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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슨 희귀질환 겨냥 GV1001 장기투여…젬백스, 질병 진행속도 늦췄다

김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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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슨증 계열의 희귀 퇴행성 뇌질환인 진행성핵상마비에서 장기 투여가 가능한 신약 후보가 등장했다. 젬백스앤카엘이 테라노스틱스 전략으로 개발 중인 펩타이드 기반 신약 GV1001이 국내 첫 진행성핵상마비 장기 임상에서 질병 진행 속도를 늦추는 신경보호 효과를 보여, 향후 파킨슨 관련 희귀질환 치료 패러다임을 바꿀 후보로 주목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결과를 글로벌 3상 진입과 기술이전 협상 구도의 분기점으로 보는 시각도 나온다.

 

젬백스앤카엘은 24일 진행성핵상마비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GV1001 장기 임상시험에서 효과와 안전성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대상 질환은 진행성핵상마비 중에서도 질병 악화 속도가 가장 빠른 유형으로 꼽히는 진행성핵상마비 리처드슨 신드롬 환자군이다. 한국에서 진행된 첫 진행성핵상마비 임상으로, 선행 24주 임상에 48주 연장 연구를 더해 총 72주 동안 투약 효과를 추적했다.

GV1001은 텔로머라제 유래 펩타이드로 알려진 후보물질로, 염증 조절과 미토콘드리아 기능 보호, 항산화 작용 등을 통해 신경세포 사멸을 늦추는 기전을 겨냥한다는 설명이다. 진행성핵상마비처럼 짧은 기간에 운동 기능과 인지 기능이 급격히 악화되는 질환에서는 단기간 지표 개선보다 장기 추적에서 악화 속도를 얼마나 늦추느냐가 핵심 평가 기준이 된다. 젬백스는 이번 연구에서 이 점에 초점을 맞춰 PSP 등급 척도라는 기능 평가 도구의 총점 변화를 정밀 분석했다.

 

임상 데이터에 따르면 진행성핵상마비 리처드슨 신드롬 환자 중 GV1001 저용량군은 72주차 시점 PSP 등급 척도 총점이 최소자승평균 기준 5.61점 악화되는 데 그쳤다. 통상 진행성핵상마비는 파킨슨증 여러 아형 중에서도 질병 진행이 빠른 편으로, 1년 사이 기능 저하 폭이 크게 나타나는 질환이다. 그럼에도 1년을 넘는 기간 동안 악화 폭이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는 점에서 질병 진행 속도 완화 효과가 지속적으로 유지된 것으로 해석된다.

 

연장 연구 설계 특성상 위약 대조군이 남지 않는 한계가 있어, 젬백스는 외부 대조군을 활용한 정밀 비교에 나섰다. 회사는 해외에서 수행된 대표적 진행성핵상마비 임상시험 3건을 선정하고, 각 시험의 위약군 데이터를 모아 GV1001 저용량군과 간접 비교했다. 연구팀은 환자 특성 차이를 보정해 비교의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MAIC 통계 기법을 도입했다. MAIC는 개별 환자 데이터와 집계 데이터를 매칭해 두 집단의 기저 특성 차이를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희귀질환·소규모 임상에서 글로벌 기준 비교에 활용도가 높아지는 추세다.

 

외부 임상 논문 속 위약군의 PSP 등급 척도 점수는 52주 동안 10.66점 악화된 것으로 보고돼 있다. 반면 GV1001 저용량군은 이보다 20주 긴 72주 동안 추적했는데도 악화 폭이 5.61점에 그쳤다. 젬백스가 MAIC 보정 후 두 집단을 비교한 결과 p값이 0.0001 미만으로 도출돼, 통계적으로 매우 유의한 차이가 확인됐다고 회사는 설명했다. 젬백스 관계자는 GV1001 투약군이 평가 기간이 더 길었음에도 외부 위약군 대비 악화 속도가 유의하게 낮게 나타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진행성핵상마비는 전 세계적으로 환자 수가 많지 않은 희귀 파킨슨증으로, 국제적으로도 승인을 받은 표준 치료제가 부재한 상황이다. 신경퇴행을 늦추는 질병 조절 치료제를 확보하려는 다국적 제약사의 도전이 이어졌지만, 상당수 후보가 2상·3상 단계에서 효능 입증에 실패해 개발을 중단했다. 특히 리처드슨 신드롬 형태는 임상 설계와 평가 지표 확보가 까다로워 신약 개발 진입 장벽이 높은 영역으로 꼽힌다. 그만큼 통계적으로 검증된 장기 악화 지연 데이터가 확보될 경우 기술 가치가 크게 평가될 수 있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희귀 파킨슨증을 타깃으로 한 파이프라인이 소수 진행 중이지만, 아직까지 72주 이상 장기 추적 데이터와 외부 대조군 기반 정량 비교를 동시에 제시한 사례는 제한적이다. 젬백스가 국내에서 축적한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글로벌 3상에 진입한다면, 미국 식품의약국과 유럽 규제기관이 요구하는 희귀질환용 임상 설계 기준을 어떻게 충족할지에 업계 관심이 쏠릴 전망이다.

 

젬백스는 이번 72주 장기 임상 데이터와 함께 선행 임상에서 확인된 바이오마커 데이터를 통합 분석해 글로벌 3상 프로토콜을 설계 중이다. GV1001 투여 전후 염증 지표와 신경퇴행 관련 바이오마커 변화를 객관적 효능 지표에 연결해, 질병 진행 완화 효과를 다축도로 입증하겠다는 구상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객관적 기능 지표에 바이오마커를 더해 약효 기전을 설명하는 접근이 향후 규제당국 심사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국내 규제 측면에서는 희귀질환 치료제에 대한 신속심사 제도와 조건부 허가 트랙 활용 여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진행성핵상마비처럼 치료 옵션이 극히 제한된 질환에서 장기 안전성과 효능 신호가 확보된다면, 해외 규제 동향과 연계한 신속 허가 전략 수립 여지도 있다는 평가도 제기된다. 다만 희귀 파킨슨증 환자 모집과 장기 추적이라는 현실적 제약이 존재하는 만큼, 국내외 다기관 임상을 어떻게 조직할지가 상용화 시점을 가를 변수로 꼽힌다.

 

젬백스는 GV1001을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다른 신경퇴행성 질환에도 적용하는 전략을 병행하고 있어, 진행성핵상마비에서 확보한 장기 임상 데이터가 전체 포트폴리오의 신뢰도를 높이는 레퍼런스로 작용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신경퇴행성 질환 분야에서 구조적 치료제가 부족한 상황을 감안할 때, 업계는 GV1001이 실제 글로벌 3상 장벽을 넘어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김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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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젬백스앤카엘#gv1001#진행성핵상마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