 속에서 심화될 수 있다”면서 맞춤형 정신건강 서비스와 조기 진단체계 고도화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산업계는 이번 정신유전 경로 연구가 실제 진단 및 예방 전략에 얼마나 반영될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