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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정책 신뢰 흔든 의대증원 파동…의협, 정책 책임자 고발 예고

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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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인력 정책이 디지털 헬스케어와 정밀의료 확산의 핵심 변수로 떠오른 가운데, 윤석열 정부가 추진했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정책을 둘러싸고 법적 공방이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인공지능 기반 진료, 원격의료, 바이오헬스 산업 고도화를 위해선 장기적인 의료인력 수급 계획이 필수인데, 정책 결정 과정의 절차와 통계 근거가 흔들리면서 향후 인력정책 전반에 대한 신뢰 회복이 관건으로 부상했다. 업계와 의료계에서는 이번 감사 결과가 향후 의사 수급 추계와 의료정책 거버넌스 재편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30일 의료계에 따르면 대한의사협회는 지난해 추진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결정과 관련해 당시 정책을 주도한 전직 보건복지부 수뇌부와 대통령비서실 핵심 인사들을 검찰에 고발할 방침이다. 대상에는 조규홍 전 보건복지부 장관, 박민수 전 보건복지부 차관, 이관섭 대통령비서실 비서실장, 정상윤 대통령비서실 사회수석 등이 거론되고 있다.

김성근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의대 정원 증원 정책 책임자들에 대한 민사와 형사 책임을 묻기 위해 법무팀이 소장을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구체적 대응 방식과 시점은 빠르면 다음 주 중 윤곽이 드러날 수 있다고 전했다.

 

의협은 이미 지난 5월 의대 입학 정원 2000명 증원 결정 과정의 위법성을 주장하며 감사원에 보건복지부 감사를 청구한 바 있다. 당시 청구 내용은 정책 결정 과정의 절차적 위법성, 전문가 협의 과정 왜곡, 부당한 업무개시명령, 필수의료 저해와 의료생태계 붕괴 원인 제공 의혹 규명 등 네 가지 축에 맞춰졌다.

 

김 대변인은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추진 전반에서 제기했던 비합리성과 절차적 하자, 전문가 협의 왜곡 등 핵심 문제 상당 부분이 감사원 조사에서 사실로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보건복지부가 감사원이 지적한 모든 절차적 문제를 인정하고, 앞으로 의료 현안과 관련된 중대한 정책은 의료계를 포함한 충분한 협의와 논의 과정을 거쳐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사 인력 수급을 논의하는 공식 기구인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에 대해서도 보다 공정하고 객관적 운영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나왔다. 인구 구조 변화, 지역격차, 디지털 헬스케어 도입 속도 등을 반영해 정교한 장기 수급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의료계 안팎에서 이어지고 있다.

 

황규석 서울시의사회장은 의정 갈등과 의료현장 혼란의 책임이 전 정부에 있다고 지적하며, 의료농단 사태를 초래한 정책 결정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발언했다. 특히 정책 추진 과정에서 부적절한 발언과 왜곡된 수요 추계를 반복해 혼선을 키운 박민수 전 보건복지부 차관 등 당시 정책 책임자들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공의 단체도 이번 감사 결과를 환영하며 구조 개편을 요구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비합리적이고 폭압적이었다고 평가한 지난 정권의 의대 정원 증원 과정에 대해 논리적 정합성과 절차적 정당성 부족을 지적한 감사 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아울러 향후에는 현장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는 새로운 거버넌스 구조가 필요하다며, 이미 벌어진 사태에 대해 정부가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책 추진의 직접 당사자인 보건복지부는 감사원 결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난해 의대 정원 증원 전 과정에 대한 감사 결과를 향후 업무에 적극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의료 인력 수급과 관련해 감사원이 통보한 분석 결과는 의사인력수급추계위원회에서 참고 자료로 활용하겠다고 덧붙였다.

 

복지부는 향후 의대 정원 결정이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근거에 기반해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등에서 충분한 숙의를 거쳐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현재 의사인력수급추계위원회는 2027년도 의대 정원을 포함해 중장기적으로 어느 정도 의사 인력이 필요한지 논의하고 있다. 원격의료와 인공지능 진단 보조 도입에 따른 진료 구조 변화, 필수의료 분야 인력 유인책, 지역 편차 해소 전략 등이 연동돼야 해 논의는 복잡한 양상이다.

 

지난해 2월 보건복지부는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고, 5년간 총 1만명을 증원하는 방안을 제시했었다. 이후 전공의 집단 사직과 장기 파업이 이어지며 1년 7개월 동안 의정 갈등이 지속됐고, 대규모 의료 공백이 발생해 응급과 필수의료 현장은 큰 압박을 받았다. 인공지능 의료기기와 디지털 치료제 도입이 빨라지는 상황에서도 실제 병원 현장의 인력 공백은 IT 기반 의료 혁신의 안착에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이번에 공개된 감사원 조사 결과는 당시 의대 증원 규모가 부적절한 예측을 토대로 정해졌다고 판단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의대 증원 논의의 중심에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있었고, 정부가 가져온 증원안을 보고받을 때마다 더 많은 증원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규모가 500명에서 1000명, 최종 2000명으로 확대됐다.

 

보건복지부가 근거로 제시한 2035년 1만5000명 부족 전망은 취약지 자체충족률을 기준으로 산출한 연구 결과를 전국 단위 의사 부족분으로 확대 적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이를 두고 수도권 등 일부 지역에서 오히려 의료 인력 공급 과잉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미래 부족 의사 수를 현재 부족분 5000명과 단순 합산한 방식도 문제로 꼽혔다. 서로 다른 시점의 수치를 결합해 제시함으로써 추계의 정확성이 떨어졌다는 판단이다. 내부 분석에서 부족 규모가 5841명 수준으로 낮아질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음에도 정책 결정 과정에 반영되지 않은 점도 감사원의 지적 대상이 됐다.

 

감사원은 또 대한의사협회와 2020년 의정 합의에서 의대 정원 증원을 재추진할 경우 사전 협의를 명시했음에도 실제 정책 추진 과정에서는 이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법적 논의 기구로서 2000명 증원을 심의한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역시 형식적으로 운영됐다는 평가를 내렸다. 전문가와 이해관계자들이 충분히 데이터를 검증하고 대안을 논의하는 과정이 부재했다는 의미다.

 

헬스케어 업계와 정책 전문가들은 인공지능과 바이오 기술 확산으로 의료 서비스 패턴이 달라지는 상황에서, 의사 인력 정책이 과거 단순 인구 대비 산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디지털 헬스 플랫폼 도입에 따른 업무 효율화, 재택 모니터링 확대, 정밀의료 기반 예방 중심 구조 전환 등을 반영한 새로운 수급 모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동시에 급성기·중증·필수의료 분야는 여전히 고강도 오프라인 인력이 핵심이라, 분야별 차등 전략도 요구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둘러싼 갈등은 단기 인력 확충이 아닌 장기 의료전달체계 개편과 디지털 헬스케어 전환 전략, 그리고 데이터 기반 정책 설계 역량 부족 문제까지 드러낸 셈이 됐다. 업계와 의료계는 이번 감사 결과와 의협의 법적 대응이 향후 의사 인력정책의 신뢰 회복과 제도 개편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시하고 있다.

오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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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사협회#의대정원증원#보건복지부